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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거센 파도에 밀려 그런 대로 잘 나가던 기원도
문을 닫고 있는 요즘, 새롭게 문을
연 기원이 있다. 서울 양재동 사거리, 전철 3호선 양재역 5번 출구에서 매봉역 쪽으로
150m쯤 가다보면 20층짜리 주상복합빌딩 공사장이 있다. 공사장 끝나는 곳에서
골목
으로 들어가면서 좌회전하면 왼쪽에 5층 건물이 있다. 건물 이름이 ‘땀과 꿈’이다.
이름이
정겹다. 그 건물 3~5층이 ‘바둑싸롱 쉼터’다.작은 건물 한 층 정도에 기원을
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겠지만, 이건 3개 층이 기원이다. 이런 기원은 처음이다. 바둑을
얼마나 좋아하면 3개 층을 전부 기원으로 만들었을까. 명색이 서울 양재동 사거리면
임대료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얼마나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저렇듯 통 크게 나왔을까.
남들은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다는데. 더구나 요즘 같은 인터넷 전성시대에 세상
물정을 알기는 아는 것일까.
쉼터기원의 원장을 만나
보았다. 바둑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아니, 오히려 파산 직전에서
겨우 숨을 돌린 사람이다.
노위래씨(55). 중년 이상의
애기가 중에는 ‘아, 그 사람’
할 분이 많을 것 같다. 고려
대 사학과 졸업. 고대 대표선
수로 대학 바둑계에서 용맹
을 떨친 바 있다. 졸업 후 삼
성, 포스코 등에서 근무했는데 직장 바둑계에서도 날렸다. 일 때문에, 게다가 지방
근무가
많아 대회에 자주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출전한 대회에서는 소속팀 주장으로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83년 직장대항전에서는 삼성 소속으로 대우를 3-0으로 꺾고
우승했으며, 93년에는 KBS바둑대축제 직장부에서 SBS를 역시 3-0으로 격파하고
트로피를 안았다.
대학때도 그랬지만, 출전 횟수에 비하면 ‘매스컴 복’이 있어 유명세를 많이 탄 편이다.
포항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포항 바둑의 제일인자로 통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유명했던 것은 바둑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별명이 ‘잡기 100단’이다.
‘앉아서 하는 모든 게임’에 도사급이었는가 하면 유도·태권도 유단자 등으로서
1대1
‘맞장’에서는 져본 적이 거의 없다. 또 있다. 국내에서 ‘연(鳶)’에 관한 한
그는 ‘대부’
소리를 들을 만하다. 아쉽게 실패하기는 했지만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한 줄에
3000개의
방패연을 달아 날리는 것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했던 기록이 있다.
그렇게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왜 뒤늦게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기원을, 그것도 세개
층을 얻어 기원을 열었을까. "작년에 쫄딱 망했어요. 벤처사업을 하다가 사기당해 가진
것을 모두 날렸어요. 화병이 났지요. 울화가 치밀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살하고픈
생각뿐이었지요. 그런데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거예요. 우선 마음부터 안정하라는
겁니다.
뭘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나 생각해보니 바둑이더라구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해서 세 층을 다 얻었지요. 아무 말 없이 따라와준 집사람에게 고맙구요. 이제는 재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자신 있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쉼터’는 불과 두 달 만에 바둑계의
명소가 되고
있다. 고대를 비롯한 대학 바둑 OB 멤버들을 비롯해 가령 경기고 67회, 보성고 58회
기우회 같은 모임들이 여기서 정기모임을 갖는다. 기원 운영을 위해서는 내기바둑이나
카드 게임 같은 것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 비슷하지만, 여기는 가만 내버려
두어도 장 자체가 서지 않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들과 왕년의 고수들이
자주,
많이 들락거리다 보니, 웬만한 꾼들은 스스로 발길을 돌린다.
정기모임의 회원들은 바둑이 끝나면 우르르 몰려가, 감자탕이 또 아주 괜찮은 ‘동우 춘천
닭갈비’에서 소주잔을 나눈다. 한번 가보시라. 사람이 어떻게 흥하고, 어떻게 망하나,
산다는 것의 우여곡절, 만남의 소중함, 그런 얘기들은 아무리 수없이 말하고, 수없이
들어도 바닥이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19로의 천일야화
아닌가.
(쉼터 : 02-572-5323)
[바둑평론가 이광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