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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 싶어 아들한테 바둑을 가르쳤죠.”
- 2001년 12월, 제6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서봉수 2단에 두번째로, 어린왕자 박영훈 2단이 10대의 나이와 2단의 단위로 타이틀 정복에
성공했다. 지금은 박영훈 3단이 되었고, 도요타 덴소배. 후지쯔배, LG배등 각종 세계기전에서 무서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밑의 글은 현재의 박영훈 3단이 아직 타이틀을 따기 전의 것으로서, 부친인 박광호씨와 스승인
최규병 9단의 이야기를 취재와 인터뷰 형식으로 박영훈 3단의 입단전, 입단후, 포부를 다각도에서 조명한 것이다.
왼쪽의 사진은 박영훈 2단이 월간바둑 표지로 나왔던 것. 2001년 10월호.
그렇다. 아마5단의
기력을 갖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바둑광 박광호 씨가 아들 영훈에게 바둑을 가르친 이유는, 함께 수담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허나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는 법. 특히 자식에 대한
바람이란?
영훈은 서너살 때부터 숫자에 묘한 관심을 보여왔다. 1부터 1,000까지
재미 삼아 쓰길 즐겼고, 지하철을 타면 구간별 덧셈을 하며 즐거워했으며, 식당에서 메뉴들끼리 묶어서 더하길
좋아했다. 심지어 바둑책을 보면서도 결과에 적힌 숫자에 꽤 관심을 보였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예사롭지 않는
현상에 바둑을 가르쳐 보고픈 마음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영훈이가 다섯 살 되던 해(90년)에 지리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중턱에서 쉬며 아버지는
누나와 함께 장기를 두라고 권했다. 고사리 손으로 장기를 두는 모습이란, 등산하던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따. 그때 그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묘한 감정에 빠지며 마침내 아들한테
바둑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때부터 영훈은 아버지한테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 8급 정도인데도 6급 수준의 문제를 내 못 풀면 잠을 재우지 않을 정도였다. 6개월 가량을 그렇게
강행했다. 마치 시라소니가 자기 새끼를 낭떠러지로 몰아넣은 후 기어올라오는 놈만 키우는 그런
심정으로.
“저(아버지)한테는 그 6개월이 테스트 기간이었죠. 프로가 될 가능성에 대한. 그리고
프로가 되더라도 박세리나 박지은 같은 일류 프로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설픈 프로가 될
양이라면 애당초 시작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잠잘 여관을 찾을
때?
영훈이는 아마추어 시절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우승했을 때가 아니라고 기억한다.
지방대회에 출전해 본선에 진출, 잠잘 여관을 찾으러 다니던 시간이 제일 황홀했다는 것. 왜? 이유는 간단했다.
보통 지방 대회엔 아버지 차로 가기 십상인데, 예선탈락 하면 화가 잔뜩 난 아버지가 과속으로 달려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라고.
박광호 씨는 그만큼 아들에 대한 기대가 각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 뒤엔 남모를 고충과 피멍어린 노력이 동반돼 있다. 누가 ‘아버지의 지나친 욕심’으로 폄하할 수 있으리오.
아들에 대한, 단 한줄의 기사라도 빠뜨림없이 모든 기록을 스크랩해 온 아버지. 기사 스크랩은 기본. 아들이 3급
정도부터 둔 친선바둑까지도 손수 기보를 떠 관리해 온 아버지. 그 바둑이 지금까지 1,000여판은 족히 된다고
하니. 더 나아가 아들에 대한 바둑일기를 10년 가량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기도 했다. 입단대회에서 8번 고배를
마시는 동안 아버지는 낙마한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감독 겸 코치를
맡았다.
도대체 무슨 감독과 코치를 했다는 얘기일까?
한 마디로 아들과
붙은 모든 대국자를 면밀히 분석, 이를 아들한테 알려준 것이다. 개인별 승률은 기본 사항이었으며, 아들한테 이긴
사람은 보다 철저히 분석했다. 가령 A군의 미니중국식 포석에 양화점으로 대응했더니 졌더라, 다음엔 A군의
미니중국식에 다른 포석으로 대결해 봐라, 하는 식이었다. 아무리 아들일지라도 여간한 희생과 관심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그런 아버지의 노고와 아들의 노력에 하늘도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던지, 99년 12월 8전9기 만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입단의 관문을 뚫는데
성공한다.
실력도 세고 겸손한 이창호 九단을 존경하고, 화려한 기풍을 펼치는 유창혁 九단 바둑을
흉내내고 싶다고 말하는 박영훈 二단. ‘이창호 九단처럼 세계 1인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유창혁 九단처럼 조금
여유 있게 살고 싶기도 하다.’는 욕심 많은 바둑 새내기.
지금까지 아버지 손에 키워졌다손치더라도
프로가 된 지금부터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바둑을 대하는 게 가장 큰
장점
“제 제자라서가 아니라 프로기사로선 아주 손색이 없습니다. 척척 알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가르치기가 너무 편하죠. 다만 몸이 좀 약한 것 같아서.”
최규병 九단은 자신이 프로로
배출한 첫 제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갓 입단해 얼마전 도전권 문턱(배달왕기전 도전자
결정전서 이세돌 三단한테 1승 2패로 패한 것을 말함)까지 간 것은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지만 좀더 지켜 볼
일.”이라며, “무엇보다도 영훈이는 지금도 입단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는 게 다른
프로기사들한테서 보기 힘든 장점”이라고 말한다.
보통 프로가 되면 승부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어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나 의무감 속에서 늘 긴장하기 일쑤다. 그러나 박二단은 다르다.
박二단은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즐거워하며 바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九단은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기꺼이 즐거워하며 공부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당연히 잠재력이 더 많고 ‘폭 넓은 바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훈이가 바둑을 각별히 좋아하고 기재도 있다 보니 많은 프로기사들이
기회가 되면 가르쳐주곤 했습니다. 복이라면 복이었죠. 특히 어릴 때 기초를 다잡아 주신 홍태선 사범님을 일찍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영훈이가 입단하는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일인데, 좋은 프로기사를
만들려면 삼위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와 선생, 그리고 본인이 한 마음으로 뭉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란 얘기죠. 특히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데, 영훈이의 부모는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어요.”
끝으로, 박영훈 二단을 이렇게 전망한다.
“얼마 전만 해도 실리를 너무
밝히는 경향이 있어 우려했는데, 지금은 그 점도 많이 보완된 것 같아요. 지금 스타일처럼 공부한다면 머지 않아
이세돌 三단처럼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니겠어요. 하하, 제자 자랑이 너무
심했나요.”
[구기호 기자 / 구성 Cybero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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