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촛점] 바둑이 스포츠라는 것은 당위론이다.
[촛점] 바둑이 스포츠라는 것은 당위론이다.
2006-01-31 오전 1:30:14 입력
|
[촛점] 바둑이 스포츠라는 것은 당위론이다.
바둑은 무엇인가. 바둑은 예술인가, 체육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바둑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바둑이 시작되엇을 때부터 시작되엇는지 모른다.최근 다시 바둑의 정체성에 대한 바둑계의 관심이 다시 분 것은 바둑의 시초에 대한 의문이라든지, 바둑의 원리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 같은 것이 아니다.
바둑계는 한국 바둑의 위상에 걸 맞는 바둑의 내실을 닦기 위하여 다양하게 노력을 해왔다. 1997년 명지대 바둑학과가 출범한 이 후 금년으로 10년째. 이미 바둑 학과 졸업생들은 200여명이 넘어서 바둑 관련 각계 분야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또한 바둑학의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 위하여 그동안 여러번에 걸쳐서 바둑학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특히 작년 2005년 바둑학 국제학술회의는 의미가 깊다. 비록 일본이 참석하지 않 은 것이 옥의 티라면 티이지만, 미국 중국 네델란드 영국등 세계 각지에서 12명들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바둑학의 정립에 대한 심도높은 회의를 하엿다. 이런 행사를 가지는 긍국적인목적은 바둑학의 정립과 바둑의 정체성을 위한 기반을 다져보자는 것 다름 아니다.
바둑이 예술이냐 체육이냐 하는 진부한 질문이 최근들어서 다시 바둑계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이다. 바둑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세계 최초의 바둑 학과명지대 바둑학과가 "예술체육대학" 소속이라는 것이 한국 바둑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 하다. 예술이면서 체육.(참고로 명지대 예술체육대학 에는 산업디자인학부, 의상디자인학과, 체육학부, 바둑학과, 문화예술학부, 음악학부 등이 소속해있다.)
'바둑학'은 바둑학과가 생기고나서부터 생겼다. 비록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고는하나, 바둑학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직도 정식으로 학술원에 가입을 못하고 있다. 학술원 가입이 무슨 대수냐 하겠 지만 학술원 회원으로 가입된다는 자체는 학문으로 공인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공식적으로 정부의 지원과 보조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둑계가 자주 국제학술회를 여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바둑학과에서는 바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바둑은 심오한 예술성과 교훈성을 내포한 동양 전래의 두뇌스포츠로서 현대인의 여가생활에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동양의 놀이 문화" 라고 했다. (참고: http://www.mju.ac.kr/home/org/college/info?orgid=60&orgpath=|56|60|)
여기서 체육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도 해보자.
" 체육학이란, 체육의 실천을 교도(敎導 )하기 위한 여러 명제, 혹은 체육의 성격· 역사 ·목적 ·내용·방법 등의 연구 성과를 조직화 내지는 체계화시킨 것"
하지만 최근 체육학계는 위의 설명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체육의 교육적기능만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축구 중계 때 지겹게 많이 들어왔던 스포츠 생리학이니 웰빙 같은 용어가 들어갈 틈이없다. 그래서 새로운 체육학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데 바로 다음 설명이다.
"체육학이란, 신체운동이나 체육의 사실, 문제를 실증적+경험적+과학적으로 연구하여그 성과를 체육의 합리성과 과학성을 높여서 인간 복지에 유용한 모든 것."
위의 체육학에 대한 설명을 보면 "체육은 인간과학이 며, 인간의 삶에 대한 자연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적으로 웰빙 열풍이 불면서 스포츠 시장은 폭팔적으로 발전하여, 프로 아마 구분없이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체육계는 최근들어서 스포츠임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생각되는 분야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 다.
바둑계의 숙원 사업은 바둑이 스포츠로 당당한 인정을 받는 것 이다. 중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에서 이미 바둑은 두뇌 스포츠로 공인을 받은 상태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바둑은 그동안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나 체육계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술이냐 체육이냐의 규명은 무의미하다. 체육으로 인정받게될 때 얻게되는 파이 가 적지않기에 바둑인들은 속으로는 의아심을 가지면서도 체육으로 공인받기를 학수 고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체육인들은 언제까지 속좁은 바둑 왕따하기를 할 것인가. 도대체 바둑계가 노력하는모습을 아니 보인것도 아니다. 바둑학과가 있어야하고 국제 학술회도 있어야하고 전국 각지에 지부를 설치해야한다기에 다 했고, 심지어는 아마바둑협회가 있는데도 불구 하고 협회라는 단체를 만들라기에 내부적인 반발도 무릅쓰고 대한바둑협회라는 단체도설립하였다.
체육회에 모임만 있으면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보려고 바둑계의 중진들이 동분서주회의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채로 엄동설한에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몇 번인가.심지어는 체육계에서 바둑의 근육 운동의 유무를 따지는 유치한 트집을 잡지않나, 바둑 계 인사들은 자존심 상하기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듯 싶다. 시키는대로 다 했다.이제 머리에 띠 두르고 대한 체육회로 가는 수만 남아있는 듯 싶다.
우리가 내부에서 이런 절차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동안 일본 바둑은 세계화를 다시 서두르고 있고, 중국 바둑은 세계 정복의 기치를 드 높이고 있다. 빨리 스포츠로 인정 받고 대한 체육회 정규 회원으로서 누릴 수 잇는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바둑계는 다시 힘을 얻어서 제2의 이창호, 제2의 이세돌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대한 체육회 회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그간 노력을 했지만 소정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한국 기원 실무진에게 불평을 해본다.
나는 바둑이 무엇인지, 스포츠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은 못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바둑이 가야할 길은 스포츠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위론이다. 바둑계로서는 바둑이살기 위한 정언적 당위이다.
바둑계의 노력과 체육계의 열린 자세를 강력히 요청한다.
[i진선] 가언적(假言的:hypothetical)당위: 다른 어떤 것의 목적이나 결과를 위한 수단 정언적(定言的:Categorical)당위: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 즉 무제약적 절대적인 것을 말하는데 정언적 당위야말로 실천이성의 요구와 일치.
|
|
[i진선 한 마디] 요즘 바둑게 돌아가는 사정이 이렇습니다.
업글 중 입니다. |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