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대담] 세계기전 첫 패배, 이창호는 바둑계의 신사
[대담] 세계기전 첫 패배, 이창호는 바둑계의 신사
2006-02-17 오후 1:08:01 입력
|
세계대회에서 외국 기사에게 첫 패배 맛본 ‘바둑계의 신사’ 이창호 | ||
|
[레이디경향 2006-02-16 02:18]
| ||
|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은 결과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거죠. 바둑을
두며 사는 법 배웠어요”
1111
이창호 9단이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외국 프로기사에게
패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그의 첫 패배를 이슈로 삼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담담하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일곱 살에
바둑에 입문한 뒤 바둑 속에서 인생살이의 깨달음을 얻은 이창호 9단을 만난다.
지난 1월 13일, 서울 삼성화재 본사 3층 특설 대국실에서는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결승에서 만난 이창호(32) 9단과 중국의 뤄시허 9단의 대결은 대국이 시작되기 전부터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과거 같으면 역대 전적 4전 전승을 기록한 이창호 9단의 절대적인 우세를 점쳤겠지만 준결승 최종국에서 대마를 잃고도 7집 반 차이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온 뤄시허 9단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국을 지켜보는 대부분의 한국 바둑 팬들은 이창호 9단의 승리를 낙관했을 것이다. 1111
승부에 관한 한 섣부른 낙관은 금물. 결승전 최종국이 끝나고 그동안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외국 기사들에게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이창호 신화’가 무너졌다. 또한 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삼성화재배’에서 중국 기사가 우승컵을 차지한 것도 처음이었다. 동시에 우승자 뤄시허 9단은 중국대륙에서는 단박에 영웅으로 부상했다. 1111
“특별히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상대방의 전략이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간혹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하시는데, 특별히 전보다 기량이 떨어지지는 않았어요. 대신 신예들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바둑기사들의 기량이 많이 높아졌어요. 과거에는 프로기사와 신예의 실력차이가 많이 났지만 이제는 차이가 별로 없어요. 제 기량이 ‘전만 못하다’기보다 전체적으로 바둑계의 실력이 올라갔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1111
이제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지만 이창호 9단이 바둑에 입문할 당시만 해도 10대 기사들의 활동은 전무했다. 최근 무섭게 성장하는 신예들을 보면 평생을 바둑만 두며 살아온 이창호 9단도 긴장이 된다고. 1111
“저라고 왜 긴장이 안 되겠어요. 신예 기사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타이틀을 따면 당연히 긴장이 되죠. 하지만 대국에서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은 결국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결과의 차이가 있을 뿐 과정은 특별히 다르지 않거든요. 대국에서 졌다고 해서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니까요. 이기는 것도 힘들지만 지는 것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죠.” 1111
이창호 9단은 지는 것도 훈련의 하나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천 번이 넘게 대국을 치른 이 9단이지만 대국에서 지는 것은 여전히 힘든 훈련과정이라고 설명했다. 1111
“다시 일곱 살로 돌아간다면 평범한 학생으로 살고 싶어요” 1111
이창호.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7세 때 처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가 바둑으로 얻은 이력은 화려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총 전적 1268승 260패, 11세 때 제 54회 입단대회에서 입단,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4세 때 세계 최연소 타이틀 획득, 국내기전 41연승 달성(세계 기록), 16세 때 세계 최연소 세계 메이저 기전 제패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이 찬다. 1111
한동안 한국 바둑은 이창호로 시작해서 이창호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열네 살짜리 어린 제자가 당대 최고의 바둑고수를 이겼을 때, 세상은 ‘이창호’란 이름에 열광했다. 1111
“승패와 상관없이 어려운 자리였어요. 분위기도 너무 어색했고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대국이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평소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대해주셨어요. 원체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특별히 무슨 말씀을 하지도 않으셨구요.” 1111
1111
“다시 일곱 살로 돌아간다면 평범한 학생으로 살고 싶어요. 어렸을 때는 장난도 잘 치는 개구쟁이였는데, 바둑을 배우고 나서부터 성격이 차분해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프로 바둑기사가 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바둑을 배우는 게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다만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요. 특별히 어떤 직업이 내게 어울릴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막연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1111
“결혼이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1111
이창호 9단은 그 명성만큼이나 별명도 많다. 그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강태공, 돌부처(석불), 신산, 외계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무엇인가 물었지만 그는 별다른 답이 없었다. 이창호 9단은 익히 알려진 대로 말수가 적다. 질문을 하면 짧게는 몇십 초에서 길게는 몇 분 동안 기다려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답 역시 ‘시어’를 연상하는 단답형의 짤막한 문장이 주를 이뤘다. 그중 “바둑 속에서 어떤 것을 배웠냐”는 질문을 하고 기자는 가장 긴 시간 동안 대답을 기다려야 했다. 자신의 평생을 바쳐 몰두한 대상인 만큼 할 말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을 때 들은 대답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어요”였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바둑 한판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말을 했다. 1111
“바둑의 묘미는 너무 많아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바둑을 배우면서 저는 참는 것과 기다리는 법을 배웠어요. 바둑 한판 속에는 인생의 갖가지 굴곡이 모두 담겨 있어요. 바둑 속에서 저는 삶의 대부분을 배운 것 같아요.” 1111
총 전적 1268승 260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수많은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록을 외우고 있지 않았다. 이제까지 받은 상금이 얼마나 되는지 또한 몰랐다. 이창호 9단에게 “항간에 100억대 재산가라는 소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제가 이제껏 받은 상금이 100억이 안 될 텐데요”라며 웃으면서 답했다. 그는 바둑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그 외의 것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현재 그가 받은 모든 상금은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다. 1111
그는 대국이 없는 날이면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와 등산이다. 특히 그는 등산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1111
“뛰는 것보다는 걷는 게 좋아요. 그래서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는데, 자주 가지는 못해요.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은 조금 해요. 주량은 소주 한 병정도인데, 친구들하고 마시면 가끔 말이 많아지기도 해요.” 1111
올해로 서른두 살이 되는 이창호 9단은 아직 미혼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를 사귄 게 언제냐?”고 묻자 그는 짤막하게 “좀 된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언제쯤 결혼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도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라며 웃었다. 1111
인터뷰가 끝나고 야외에서 사진을 촬영하던 중 한 중년신사가 이창호 9단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이름을 정중히 물어보며 사인을 해주는 이창호 9단. 사인을 건네받은 중년신사는 “이기고 지는 게 별겁니까. 이 선생님 힘내십시오” 라고 말했다. 아들뻘인 이창호 9단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며 파이팅을 외쳤던 중년신사의 바람처럼 올해 다시 ‘이창호 신화’가 이어지길 바란다. 1111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이상민 장소협찬 / 삼성화재
|
|
[i진선 한 마디]
아이구 이 기사에는 김성국 기자님의 이멜 주소가 없어서 난감하네요...ㅡ.ㅡ::
바둑 기사를 자주 올리시는 기자님들이야 제가 평소에 다 존경하는 분들이고, 타이젬 명예기자란의 기사화를 잘 이해해 주시고 바둑계 식구들이잖아요. 하지만 타 분야 기자님이 바둑 관련 기사를 쓰실땐, 제가 안면도 없고, 연락처도 몰라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기자님들도 흔쾌히 허락해주시지만, 이렇게 꼼꼼히 사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시는 기자님 계십니다. 앞으로 이런 방면은 철저히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모 기자님께 한 번 혼이 난 적이 있어서요...ㅠ.ㅠ::
인터뷰가 무척 참신하죠? 기자님이 이창호 9단을 '바둑계의 신사" 라고 언급한 것은 난생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신사는 맞죠. ㅋ 또 중년 신사분이 이창호 9단에게 '선생님' 이라고 부르셧다고하는데..과연 이제는 '이창호 선생' 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이창호 선생' 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어느 전문 분야에서 누구를 가르치지도 않고 성실하게 자기일만 해왔음에도 '선생' 이라 고 불리우는 것은 전문 분야의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올랐어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기는 솔직히 힘들죠. 자칭 '선생'이 넘치는 세상에 ' 이창호 선생' 이라는 호칭은 너무나 새롭습니다.
우리 이 새로운 호칭 암기해요. '이창호 선생님^^::'
업글 중이구요 아직 편집이나 관련 자료는 못 올렸습니다.
꾸벅 |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