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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창호 바둑의 끝?

[칼럼] 이창호 바둑의 끝?

2005-12-12 오후 12:37:49 입력

 

“이창호 바둑의 끝?

신과 맞바둑 둘 때까지죠!”

 

[오마이뉴스 2005-12-12 09:28]
[오마이뉴스 김용국 기자]
 
▲ "나의 형 이창호" 책표지
ⓒ2005 해냄출판사
나같은 만년 하수가 바둑 고수들의 세계를 어찌 아랴. 허나, 조기축구 주전에도 못낄 만큼 축구에 젬병이라도 월드컵에 푹 빠질 수 있듯이, 그저 바둑이 좋아서 바둑에 열광한다는데 누가 탓하겠는가.

20대 중반 학생이었을 때다. 우연히 바둑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바둑판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한동안 동네기원에 용돈을 바쳐가며 상수들의 대국을 구경했다. 음료수와 커피를 미끼로 상수들에게 접바둑을 부탁하고, 한 수 배우겠다고 기원에서 날을 샌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기력자들의 대국은 내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했다.

숨막히는 반상의 바깥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다행스럽게 텔레비전으로 거장들의 대국을 가끔 보게 되었다. 특히 이창호가 중국, 일본의 고수들을 꺾어가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창호의 한 수를 놓고 해설자들은 수십 가지 변화를 보여주면서, 유리하네 불리하네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렸다. 우리의 '돌부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을 놓아갔고,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스무살 이창호는 적어도 나에겐 영웅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창호의 승리에 열광할 줄은 알았어도, 그 뒷얘기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창호의 승부 한두 판에 일희일비하고 말 뿐이다. 숨막히는 반상의 바깥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며칠 전에 나온 책 "나의 형 이창호"(해냄출판사 펴냄)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그림자처럼 이창호를 수행한 동생 이영호가 바둑판 바깥 이야기를 꼼꼼하게 정리한 보고서이다. '화려한 승부사 이창호'가 아니라 '인간 이창호'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발로 쓴 '인간 이창호 연구서'로 불릴 법도 하다.

그저 친동생이라 이창호를 잘 알고 있으려니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비록 프로기사는 아닐지라도 수많은 대국을 지켜보면서 바둑 내용을 분석하고, 이창호와 상대기사들의 태도와 마음까지 읽어내려 한다. 무려 447쪽에 이르는 본문에는 바둑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채울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 연년생인 이창호와 이영호 형제. 동생 이영호는 이창호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2005 해냄출판사 제공

위기 상황, 돌부처의 한마디 "저녁은 카레로 할까?"

이 책에는 1999년 제1회 농심신라면배부터 올해 제6회 춘란배까지 이창호가 출전한 기전에서 생긴 이야기들이 시간 순서대로 담겨 있다. 검토실에서 초조하게 바둑을 지켜보던 동생의 심정은 물론, 곳곳에서 이창호의 소박한 품성과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이창호는 대국에서뿐만 아니라 사석에서도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화가 나거나 초조해질 만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일지 않는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003년 1월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가 열리던 중국 상하이. 한국 선수들은 조훈현을 끝으로 모두 패하고 주장인 이창호만 남았다.

무조건 2승을 올려야 우승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긴장될 만도 한데, 무표정한 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책을 덮으며 던진 한마디 "배고픈데 저녁은 카레로 할까?"(185쪽)

결국 이창호는 우승컵을 한국에 안겨주는데 그의 의연함은 창하오 9단과 맞붙은 2001년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도 나타난다. 1국의 결과는 끝내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한 이창호의 반집패. 그런데 실수를 한 바로 그 순간, 계시원이 마지막 1분 초읽기를 주의성 초읽기로 착각했던 것이다. 대회가 끝난 후 긴장하는 운영위원들에게 이창호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제 실수인데요 뭐"라고 넘겨버렸다. 이런 점 때문에 이창호가 진정한 승부사로 꼽히는 것 아닐까 싶다.

▲ "이창호는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아웃사이더에서 인파이터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승부를 초월한 바둑자체의 탐구를 위한 시도일 것이다.”사진은 올해 10월 KBS바둑왕전 대국 장면.
ⓒ2005 이창호 홈페이지 제공
호텔에서 중국기사들과 한밤중에 복기를 해야 했던 사연

사실 프로들이라도 이미 진 바둑에서 상대의 세세한 물음에 답해가면서까지 복기를 하고 싶지는 않을 터이다. 그런데 이창호는 바둑에서 이기건 지건, 상대가 나이가 많건 적건, 대국이 끝나면 최선을 다해 복기에 임한다. 이창호가 바둑의 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인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2004년 춘란배 때의 일이다. 저녁 8시쯤 이창호가 우승을 한 후 지쳐서 호텔에서 잠을 청할 무렵이었다. 결승 상대였던 후야오위 7단을 비롯해 나이 어린 중국의 기사들이 이창호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왔다. 그들은 복기를 요청했다. 이창호는 기꺼이 응했다. 그렇게 그들의 심야 복기는 시작되었고, 이창호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 12시반까지 계속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영호는 이날의 복기를 '한밤의 대습격'이라고 불렀다.

국제대회마다 조금식 규칙이 다르다 보니 생기는 재미난 일도 있다. 2000년 잉씨배 결승전 2국 창하오와의 대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220여 수나 진행됐을까. 갑자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두 손이 엄청난 속도로 오고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검토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중계 화면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어느 한 사람이 기권하고 복기가 진행되는 줄 알았다. 한 수 놓는데 0.5초나 걸릴까? 1초에 두손이 번갈아가는 속도로 수십여 수가 진행됐다."(52쪽)

다른 대회와는 달리, 잉씨배는 초 읽기를 없앤 대신 제한 시간을 넘기면 35분 단위로 2집을 빼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두 대국자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100여 수를 그렇게 주고받았던 것이다.

지은이는 세계 여러 나라의 기사들을 보고 느꼈던 심정들도 상세하게 기록했다. 몇 번을 태어나도 바둑으로 살아가겠다는 요다 노리모토, 중국의 바둑 황제 창하오, 고령에도 겸손함과 열정을 잃지 않는 린하이펑과 그의 제자 장쉬, 기재와 강한 정신력의 이세돌, 젊은 검객 유창호, 한국바둑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조훈현 …….

▲ 이창호와 창하오는 바둑판 앞에서는 혈전을 벌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승부를 떠나 절친한 벗이 된다. 앞쪽부터 이창호, 이영호, 창하오.
ⓒ2005 해냄출판사 제공
또한 이창호가 중국의 창하오,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와 함께 대국보다 치열하게 술대결을 벌이는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영호가 보기에 진정한 고수들은 사석에선 이미 승부세계를 초월해 있었다.

"이창호, 더 밝은 빛을 찾아 달려나갈 것이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이창호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지기라도 하면 "이창호 왜 이러나" "이창호 시대 저물었나" 하는 식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다. 이 책을 보면 이창호의 바둑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것 같다.

불확실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이창호의 기풍을 빗대어 쓰는 말이 "돌다리도 두드린 후 돌아서 간다"였다. 그런데 지은이는 최근 이창호의 바둑기풍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아웃사이더에서 인파이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승부를 초월한 바둑자체의 탐구를 위한 시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 모두가 (이창호를) 세계의 1인자의 자리에 있다고 말하지만 또 다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형은 이미 수많은 밝은 빛을 찾아냈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밝은 빛을 찾기 위해 달려나갈 것"이라고.

바둑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스스로 묻던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세상에 어딘가에 바둑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과 호선으로 바둑을 둘 수 있을 정도까지 스스로 만족하는 바둑을 완성하는 그것이 바로 목표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책의 지은이인 이영호씨와의 심야 인터뷰기사가 이어집니다.

[i진선 한 마디]

 

헐..무척 재미나는 기사인데...완결편이 아니고 후속편이 있군요...ㅜ.ㅠ::

김용국 기자님께 감사올립니다. 무척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아마 고수이신 것 같기도 하고...

혹시 타이젬 논단의 그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니면 말구요^0^::

TYGEM / i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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