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부따
'이것이 역대급 자충수!'
여류국수전 자충수 해프닝 전말
2014-04-10 오후 7:42:03 입력 / 2014-04-26 오전 12:02:56 수정
▲ 박지은이 승리를 거둘 찰나, 어이없는 자충수가 나와 타이틀을 놓쳤다.
4월4일 오전 10시, 한국기원 4층 특별 대국실에서는 제19기 여류국수전 결승3번기 최종국이 9단 박지은과 초단 김채영 사이에 벌어지고 있었다. 입신과 수졸의 만남이라는 수식어가 언제 부터인가 낯설지 않다는 점은 그만큼 어린 프로들의 기량이 프로가 될 때부터 세져있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프로들은 대개 작은 징크스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의 경우는 한번 연승하기 시작하면 이겼을 때 입었던 옷을 계속 입는 경우가 있다. 혹시 박지은과 김채영도 그럴까 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1국부터 3국까지 모두 다른 옷차림이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지난 10월. 김채영은 뭔가 잘 안 풀리고 있었다. 그 즈음에 멋진 옷에 화장을 예쁘게 한 김채영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연초 중국에서 한중교류전을 치렀을 때 중국 여자국가대표를 상대로 7승1패를 하던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평소 가까운 김성래 사범님(김채영 부친)부부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김)채영이는 아직 화장하고 꾸밀 나이 아닌 것 같다. 헛바람이 들면 그 또래 기사들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에 대해 김사범님 부부는 "행사나 큰 시합일 때는 기자들이 사진도 찍을 테니 좀 꾸미는 게 예의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화 이후 김채영의 화장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박지은은 10여년을 각종 굵직한 세계대회에서 맏언니 역할을 하고 있지만 2011년부터 타이틀 사냥에 실패하고 있다. 최정을 비롯해 그 중간에 있는 김혜민 박지연 역시 만만치 않다. 요즘은 세대교체 된 중국 여자기사들과의 경기도 만만치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류국수전은 놓칠 수 없었다. 박지은이 6년 동안 국내타이틀 무관이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고.
▲ 생애 첫타이틀을 따낸 순간에도 김성래 사범은 멀찍이 서 있을 뿐이었다. 박지은의 아픈 맘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이 바둑을 현장에서 직접 볼 생각을 하게 된 건 필자가 '장고 바둑에 대한 프로의 견해' 라는 제목으로 타이젬 칼럼을 준비하고 있는 관계로, 여자기사에게 3시간 바둑은 어떤 점이 특이하게 다가 올까를 지켜보고자 함이었다. 이 바둑은 대국시작 1시간 반 동안 24수, 점심 전까지(3시간 경과)는 60수의 느린 진행을 보였다.
초반부터 잘 짜진 박지은(흑)은 점심 휴식시간 이전에 중앙 전투를 시작했다. 이것이 이 바둑의 승기를 잡는 원동력이 되었다. 점심시간 오후1시가 되자 입회인인 심종식 사범님이 점심시간임을 알렸다. 1시간 동안 휴식을 하자는 뜻이다.
바로 일어서서 김채영은 나갔고, 박지은은 계속 앉아 있다 필자가 같이 그곳에 머무르자 비로서 자리를 일어섰다. 필자가 대국장을 나오자 그녀가 다시 대국장으로 들어갔다. (필자를 따돌리려는 것일까? ㅎㅎ) 점심을 거르고 1시간 동안 형세를 살피겠다는 뜻이다. 흔히 프로의 대국에서 보아온 장면이다. 1시간 30분이 남은 상황으로는 시간이 부족했고, 그만큼 이 바둑을 꼭 이기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바둑은 계속해서 박지은의 우세. 한 때는 차이가 반면 10집 이상이었지만 끝내기에서 차이가 좁혀지며 마지막 순간은 반면 9집. 승부가 확실히 기운 순간부터는 기자실과 기사실에서 이 대국을 지켜봤다.
마지막 순간에 기사실로 김성래 사범님도 들어왔다. 결과가 어떻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 어린 딸이 결승전에 패했을 때 충격 받을 것을 염려해 위로를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김사범님은 '차이가 많이 나지?' 라고 한마디. 목소리에 힘이 없다. 이런 때엔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리 없다. '초반부터 나빴어요. 반면 10집쯤.'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림1> 백 김채영-흑 박지은
한 5분 정도 지나자 이젠 1집 짜리와 반패만 남아 있다. 여기서 <그림1>을 보자. 우상귀 1선을 흑1로 젖힌다. 필자는 뭔가 낌새가 이상 하다는 걸 느꼈다. 그곳은 흑이 둘 곳이 아니다. 중앙에 1집 짜리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데 반집 자리를 둘 이유가 없다. (흑3 자리의 쌍립이 끊어지면 흑은 한 수 가일수를 해야 함) 아무리 마지막 초읽기라고 해도 1분 초읽기에서는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김채영은 다음 수를 당연히 중앙 한 집을 둬야 됨에도 우상귀를 덩달아 빨리 둔다. 왠지 변수가 될 것 같았다. 박지은이 중앙 한집을 둔다. 그리고 쓸데없는 반패 싸움이 이어진다. 반패를 통해 계산을 하는 것이다. (11~5, 14~8) 그러다 이긴 것을 확신한 박지은이 우상귀 반 패를 잇는다. 만약 중앙 한집이 없었다면 그것이 자충인 줄 모르고 박지은이 우상귀 반패를 그냥 이었을 것이다. 꿈에도 그것이 자충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김사범님은 '입력 실수겠지!'라는 순간, 필자의 몸은 대국장으로 이미 향했다. 이건 입력실수가 아닌 현실일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대국장은 조용하다. 정말 박지은이 반패를 이었다. 초읽기가 이어진다. 1분 초읽기는 5회지만 김채영 3회가 남았다. '50초, 하나, 둘…' 아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57초가 되자 흑 돌을 모두 들어낸다.
박지은은 깜짝 놀라며 순간 고개를 돌려 버리며 '엇!' 비명을 지른다. 김채영이 돌을 들어내는 순간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필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 시선이 괴로워서 대국장을 나왔다. 기자실의 기자들은 여전히 입력 오류인 줄 알고 있다. 저녁 6시가 약간 넘은 시각. 바둑계는 18세의 새로운 여류국수 김채영의 탄생을 알렸다.
집에 돌아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착각은 누구에게나 자유다. 바둑 기자들은 필자에게 이런 점을 물어봤다. 박지은의 착각이 말도 안 되는 착각 아니냐고, 또는 나이 탓이냐고. 필자는 그 점에서 약간 생각이 다르다.

2005 한국바둑리그 백:9단 목진석 흑:9단 유창혁.
흑1을 선수하고 백의 두 점 머리를 젖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2로 축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도 쓸데가 있었다.
착각(錯覺):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
비슷한말-착시, 혼동, 착오
실수(失手): 명사,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
착각과 실수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많이 쓰는 말이다. 그런데 프로들은 졌을 때 실수해서 졌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착각해서 졌다고 한다. 이건 표현 문제인데 실수와 착각은 바둑에선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어딘지 어감이 많이 다르다. 실수보다는 착각이 좀 표현을 완화 시키는 느낌이 있다.
아마추어의 경우는 착각해서 졌다는 말 앞에 '다 이긴 바둑을'이라는 수석어를 집어넣는다. 프로들이 금기시 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다 이긴 바둑'이라는 것이다. 그건 프로가 쓸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 바로 프로의 바둑은 공배를 메우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질문 중 첫 번째 말도 안 되는 착각 아니냐는 질문에는 앞서 정리를 통해 이미 그 착각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15기 기성전 본선16강전 백:5단(당시)최철한 흑:9단 조훈현.
패싸움 도중 패를 안 따내고 착수 금지인 흑1로 두었다.
두 번째 '나이 탓이 아니냐'에 대한 물음은 '반은 맡고 반은 틀리다'고 말하고 싶다. 프로가 착각이 많아지는 이유를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생활이 다양해지다 보니 그런 피곤함이 체력 부담으로 작용해 결국 집중력 부족으로 착각이 많아진다.
4가지 종류의 바둑을 소개한다. 흔히 말하는 역대 급 착각들이다. 그런데 이걸 표현 할 때 다른 점이 있다. 조훈현-유창혁 대국의 착각은 나이 탓이라고 하고 착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원성진(당시 16세)과 판윈러(당시 16세)는 박지은의 착각과 다를 바 없는데, '경솔하다'는 표현을 쓴다. 나이가 많아지면 착각의 빈도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어리다고 해서 착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 만큼 나이 탓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자기관리의 달인 목진석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착각이 많아진 것 같아?" 그의 대답은 "이세돌도 작년부터 많아지고, 저도 30 넘어서 부터인 것 같고, 그런데 박지은도 30을 넘겼죠. 요즘 전 사실 착각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술, 담배를 멀리하고 운동을 통해 체력 관리(결국은 자기관리)를 더욱 중요시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목진석은 '착각'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 착각 관련 시리즈는 너무 많다. 큰 아픔 속에 다음 날 황룡사쌍등배를 위해 이번주에 박지은이 떠났다. 그리고 내일(11일) 주장전을 갖는다고 한다. 'so cool!' 그것이 박지은 아니던가. '낭랑18세 듀오' 최정 김채영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언니 박지은'이 필요하다.

제11회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2국 백:3단 원성진 흑:4단 조한승.
백은 2로 먼저 치중해야 했다. 백1로 그냥 두는 바람에 흑4로 백 전멸.

2013 중국 신인왕전 결승3국 백:타오신란(94년생) 흑:판윈러(97년생).
흑1로 백2에 먼저 두었으면 우하귀 흑이 살면서 하변부터 중앙으로 이어진 백이 전멸이었다.
TYGEM / 김성룡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