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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가슴으로 가르칩니다"

서귀포에서 유일한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한공민원장

2014-12-14 오후 4:35:23 입력 / 2014-12-14 오후 8:52:11 수정

▲ 제주 서귀포에서 유일하게 바둑학원을 운영 중인 한공민 원장과 그의 사랑스런 제자들이 오랜만에 서울서 의기투합했다.

본토에서 떨어져있고 인구도 적다는 이유로 전국적인 시선에서 배제되기 일쑤인 제주에서 우수한 제자를 양성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한 바둑인을 만났다. 들어오고 떠나가는 인연이 애틋한 서귀포에서 유일하게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한공민 원장(54)이 주인공.

'서귀포바둑교실'은 올해 한화생명배 유단자부와 문화부장관배 저학년 유단자부 우승을 차지한 원제훈, 문화체육부장관배 고학년부에서 우승한 양유준, 제주일보배 어린이 최강자부에서 우승한 양한성, 제주특별자치도지사배 초등최강부 우승 오준혁 군 등을 배출하였다. 그 외 많은 한원장의 제자들이 굵직한 어린이대회를 두루 섭렵하고 있고, 유명바둑도장에서 제자들을 서로 키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과연 얼마나 잘 가르치길래, 뭘 어떻게 가르치길래 그렇게 소문이 자자할까. 기자는 이제나 저제나 제주로 취재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클럽A7'에 들린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다음 날 전국어린이대회가 있어서 서귀포에서 수제자들을 인솔해서 올라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오후7시 정각. 수제자 6명에 둘러쌓여 한원장이 들어선다. 동시에 클럽A7 사무실에서는 급하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술상이 차려진다. 기자는 근사한 고깃집에서 만찬을 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여느 집 저녁상 차리듯 익숙한 솜씨로 밥 국 그리고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제가 가면 한원장이, 한원장이 오면 제가 늘 밥과 잠자리를 책임을 집니다. 한원장과는 가족입니다. 친하자고 해서 친해지는 것은 아니고 가슴으로 통하면 친구죠."

한공민 원장과 A7 홍시범 대표는 동향의 절친. 그 한마디만 들어도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길 한사코 꺼려하던 한원장이었지만, 홍시범 심우섭 이재환(바둑토피아 대표) 그리고 기자와 함께 막걸리가 몇 순배 돌아가니….
▲ 클럽A7 사무실을 방문하여 오랜만에 제주출신 절친과 회포를 푸는 한공민 원장(오른쪽)과 홍시범 대표. 한원장은 서글서글한 성격에 붙임성도 좋고 심지도 깊은 사람이었다.

언제부터 바둑교실을 경영했습니까?
저보다 고수들이 너무 많은 바둑동네에서 제 바둑얘기를 하면 부끄럽죠. 믿기지 않겠지만 35세 즈음에 처음 바둑을 알았습니다. KBS바둑왕전을 보다가 제가 다음 수는 간혹 맞히고 하길래 재주가 상당한 줄 알았지요. 그래서 바둑책을 접했고 그런 다음 기원엘 갔죠. 지금 생각하면 계가도 제대로 못할 '자칭 10급'이었으니 기원에서 무진장 깨졌어요. 그러다 10여년이 지난 후에 서귀포로 다시 귀향을 했는데, 하필 동사무소 바둑대회에 나가서 제가 덜컥 우승을 해버린 거예요. 그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럼 바둑교실 원장님 가운데서는 늦게 바둑을 접했군요.
그렇죠. 그 후로 기원을 했던 선배에게 바둑으로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길 들고 그 선배가 바둑교실을 권유했고 제 나이 40을 넘어서 .바둑교실을 열었죠. 교학상장(敎學相長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뜻)이라고, 계속 가르치면서 저도 배우고 했죠. 그래도 모르면 다른 강자들에게 물어보고… 순수 독학이었습니다.

독학은 쉽지 않았을 것이데, 실례지만 기력은 어디까지 올랐습니까?
하하. 생각만 9단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몇 단이에요?'라고 물으면 저는 33급이라고 합니다. 전 선수도 아니니까 급수는 필요 없습니다. 얘들한테만 이 세상에서 최고인 선생이기만 하면 되죠. 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가르치니까….

가슴으로 가르친다? 어떤 방식인지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바둑 한판을 끝까지 두어준 적이 없어요. 아이들에게 방향제시만 하고 스스로 느끼게 할 뿐이지 더 이상 답을 가르쳐주진 않아요. 어차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바둑 아니겠습니까. 프로들은 실력으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전 항상 모르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줍니다. 가르칠 게 아니라 깨치게 하는 것이죠.

▲ 대회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제자들이 심우섭 사범에게 신정석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 꿈일진대, 바둑교실을 낭만적으로 운영하시면 애로사항은 없을까요?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하. 문제는 이런 저의 교육방침에 수긍하는 학부모님들이 이해를 해주시는 것이 힘이 됩니다. 13년 바둑교실하면서 모두 내손으로 키운 내 새끼인데 사회에 나가서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프로를 몇 명 길러냈냐 하는 것이 능력있는 선생님의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도 가치가 있죠. 허나 바둑을 배운 얘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있지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점이라고 봅니다. 중2 때까지 공부를 등한히 하다가 우연히 바둑을 접했고, 또 바둑을 학업 때문에 일시정지하고 공부에 전념해서 4개월 만에 전교 2등을 한 아이가 있어요. 지금은 전교 1등을 도맡아 해요. 바둑교실에서 그 아이의 소질을 개발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이 학생은 소년체전에서 바둑으로 2연패를 차지한 적이 있는 현승민(남주고2)이다. 이번 전국체전에서는 학업 때문에 몇 년째 바둑을 쉬고 있었으면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3년 동안 바둑돌 한 번 안 잡은 학생인데, 명문대 진학이 확실시 된다고.

다 좋습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돈이 안 될 것 같은데 현실적인 괴리도 있잖습니까?
어려운 문제죠. 저는 제가 좋기 때문에 관계는 없습니다. 이제 수능이 끝났지 않습니까. 과거에 한화생명배 대표로 나갔던 제자가 이제 바둑을 다시 해야 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과거에 배운 것은 중2~3때까지는 도움이 되었으니, 조금 더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2월까지 학원비는 안내도 된다고 했죠. 돈에 연연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하죠. 하하.

▲ '제주에 오시면 한원장을 찾으세요!' 한공민 원장(분홍색 상의)은 길지 않은 바둑계 이력에도 불구하고 가슴으로 바둑사랑을 나누는 바둑인과의 관계가 두루 원만하다. 제주를 방문한 아바사(아마바둑사랑회)회원들과 함께.


한원장은 자기만의 교육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저 아이는 기분을 업해야 할 아이, 또 저 아이는 기분을 좀 다운시켜야 할 아이가 따로 있단다. 너무 기분이 업 되어있으면 귀갓길에 사고가 나고, 또 난 적도 있단다. 실제로 그런 것을 컨트롤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요즘 아이들 똑똑합니다. 그런 머리를 가지고 다른 길로 가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바둑 잘 둔다고 해서 꼭 프로기사의 길을 가야 하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법과대학을 나왔다고 꼭 법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죠. 바둑을 배웠다고 해서 꼭 프로라든지 바둑을 길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그러한 고민 자체도 아이들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사코 제주바둑의 계보에 낄 계제가 아니라는 한공민 원장의 교육지론이다.

"바보 같은 사람이죠. 바둑이 좋아서 아이들이 좋아서 자식마냥 키우니까요. 돈보다는 아이를 키우는 보람으로 사는 사람이죠. 한마디로 제주도 바둑의 머슴이죠." 그 역시 골곡이 많은 동향의 절친 홍시범 대표가 한원장을 표현한 말이다.

▲ 클럽A7을 방문하여 사랑스런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기다리며.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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