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통 단장이 손녀뻘 김수영 선수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선수는 서울천일해운의 라이벌인 대구덕영 소속이다.
정연통 회장은 1934년생이니 만 80세이며 우리나이로는 82세. 화통하고 명쾌한 목소리로 보아 한눈에 건강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팔순의 연세가 부담스러워 기자는 건강 얘기부터 꺼냈는데, 곧장 준비된 듯 답변이 돌아왔다.
"헬스는 주3회, 골프는 주1회 이상, 그보다 많은 시간동안 바둑을 즐깁니다. 고향친구와 기력이 비슷한데 서로 자신이 잘 둔다고 우기죠. 하하. 라이벌이 있다는 게 좋은 것이더군요. 몸건강과 정신건강 양면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해운회사 1만개 중 가장 성공한 회사로 꼽히는 천일해운은 하주(荷主)가 맡긴 화물을 선박이나 항공에 인도하는 것이 주업무. 정회장은 국제복합운송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인정받고 있는 글로벌업체인 (주)천일해운을 비롯하여 한국화물터미널, (주)해강선박을 동시 경영하고 있다.
그는 '해운왕'답게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고향은 경북 영천이고 경주에서 중고교를 다녔으니 바다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런데도 그가 해양대를 지원했던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해양대는 돈 한푼 들지 않는 호조건이었다.
"학창시절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해양대와 서울법대를 동시에 합격했지만, 가정형편상 특채로 합격한 해양대를 갔습니다. 입학하던 1954년은 종전 1년 후라 국가재건에 전력을 기울일 때였죠. 바다에 눈을 돌리면 상당한 미래산업이 될 것이라는 부모님의 권유가 있었죠."
그 길로 바다와 인연을 맺고 60여년을 외길만 보고 달렸다. 해양 전문인력이 부족했던 시절, 해양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10년간 경험한 후, 34세에 극동해운에 픽업되었고,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중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45세의 늦은 나이로 지금의 천일해운을 창업한다. 당시는 중동에 건설붐이 일어서 건축자재 수송을 위한 '중동특수' 덕에 천일해운은 승승장구했다.

▲ 서울천일해운은 내셔날리그 경기때마다 대회장 한편에 '이객위업(利客爲業)'이라는 사훈이 담긴 현수막을 건다.
그는 구단주로서 의무감보다 스스로 팀이 걱정되어서 자주 대회장에 나온다. 앉아서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고. "모든 문제는 감독에게 맡겼는데 딱 한 가지만 부탁했어요. 조민수 선수만은 꼭 잡으라고 했죠. 좋은 실력을 가진 분이니까요. 그런데 작년 포스트시즌 때 조선수가 감기에 걸려서 컨디션이 그만…. 올해는 잘 할 겁니다. 하하." 작년 정규리그를 우승하고 포스트시즌에서 대구덕영에 역전패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하는 말이다. 꽤 아쉬웠던 모양이다.
정회장은 승부에 매몰되지는 않지만 승부욕도 은근히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승부욕이야 말로 자신을 자극시키는 좋은 효소라고 믿는다. "이왕 승부에 임하면 잘 해야죠. 이겨야죠. 절대 사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회사와 붙었으면 반칙을 쓰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겨야죠. 못 이기면? 그야 할 수 없지요. 하하."
왜 이렇게 고마운 분이 이제야 나타났을까. 정회장이 본격적으로 바둑계에서 알려진 것은 대략 5년 전이다. 당시 여성연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서울천일해운 고형옥 감독이 여성연맹의 수장을 이어받으면서 자연스레 내셔널리그 팀 창단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 이전 재경대구경북시도민회 기우회를 만들기도 했고 경북시도대항바둑대회도 매년 개최하기도 한 숨은 공로자였다.
"제가 경북시도민회회장을 한 적이 있어서 대구바둑협회 이재윤 회장님을 알고 있었어요. 그 분이 아마바둑을 위해 오랜 세월동안 봉사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고, 저도 이왕 바둑계에 발을 들여놨으니 좋은 의미로 봉사하자고 맘을 먹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