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대회
노사초를 만나러 가다
노사초배가 열린 함양을 찾아
2015-10-10 오후 11:49:06 입력 / 2015-10-12 오전 8:46:26 수정
▲ 노사초 선생의 생가에는 맏며느리 이정호(89 가운데)씨가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손녀사위 박대식 씨와 손녀 노말혜 씨.
이창호는 '스승' 조훈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국수요, 조훈현은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이 있었기에 존재 가능했다. 조남철의 위대함도 그 이전 노국수(老國手)중 최고봉이었던 사초 노석영(1875∼1945)이 있었기에 탄생 가능했다.
10일 오전11시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 안산에서는 노사초 선생을 기리는 뜻 깊은 제사를 모셨다. 임창호 함양군수를 비롯한 군 관계자와 고영희 함양바둑협회장, 노진섭 함양바둑협회 사무국장, 백성호 프로 그리고 후손 박대식(노사초 선생의 손녀사위) 노말혜(친손녀)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제사에는 임창호 군수가 초헌관, 고영희 바둑협회장이 아헌관, 노사초 후손 박대식이 종헌관으로 나서 성공적인 대회를 기원했다.
함양군은 일제시대 최고의 국수로 활동했던 노사초 선생을 기념하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비고을인 함양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정례적으로 전국 아마바둑대회인 '노사초배'를 개최하고 있다. 노사초배는 선생 사적비가 세워진 2008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경남 함양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으로 불린 영남유림의 본산이다. 한양에서 임금이 내려다 보면 좌측이 안동, 우측이 함양이다. 과거부터 '정자문화'가 꽃폈던 함양으로 마산 창원 진주 등지에서 유학을 왔다.
함양 개평마을은 조선의 대표적 선비 일두 정여창(1450∼1504)을 배출한 하동정씨와 함께 풍천노씨가 일궈온 집성촌이다. 이들의 고택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노참판댁 고가이며. 노참판댁 후손 노사초는 바둑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선비의 고장 함양의 풍광을 담아보았다.
▲ 함양군청 앞에 위치한 학사루(學士樓).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이곳에 올라 시를 읖었다고 전해진다.
▲ 함양은 '정자(亭子)문화'가 꽃을 피웠다는 말을 증명하듯 곳곳에 정자가 있었다.
▲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 안산. 이곳이 노사초선생이 누워 계신 곳이다.
▲ 문외한이 보아도 전망좋은 곳에 노사초 선생의 묘가 있다. 우하귀 쪽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
▲ 임창호 함양군수가 술잔을 올리고 있다.
▲ 함양군바둑협회 고영희 회장이 노사초 선생에게 절하고 있다.
▲ 노사초의 후손 박대식(손녀 사위) 씨.
▲ 노사초 선생의 사적비
▲ 임창호 함양군수(맨 오른쪽 남자)를 비롯한 제사에 참여한 분이 음복하며 노사초 선생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옆은 친손녀 노말혜 씨.
▲ 임창호 함양군수는 함양에서 조만간 세계대회를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알렸다.
▲ 노사초선생의 생가를 방문하는 길에 '우물역사터'를 볼 수 있었다.
▲ 개평마을에는 일두 정여창 고택을 비롯해 하동정씨 고가, 풍천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 등 고택이 많다. 이 고택들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노참판댁 고가로 노사초 선생의 생가.
▲ 노사초 선생의 맏며느리 이정호(89)씨와 손녀 노말혜 씨.
▲ 조선 전기의 문신 겸 학자 정여창의 고택.
▲ '공배마을? 이거 대박이닷!!!' 역시 바둑마을답다.
TYGEM / 진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