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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시선집중

"이제부터 계시기는 제가 직접 누를게요"

LG배 결승3번기 취재수첩 - 계시기와 계시원 문제

2016-02-04 오전 11:31:45 입력 / 2022-07-28 오전 10:37:16 수정

▲ 박영훈-강동윤. 강동윤(오른쪽)이 착수한 후에 직접 계시기를 누르고 있는 장면.

오전11시 현재 강원도 평창에선 우승상금 3억원과 세계타이틀 홀더 복귀가 걸린 중차대한 일전이 한국2위 박영훈과 4위 강동윤의 대결로 벌어지고 있다.

두 선수가 모두 착석한 후 셔터 세례가 터지고 오전9시 정각에 대국개시가 선언된다. 여기까지는 앞선 두 판의 대국과 대동소이한 흐름. 하지만 지난 1일부터 오늘까지 평창 현지에서 LG배 결승3번기를 실시간 보도하고 있는 기자는 뭔가 달라진 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1,2국과 바뀐 점은 계시기를 두 대국자가 직접 누른다는 것. 기존의 계시기는 초읽기 기능이 없는 것으로, 시간을 다 사용해 초읽기에 몰리게 되면 계시원이 초를 직접 읽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 최종3국을 앞두고 박영훈이 한국기원 관계자를 통해 초읽기 기능이 있고 두 대국자가 직접 누를 수 있는 '전자계시기'로 교체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LG배 결승전은 계시원이 동행하는 시합이므로, 원칙적으론 전자계시기를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기원 관계자가 '유비무한' 정신을 발휘해 사전에 전자계시기도 함께 준비한 것이 빛을 발한 것. 

원래 프로기사들은 모두 다 본인이 직접 계시기를 누르고 싶어한다. 승부의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고령의 프로기사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프로기사들은 자신이 착점하고 시계를 누르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시계를 눌러주면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들거나 편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팬들도 있는데, 승부가 중요한 프로기사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착점한 후 계시기를 누르는 것에 비해 계시원이 눌러주는 것은 시간이 느리다. 불과 1,2초에 차이지만 큰 승부를 벌이는 대국자에겐 그것이 전판에 걸쳐 계속 누적될 때마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 것. 

특히, 박영훈 강동윤 같은 경험 많은 프로들은 마지막 초읽기 순간 '아홉'에 착점을 하고 시계를 누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계시기에 익숙하다. 이것은 연구생 시절부터 숱하게 단련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계시원이 대신 계시기를 누르고 초를 읽게 되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계를 누르는 시간과 초를 세는 간격이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는 문제점을 포함해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생긴다.

과거 바둑리그에서 종종 등장한 시간패 논란과 비디오 판독 사태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실제로 프로들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 후 '아홉'에 착수하는 경우도 많은데, 계시원 입장에선 냉정하게 '열'을 불러야 할 지, 약간의 뜸을 들여야할 지 고민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세기의 대결'로 불린 이세돌-구리 10번기에서도 두 대국자가 직접 계시기를 눌렀다. 이것 역시 이세돌이 직접 제안했다는 후문. 정상급 프로일수록 계시기를 본인이 누르는 것을 선호하고, 그것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계시기는 반드시 착수한 손으로 눌러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대국자가 직접 착수하고 계시기를 누르게 된다면 어떤 논란도 생길 이유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계시원을 두는 방식은 폐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그동안 계시원이 초를 읽어주는 방식을 채택했던 이유는 사실 방송 때문이었다. TV중계를 할 때 계시기가 초를 읽는 기계음보다 사람의 음성으로 초를 읽는 것이 듣기에 더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하지만 방송을 보는 팬의 입장에서도 초를 계시기가 읽느냐 사람이 읽느냐 보다는 대국자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공정한 승부를 펼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가고,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 자명하다.

대국자도 불편하고 계시원도 불편한 잔재는 이제 청산하는 것이 스포츠를 표방하고 있는 바둑계가 해야할 시급한 일이 아닐까.
 

▲ 결승2국 종국 후 복기장면. 1~2국에서 사용된 계시기는 아래쪽에 보이는 것과 같이 초읽기 기능이 없는 것으로, 계시원이 시계를 누르다가 시간을 다 사용하고 나면 초를 직접 읽는 방식이었다.

 

이영재 기자

TYGEM /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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