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 시사저널
한국바둑 대약진이 시작된다!
2014 상반기 세계대회 결산
2014-09-13 오후 2:03:52 입력 / 2014-09-13 오후 2:43:03 수정
▲ 한국바둑 에이스들의 활약여하에 따라 하반기 세계대회 풍년을 기약할 수 있다. 이세돌 김지석 박정환.
2013년은 한국바둑이 큰 시련을 겪은 해였다. 세계대회 개인전에서 단 하나의 우승컵도 차지하지 못한 채 중국에게 완패를 당하며 무려 1년 9개월 동안이나 무관의 설움을 곱씹었다.
그러나 4월 '일지매' 유창혁을 사령탑으로 한 국가대표 2기가 본격 출범하면서 다시 중흥을 맞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특히 지난 6월 이후 한국대표팀의 연속된 눈부신 선전은 추석 이후 상당한 결실을 기대하게 만든다.
2014년 시작도 시련의 연속선상이었다. 먼저 2월 한중일 대표기사가 참가하는 하세배에서 한국대표 이세돌은 일본의 무라카와다이스케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조기탈락했다. 물론 새해를 여는 이벤트대회였지만 첫 출발이었던 만큼 매는 생각보다 아팠다. (2월4일 중국 스웨 하세배 우승!)
곧 이어 벌어진 제18회 LG배 결승은 작년 'LG참패'를 다시 생각가게 할 뿐이었다. 작년 대회의 마무리로 중국기사 간 결승맞대결이었다. 한국은 퉈자시가 저우루이양을 누르고 새로운 세계선수권자가 되는 광경에 박수만 칠 수밖에 없었다. (2월13일, 중국 퉈자시 LG배 우승!)
▲ 박정환-스웨(승) 농심신라면배 우승결정전.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이 자랑하던 연승전인 제15회 농심신라면배에서도 우승컵을 빼앗겼다. 최종전까지 잘 싸웠던 주장 박정환이 중국 주장 스웨에게 석패하면서 단체전 우승컵마저 넘겨주었다. (2월28일, 중국 농심신라면배 우승!)
올 초부터 내리 세 번이나 연속으로 오성홍기가 국기게양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았지만, 동토의 계절을 인내한 힘이었을까. 따뜻한 봄이 되자 서서히 기운이 올라왔다.
3월말에 벌어진 제4회 초상부동산배에서 당초 5명에서 7명으로 선수 숫자를 늘려 개최한 중국을 상대로 '반집승'을 거두며 예상치 않았던 우승을 차지한다. 허리가 두터운 중국으로서는 7명까지 출전선수를 늘이면 당연히 우승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전적은 7대7 동률이었지만, 2차전 주장전에 출전한 박정환이 중국 주장 스웨를 꺾어 한국에 첫 우승컵을 안겼다.(3월23일, 한국 초상부동산배 우승!)
즐거움은 연속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바둑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4월에 벌어진 여자단체전인 제4회 황룡사배와 제3회 갈현녹차배에서 모두 중국에 패했다. 황룡사배에서는 박지은 최정과 위즈잉 왕천싱의 대결이었다. 최종국에서 믿었던 박지은이 최종국에서 왕천싱에게 패했고(4월12일 황룡사쌍등배 중국 우승!) 갈현녹차배에서는 최정이 천적 위즈잉에게 또 패하면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침체가 가속되었다.(4월25일 갈현녹차배 중국 우승!)
▲ 국가대표발대식.
그러나 4월은 절망과 탄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했다. 한국바둑은 특단의 조치로 유창혁을 감독으로 한 국가대표 상비군체제를 출범시켰다. 과거에도 부정기적으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상시적으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하겠다는 '진짜' 국가대표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상급 기사들이 함께 모여 바둑을 두고 공동연구를 하며 최명훈 코치와 김성룡 전력분석관이 매일매일 출근해 후배 선수들을 다독이고 이끌었다. 여기에 한국바둑의 간판스타 이창호와 이세돌이 가세해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대반전의 시동을 걸었다.
두 달 정도 흘렀을까. 늦었다는 일부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일지매 사단'은 거짓말 같이 달라졌다. 강릉에서 벌어진 제19회 LG배에서부터 대반전이 시작되었다. 32강전에 10명이 출격한 한국은 17명이 출전한 중국과 10대10 한중전을 펼쳐 6승4패를 거뒀다. 이어서 16강전에서는 6대6 한중전에서 4승2패를 거두며 급기야 8강에 4명을 올려놓는 대 선전을 펼친다.
32강 17대10, 16강 10대6, 8강 4대4.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한국바둑 에이스급들이 활약한 결과였다. 8강에 진출한 한국선수는 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박영훈. 이세돌이 탈락한 것은 아쉽지만 충분히 우승을 기대해볼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다. (6월11일, 한국 LG배 8강 4명 진출!)
▲ 지난 7월 바이링배에서 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했던 유창혁 감독이 최철한의 바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곧이어 7월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제2회 바이링배에서도 선전은 이어졌다. LG배보다 더욱 극적이었는데, 32강전에서 10명이 출전한 한국은 22명이 포진한 중국의 인해전술을 뚫고 16강에 7명을 올렸다. 한중전 6판에서 5승1패를 거둔 효과였다. 이어 16강전에서 대 중국전 5승2패를 거두며 8강에 5명을 진출시켜 '북경대첩'을 완성했다.
바이링배 16강에서는 한중 에이스 맞대결에서 박정환이 천야오예에게 완벽한 수읽기를 앞세워 KO승을 거둔 것을 필두로 김지석 안국현 진시영이 중국 격파의 선봉에 섰다. 10대 22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거둔 대승이었다. 오는 16일 중국 꾸이양에서 벌어지는 8강전에서 '귀주대첩'이 이어질지 큰 관심을 모은다. (7월22일, 한국 바이링배 8강 5명 진출!)
8월에 이어진 삼성화재배에서도 앞선 두 대회처럼 강한 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선전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8월6일 벌어진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서 한국은 5장의 본선 티켓을 확보하는데 그치며 또 다시 악몽을 꾸는가 싶어 조바심이 났다. 11장을 확보한 중국은 통합예선에서의 강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막상 본선32강 더블일리미네이션이 벌어지자 상황은 돌변했다. 11명이 출전한 한국은 16강에 7명을 진출시켰다. 16명이 출전해 16강에 8명이 올라간 중국과 대등한 대결을 펼친 것.
국가대표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에서 김지석이 천야오예 탕웨이싱을 연파하며 가볍게 16강 직행 티켓을 확보했으며, 10번기 7국을 앞두고 있던 이세돌도 2연승으로 16강에 올랐다. 한국의 '빅3'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은 각각 옌환 루이나이웨이 랴오싱원과 맞붙게 되어 16강 대진운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8월28일, 한국 삼성화재배 16강 7명 진출!)
▲ 삼성화재배 16강 진출자의 면면. 한국은 이중 7자리를 예약했다.
8월에 또 하나의 세계대회 2014 국수산맥배 한중단체대항전이 벌어졌다. 한국은 중국에 1라운드 3-2, 2라운드 3-2로 승리하며 라운드별 결과로는 2대1로 앞섰으나 3라운드에서 1-4로 대패하는 바람에 총 전적 7대8로 중국에 우승컵을 넘겼다. 그러나 세부적인 전력에서 한국이 조금 뒤진다는 예상이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의 선전이었다. 특히 김현찬이 2승을 올리며 분전하는 등 한국의 허리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8월11일, 중국 국수산맥배 우승!)
조용하던 이세돌이 드디어 일을 냈다. 이세돌은 8월19일 TV바둑아시아선수권에서 1년9개월 만에 한국에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컵을 안겼다. 대회전부터 박정환과 이세돌이 출격해 우승을 예상하긴 했지만, 10번기를 치르는 와중의 이세돌이 우승하게 될지는 몰랐다. 중국신예 타오신란, 일본일인자 이야마유타, 일본 고노린을 차례로 꺾고 595일간 무관의 설움을 벗어던졌다. (8월19일, 한국 TV아시아 이세돌 우승!)
8월의 정점은 이세돌의 몫이었다. 4-2로 리드한 채 7국을 맞은 이세돌은 티베트 라싸에서 벌어진 고원의 혈투에서 구리에게 또 이겼다. 이로써 5승2패로 앞선 이세돌은 최소한 무승부를 확보하며 약 4억원의 상금을 확보했다. 남은 세 판 중 한 판만 더 이긴다면 500만 위안(약 8억3000만원)의 상금과 함께 70년만의 10번기를 영광스럽게 차지하는 영웅이 된다. (8월31일, 한국 10번기 7국 이세돌 승!)
▲ 구리-이세돌(승) 10번기 7국 모습.
▲ 궁륭산병성배 결승 루이나이웨이-최정(승) 대국모습.
추석선물은 또 이어졌다. 그간 맥을 못 추던 여자바둑에서 경사가 난 것. 제5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는 간판스타 최정이 중국 여자갑조 7승1패, 삼성화재배 16강 진출 등 '제3의 전성기'가 왔다고 평가되는 난적 루이나이웨이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18세의 나이로 세계바둑퀸에 오른 최정은 그간 세계대회에서 다소 부진했던 모습을 씻어내며 향후 여자바둑 전망을 밝혔다. (9월3일, 한국 최정 궁륭산병성배 우승!)
올해는 또 세계신예대항전이 창설 러시를 이뤘다. 신예대회에서는 의외로 일본이 강세를 보였다. 끝난 2014 글로비즈배 세계바둑 U20에서 일본의 이치리키료가 우승을 차지한 것. (5월11일, 일본 이치리키료 글로비즈배 우승!)
한국과 중국의 정예가 3대3으로 맞붙은 2014 메지온배 한중신예대항전에서는 한국이 중국을 2대1로 제압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중 참가선수 중 유일하게 3전 전승을 거둔 신진서의 맹활약에 힘입어 차세대 한중 바둑계를 이끌어갈 신예 대결에서 한국이 우승을 거둔 것. (6월18일, 한국 한중신예대항전 우승!)
하지만 보다 큰 비중의 리민배 세계신예대회에서는 중국의 인해전술에 완전 밀렸다. 황재연 신진서 2명만 예선을 통과하는 등 본선진출자는 시드 나현을 포함 3명뿐이다. 24명이 출전하는 본선에서 한국선수가 3명밖에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에서 우승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크다. (8월18일, 한국 리민배 본선 3명 진출!).
▲ 리민배 세계신예선수권 2차예선을 통과한 신진서 황재연(4번째 5번째). 본선24강전에는 한국의 시드 나현과 함께 고작 3명이 출전하게 된다.
이상 올 상반기에 벌어진 세계대회 국제대회를 종합해보았다. 이미 세계바둑의 흐름은 2013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주도해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최근 국가대표 에이스를 위주로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중이며, 여자바둑도 '10대 트리오' 최정 김채영(이상 18세) 오유진(16) 등이 맡아줄 것이므로 큰 난제는 당장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다만 신예대회에서 보았듯이 중국은 물론 일본에게도 우위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을 하루 빨리 탈출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남겼다. 국가대표팀의 최우선 과제도 당연히 신예군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소식이다.
TYGEM / 이영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