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의 세계화’가 가속도를 얻고 있는 느낌이다. 바둑 세계화는 4반세기 전부터
거론되던 것이라, 에구 또 그러다 말겠지, 역시나 이번에도 그렇게 말만 무성한 채 지나가겠지, 하고 반신반의하는 회의적
시선도 있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다.

의견들이 모이고 있다. 시동을 걸고 있는 개인·단체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물이 끓기 직전과 같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바둑 세계화를 향한 열망의 물은 끓어 넘칠 것 같다. 무더운 요즘,
빠르면 이 더위가 물러가고 바람의 체감온도가 바뀌는 가을쯤이면, 세계화를 사업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기관이 여럿 모습을
나타낼 것 같고, 그 방법이나 각론도 구체적으로 선을 보일 전망이다.
또 가을쯤이면 한국기원의 대한체육회
가입 여부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반세기 동안 한국 바둑의 총본산으로 활동해온 한국기원과 아마바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오고 있는 한국아마바둑협회(1997년 창설)는 현재 어떤 형태, 어떤 수순으로 대한체육회에 들어가느냐를 놓고 조율
중인데, 거의 윤곽이 잡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둑의 체육회 가입이 곧 바둑의 세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바둑계
단체들이 어떤 식으로 통합 혹은 재편되느냐 하는 것이 세계화 작업과 무관할 수는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바둑계 재편과 바둑 세계화를 위해 뛰고 있는 주체들에게 한두 가지 건의하는 소리가 있어 소개한다. 우선 한국 바둑의
인적자원, 네트워크 혹은 인프라를 망라·취합·정리하는 작업이다.
일본 프로기사 인명록을 보면
조치훈·조선진·류시훈 9단 외에도 한국식 이름이 더러 보인다. 보통 네 글자나 다섯 글자로 된 일본 기사 이름들 중에서 세
글자 이름은 쉽게 눈에 띈다. 세 글자 일본 이름도 물론 있지만, 우리는 성이 한 글자고 이름이 두 글자인 데 반해
일본식은 대개 성이 두 글자다. 게다가 우리는 성과 이름을 붙여 쓰지만 일본은 띄어 쓰고 있어 구별이 된다. 중국에서
건너온 기사들도 세 글자 이름이나, 이름이 워낙 특이해, 누가 중국 사람이고 누가 한국 사람인지는 그냥 보면 안다.
일본기원 소속 기사 중에 한국에서 건너간 경우를 제외하면, 세 글자 이름의 재일동포는 송광복 9단(41)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재일동포 기사 중에서는 최고단이다. 송 9단 외에도 있을 텐데 아마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나 관서기원 소속의 조총련계 기사들은 모두 세 글자 한국 이름이다. 네 글자, 다섯 글자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이름의 숲속에서 세 글자 이름 몇 개는 단아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다.
한민족 바둑대회 같은
아이디어도 참신하다. 한국 바둑 세계화에 전초기지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가깝게는 북한·일본·중국·동남아,
멀게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미주와 유럽과 호주 등지에 퍼져 살고 있는 우리 바둑인들이 모여 바둑을
두고, 힘과 아이디어를 합치는 것이다. 우리 바둑은 프로도 세계 제일이지만, 아마추어들도 세계 곳곳에서 현지의 바둑계를
실력으로 장악하고 있다.
한민족 바둑잔치 같은 게 정말 구체적으로 논의된다면, 그럴 때 조총련계 바둑인들은,
특히 남북한 바둑의 본격적인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을
좀 소홀히 여겨왔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바둑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관심을 기울일 때다. 재미동포는 약
250만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포 1~2세대까지는 바둑이 그런 대로 명맥을 유지했으나 3~4세대에 이른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이들에 대한 바둑 전수·교육이 시급하다. 유럽 바둑 인구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미국 자체의 바둑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 시장에
들어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작업은 바둑의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어권에 정착하는 동시에 시장의 볼륨이
기본적으로 100배는 커진다는 것을 구태여 강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