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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리, 프로의 존재 이유
숭리, 프로의 존재 이유
2011-04-29 오후 5:39:21 입력
승리는 프로의 존재 이유다.

지은: 도원아, 너의 7연승 덕분이야 ㅋㅋㅋㅋ 도원: 아니에요. 지은 언니 덕분이에요^^:: 지연: 얼씨구 둘이서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ㅋㅋㅋ내 덕분으로 합시다^^::
프로스포츠에서 승리는 프로의 존재 이유다. 프로기사는 한 판 한 판의 승리를 위해서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위 랭킹자는 최상위권 기사에게 단 1승이라도 쟁취하기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을 던져서 도전해야 한다. 패배를 목전에 둔 마지막 순간까지도 승리의 길이 없는지 찾아봐야 한다. 그런 노력없다면 더 이상 프로가 아니다. 한 번 이기면 1승이요, 다음 판도 이기면 연승, 다시 또 이기면 3연승. 이기면 이길수록 기세를 타니 승리한 기사는 더욱 잘한다, 그러다보면 10연승을 넘어서 20연승 30연승까지 도달하는데, 불 붙은 연승에 팬들은 환호하고 메스컴도 주목하니, 바둑 홍보에 이만한 것도 없다.

헤이자자: 내도..연승 엄청 좋아합니더!
2011년 연초에 그 역할을 중일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문도원 2단이 훌륭히 해냈다. 제9회 정관장배 1차전 7전 전승. 동대회 제8회에서는 박지은 9단이 한국 선수가 모두 탈락한 가운데 끝내기 4연승을 거두어 우승했는데, 수고를 덜어주려는 듯이 첫번째 주자로 나선 후배 기사가 중국 일본 여성기사 7명을 연이어 무찌른 덕분에 한국이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이왕이면 2차전에서도 나머지 끝까지 연승을 해서 과거의 서봉수 9단의 9연승기록을 깻다면 더 좋았겠지만, 중국 매체에서 "여자 서봉수가 나타났다"고 놀라워했을 정도니, 문 2단의 세계기전 7연승은 충분히 가치있었고 홍보 효과도 매우 컸다.
상위권 프로기사에게 연승은 기본

"연승이 의미 있느냐 없느냐는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연승없이는 결승전 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요. 우승할 기회가 없다는거죠. 가치론이 아니라 현실론입니다."
그러나 7연승이 많은 연승임에는 틀림없지만, 막상 기록을 뒤져보면 이 정도의 연승은 수 없이 많다. 2010년 한국 랭킹 10위권 이내의 기사들은 5연승 정도는 흔하고 10연승도 보통이요, 20연승 24연승까지도 있다. 더우기 다연승 한 후에 한번 두번 잠깐 쉬었다가 다시 다연승을 하는 징검다리(?) 연승은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등의 최상위권 기사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조훈현 9단이 한창 기세가 오를 때 2연패이상 하지않고 연승으로만 점철된 '징검다리 100연승'도 했었다고도 하는데 필자가 세어본 바는 아니라서 장담은 못하지만 막상 찾아보면 더한 기록도 나올 수 있을 듯. 또한 세계기전 본선에 올라가려면 시드잔류자외에는 누구나 공평히 예선전을 통과해야하는데 5~7연승 정도는 필수.

"연승하면 저의 남편이죠^^::무려 41연승!" "자기야..뭘 부끄럽게스리 ㅋㅋㅋ"
거기서 다시 결승문턱까지 오르려면 5~6연승 정도를 추가해야 한다. 연승 한다고 해서 우승이 확실히 보장되지는 않지만, 연승하지 않고서는 우승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연승했다고 초일류기사는 아닐지라도, 초일류기사는 연승을 밥먹듯이 한다. 이렇게 흔한(?) 연승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특정기전과 상관없이 일정 기간동안의 대국 활동에서 패배없이 거두는 단순 연승,정관장배의 문도원의 예처럼 단일기전에서의 연승, 국내기전활동만의 연승, 세계기전 연승, 특정기전 타이틀 보유 연승등등 기록 발굴자가 의미있는 설명만 붙일 수 있다면 새로운 개념의 연승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프로기사와 바둑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연승. 메스컴의 관심도 끌고, 일반인에게까지 귀를 솔깃하게 하게하는 일거양득의 연승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현대 바둑사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연승과 더불어 각종 스포츠에서 기록된 위대한 선수들의 연승도 함께 알아보자.

"여보, 우리 부부의 행복도 연승해요^^::" "암..그려야지 ㅋㅋㅋ 헉...부끄러라^^::"
바둑의 최다연승기록

먼저 현대 바둑 연승 기록을 연대순으로 보자. 1968년 김인 국수가 40연승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22년동안 깨어지지 않다가 1990년 당시 이창호의 41연승으로 깨진다. 그 와중에 1977년 조훈현의 31연승과 1984년의 임선근 25연승이 있었다. 1990년에 이창호의 신기록 41연승이 후로는 다연승의 기록은 주춤. 1993년 조훈현의 대 패왕전에서 19연승, 1997년에 당시 세계기전인 진로배에서 서봉수가 9연승. 1997년에는 이창호가 대 중일 기사를 상대로 무패의 의미있는 22연승을 했다. 2005년에 이창호가 30연승한 이 후로는 약간 주춤, 이세돌이 연승 절대 강자로 들어선다. 10연승 정도는 부지기수이고 2000년에 32연승, 2007년에 24연승, 2009년에 19연승, 2010년 1월 휴직 복귀후에 공식대국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24연승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아직 자신의 기록인 32연승에는 못 미치고 있다.
자료:일본기원 (쇼와 원년은 1926년, 평성 19년;H19 = 2007)

사카다9단: "연승 기간으로는 제가 1위일걸요? 거의 1년동안 무패였습니다^^::"
현재 일본의 최다연승은 사카다 9단의 29연승이다. 1964년 10월11일에서 다음해 7월 28일까지 약 8개월동안 29국의 대국을 하여 전승, 당시 일본 바둑이 세계 최강의 최상위권 기사층이 매우 두터운 상황에서 이룩하여 의미있는 기록이다. 중국의 연승 기록은 불확실하다. 문화혁명이라는 공백기가 있어서 중국 바둑계도 잘 모르는 듯, 1990년경 이 후로의 기록은 확실하지만, 그 이전은 프로와 아마의 구분이 확실치 않은 상태라서 한국과 일본의 기록과 비교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중국의 연승 기록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섭위평 9단을 뺄 수가 없다.
역사적인 11연승

지금도 한중일 기계에 회자되는 섭위평 9단의 일본 바둑 박살기는 매우 흥미롭다. 중일 슈퍼 대한전은 중일의 양국 기사가 각각 8명씩 출전하여 이기는 선수는 계속 상대팀 선수를 맞이하여 대국하는 지금의 농심배 운영방식과 같은 형식으로 치뤄졌다.1985년에 제1회 대회가 열린다. 세계 바둑팬들은 당연히 일본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고바야시(小林覺) 9단이 6연승을 하면서 중국 선수단을 벼랑으로 밀어넣는다. 이제 중국은 섭위평 9단만 남아있다. 일본은 고바야시 9단을 비록하여 당대 최강 일본기사인 가코우 9단과 후지사와 9단이 대기중이었다.

그런데 섭위평 9단은 당황하지 않고, 3명의 일본 최강 기사를 이겨 제1회 중일 슈퍼대항전 우승을 중국에 안긴다. 일본 바둑계는 발칵뒤집혀졌다. 1986년에 제2회 중일슈퍼대항전이 거행되었다. 이번에는 일본도 작심하고 출전. 고바야시(小林覺) 9단이 5연승을 하면서 기세를 올린다. 섭위평에게 대국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이미 중국 기사들은 추풍낙엽처럼 다 떨어지고 일본 기사는 6명이나 남아있었다.

섭위평: 저도 왕년에 연승 많이 했어요...근데 오늘..아웅 졸려라...ㅜ.ㅠ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는 세기의 대결에 열광한다. 그러나 섭위평의 6연승에 일본 열도는 탄식으로 바뀌고 만다. 그 다음해에 열린 3회대회 중일이 팽팽하게는 맞었으나 철의 수문장 섭위평에게 맞선 두명의 일본기사들은 항서를 쓰고 만다. 1회부터 3회까지 주장으로 11연승. 비록 연승의 횟수로는 그리 큰 숫자는 아니지만, 세계 바둑사에 큰 획을 긋는 대 사건임에는 부인 할 수가 없다. 이 때 부터 일본은 지는 해가 되었고, 중국은 뜨는 해로 세계 바둑계에 나선다. 그러나 한국 바둑이 중일간의 대결을 숨죽이고 지켜보면서 자기네들을 타도의 목표로 삼은지는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기록의 종결자 조훈현

조훈현 9단: 승리를 위한 노력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 바둑도 필요없습니다.
한국 현대 바둑史의 기록의 대가는 역시 조훈현 9단. 1977년 다연승으로 31연승으로 다연승 랭킹 4위를 기록중이지만, 연승의 질로만 따진다면 1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훈현은 타이틀 연승기록을 갖고 있다. 패왕전을 1977년부터 92년까지 16년간을 재패했고, 국수전 10년 왕위전 9년, 최고위 14년, 국기전 12년, 명인전 12년, 대왕전 5년등 타이틀 연승기록으로는 1위다. 이 중 패왕전 16년의 타이틀 연승 기록은 일본의 타이틀 최다연승은 1952년부터 60년까지 9년간 본인방을 지킨 다카가와 9단과 비교해도 7년이상 상회하는데 아마도 세계 바둑사의 최고 타이틀 연승 기록이 아닐까 추정된다.

조훈현: 후지사와 선생님, 전 술 못해유 ㅋ 후지사와: 술 못마셔도 자네가 술 벗으로는 최고야 ㅋ
그 뿐 아니다. 조훈현 9단은 전관왕 획득은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에까지도 기사로 개재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었다. 조훈현 9단을 컴퓨터를 능가하는 정신력을 가진 기사로 평가했으며, 미국 초청 방문 당시에 미국 아마추어 고수 16명과 동시에 다면기를 두어 15승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었다고. (조훈현 9단의 기록은 하도 많고 다양해서 이 정도로 줄이고 차 후에 독립 기사로 선보일 예정이다.)
연승없이 쳄피언없다.
그럼 다른 스포츠 종목은 어느 정도나 될까? 다양한 종목의 과거 연승 기록을 나름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자.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프로야구 최다연승 기록은 삼성 라이온즈가 1986년 5월 27일~6월 14일 사이에 기록한 16연승이다. 단체전 연승으로는 일본 체대의 남자 수구가 377연승으로 모든 종목을 통털어서 최다 신기록이다.한국 최다연승기록은 여자배구 대농이 184연승이다. 세부종목을 좀 더 보면, 미식축구: 23연승(2009년 미국 인디아나 폴리스 콜츠) 프로야구: 26연승1무(1916년 미국 뉴욕 자이언츠) 여자농구: 78연승(2010년 미국 코네티컷대 여자농구부)

377연승을 기록한 일본 체육대학 수구팀
프로농구: 33연승(1972년 미국 LA 레이커즈) 여자농구: 138연승(1967년 일본 니치보 헤이야) 여자농구 선수: 170연승(1967년 일본 니치보 헤이야 주장역임) 여자배구: 258연승(1966년 일본 니치보 가이즈카) 여자배구: 184연승(한국 대농 미도파) 남자수구: 377연승(2005년 일본체대 수구부) 남자수구: 21년 무패(간토학생수구리그/일본체대 수구부)아마야구: 151연승(1997년 쿠바)

무적대농은 미도파로 팀명을 바꾼 이후로도 연승을 계속 총 184연승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개인전 신기록을 보자.남자레스링라이트: 189연승(1987년 일본 와타나베 오사무)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와타나베 오사무는 비공식적으로 300승이 넘는다고 하며 현역활동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에게 단 1점도 허용하지않았다고 전한다.
프로권투: 88연승(1989년 멕시코 차베스) 프로권투: 90연승(아마40+프로50승/2001년 멕시코 로페즈) 여자레스링: 119연승(2007년 일본 요시다 사보리) 여자테니스: 192연승(1975년 일본 사와마츠 가즈코) 남자유도: 203연승(일본 야마시타 야스히로) 남자유도: 48연승(43승이 한판승/한국 이원희) 여자유도: 84연승(일본 다무라 료코) 남자레스링무제한: 300연승(2000년 러시아 알렉산더 카렐린) 남자레스링무제한: 114연승(2000년 국제대회만/ 러시아 알렉산더 카렐린)등이 있다. 그 중에 스포츠인으로서 모든 면에서 위인의 자리에 올라선 세 선수. 러시아 알렉산더 카렐린과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야마시다 야스히로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위대한 선수의 위대한 기록
[참고자료]무패의 사나이 알렉산더 카렐린에 대한 전설

카렐린에 대한 일화는 무척 많다. 경기에 나온 선수가 카렐린을 보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던지, 이사갈 때 대형 냉장고를 어깨에 걸치고 5층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 지나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넘어진 자동차를 번쩍 들었다는 등 셀 수 없이 많다. 134킬로 몸무게에 체지방이 10% 이하를 항상 유지해(보통 사람 평균 제지방율 20%~30%) 의학적인 기적이라고 한다. 러시아 아마 복싱 전통무술 삼보 챔피언도 역임했다. 19세 이 후로 300승이상을 하였고, 은퇴한 후에는 러시아 국경 수비대 장군, 러시아 대통령 경호실장, 러시아 연방 국회의원 역임.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식사량도 보통 사람 수준이었다고. 어린 딸과 공원 산책과 독서가 그의 취미였다.

멕시코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는 4살 때부터 구두딱이 신문배달 껌팔이를 했다. 16세에 집에서 등록금을 댈 수가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권투를 시작했다. 이렇듯 불우한 환경속에서 천부적인 재능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한 그는 수퍼 페더급-라이트급-슈퍼라이트급 등 3개체급에서 5번이나 타이틀을 따내면서 13년동안 무패기록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으며 단 한 번도 다운당한 적이 없다. 13년 8개월동안 89연승 1무 특히 세계 타이틀전 26연전 승리는 복싱계의 전설.알리나 포먼, 마이크 타이슨이나 로베르토 두란보다 그의 업적이 더 돋보이는 이유는 성적때문만은 아니다. 타고난 천부적인 재질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부와 명예를 얻은 후에 어렸을 때 빈곤으로 고생했던 시절을 생각해서 수입의 상당부분을 자선사업으로 돌려서 이재민, 병원,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며, 평소에 낭비하는 버릇이 없고 유흥과 오락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권투하는 신부님이라는 별명까지 있다.
絶對强者는 連勝한다.

한국의 스포츠 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위대한 연승 선수는 야마시타 야스히로일 듯. 그가 현역 시절에 세운 203연승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 때문이다. 유도의 헤비급인 95킬로 이상에서 활약한 야마시타는 굳히기와 허벅다리 후리기 기술이 대단히 뛰어났으나, 전체적으로 경기 운영 방식에 있어서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야마시타의 연승 행진은 1977년 10월 일본과 옛 소련의 친선 유도경기에서 소련의 그로니를 꺾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79년 9월 전(全) 일본 체급별 대회에서 쓰쿠바 대학의 마쓰이를 판정승으로 누르고, 대회 3연패를 하며 100연승을 달성했다. 그 이후로도 일본 국내와 세계 대회에서 압도적인 연승을 기록했다. 물론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야마시타는 LA올림픽 무제한급 2회전에서 서독의 슈나벨 선수와 경기하다가 장딴지 근육이 파열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슈나벨에게 자신이 부상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왼팔 업어치기로 한판승을 거두고 3회전에 올랐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다음에 싸울 선수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다리 통증을 참아가며 똑바로 걸어나왔다. 야마시타는 프랑스의 콜롬보와 치른 준결승전에서 경기 시작 30초 만에 허벅다리걸기 한판으로 콜롬보를 물리쳤고, 결승전에서는 이집트의 라슈완을 곁누르기 한판승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야마시타는 88년 서울올림픽과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일본 유도대표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84년엔 일본 정부로부터 체육인에게는 최고 영예인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스포츠인으로서의 모범이 되는 생활 자세는 스승의 영향이 컸다.야마시타는 203연승 행진의 위업을 달성한 이후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시라이시 선생이 내 유도의 기초를 잡아주었고, 사토 감독이 완성시켜 주었다. 두 분이 나의 유도 인생의 절대자다”고 말했다.
시라이시 감독은 선수들에게 '유도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사회인으로서 챔피언이 되는 것'을 강조하여 야마시타 야스히로의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야마시타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1년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 기간에 유럽 각국의 유도대회를 지켜보고 각국의 국가대표 유도팀의 합숙훈련을 직접 참관하면서, 세계 유도가 어떻게 발전해야하는가에 대한 큰 비젼을 품고 귀국하여 일본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NHK 유도 해설위원으로도 활동 중. 평소 생활은 매우 소박하며 다양한 지역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야먀시타 야스히로의 삶에 대하여서는 주간동아 2005년도 6월호 448호 74쪽의 내용을 발췌 요약했음을 알립니다.)
기록은 깨야 한다.
조훈현 9단: 저 처럼 오픈카 타본 프로기사들 있수? ㅋ 윤기현 9단: 나^^::
이처럼 확률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엄청난 다연승이 드물지않다. 숫자만으로만 본다면 바둑의 최다연승기록이 초라할 정도. 이는 아마도 다른 여타 스포츠는 보통 경기 과정에서 획득된 점수의 총합으로 승패를 내지만. 바둑은 도전기에서 기전은 우승할 지라도 경기의 승패가 3승2패라면 연승 기록은 당연히 깨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중단된 숫자는 아닐터,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기록들을 훌쩍 뛰어넘는 후배기사가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엄청난 연승을 하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종목은 달랐으나 전문 분야를 대하는 자세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겸손했고,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 처음부터 얼마만큼의 연승을 하겠다고 출발하지는 않았을 듯. 매일 매일 온 힘을 기울여 연습하고 연구하고 준비하여 매 승부마다 최선을 다하며 한 계단씩 오르다보니 당대 최고의 절대 강자 자리로 올라섰다. 위인의 경지에 오른 위대한 스포츠인들의 업적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타이젬 i진선)
[i진선 한 마디]
월간 바둑 5월호의 기록의 발견 코너의 저의 글을 명예기자 코너의 글에 맞도록 제가 재편집을 했습니다. 사실 월간 바둑에는 편집상의 한계와 원칙이 있기 때문에, 평소의 명예기자 뉴스 코너 처럼 다양하고 재미있는 자료를 첨부하기가 매우 곤란합니다. (특히 저의 코믹한 유머스러운 멘트는 불가능하죠ㅠ.ㅜ:: 딱딱한 문제로 써야하는 고통....)그래서 원문에서 제외되었던 보조 자료를 복원하고 자세한 설명을 더 첨부하여 여기에 다시 재구성하여 올립니다. 기사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데...과거 명예기자 코너에서도 연승과 기타 스포츠의 연승에 대하여 수차례 다루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분들이 자료를 제공해주셨었죠. 타 스포츠의 연승 기록은 사실 반에 반도 다 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차후에 연승 관련 화제꺼리가 다시 나오게되면 그 때 소개하려고 기사는 준비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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