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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사랑도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조심스레 바둑알 놓듯 ‘사랑집’ 만들고
있어
요”국내
유일의 부녀 프로바둑 기사 권갑용·권효진씨. 아버지 권갑용씨의 대를 이어
열네 살의 어린 나이로 프로에 입문했던 권효진씨는 한동안
언론의 유명세를 탔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수줍은 내용을 들고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 프로바둑
기사 위에양씨와 풋풋한 동갑내기 사랑을 가꾸고 있으며, 2005년
5월 결혼할 계획이
라는 것. 아직은 앳된 그녀의
뽀송뽀송한 러브 스토리를 공개한다. 중국에서 특종
기사로 다뤄진 스캔들2004년 2월, 중국의
지방
일간지에 권효진씨(23)의 기사가 특종으로
다뤄
졌다. 프로바둑 기사인 그녀가 중국 프로 기사 위
에량씨(23)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기사였다.
그녀의 결혼 소식은 가족들조차 모르던
일이었
다. 당시 사건을 떠올리며 그녀는 피식 웃기부터
한다.
"위에량과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거든요. 연애중이긴 했지만 서로의 입을
통
해서 결혼 이야기가 오간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특종’ 타이틀을 달고 추측성 기사가
나간
거예요. 중국에 머무는 동안 중국 언론사에서
걸
려오는 전화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답니다. 한국
에 계신 부모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말하는 내내 볼에 살짝 파인 보조개를 연신 내
보이며 수줍어한다.
스물셋은 스캔들
기사를 감당하기엔 어린 나이임에 틀림없
다. 언론에
노출된 이후 한 동안 혼란을
겪었다. 중국에 혼자 머물 때 터진 사건이라 더 욱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리곤 일주일
을 고민하면서 위에량에 대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위에량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상황은 결혼하지
않으 면
헤어져
야겠더라구요. 서둘러 결혼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헤어지긴 더
싫었어요.
그리고 위
에량이 정식으로 청혼을 해왔습니다. 결혼 기사이니만큼 오보성 기사도
많
았지만,
흔들림 없이 저를 묵묵히 지켜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기더군요.
믿음과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기자는 문득 언어 소통이 궁금 해졌다. 해답은 ‘바둑’. 바둑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교류
가 활발하다. 특히 그녀의 아버 지가 운영하는 도장은 중국에서 유명한
바둑 도장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 다. 수강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한·
중 친선대회를 가졌던 것. 이를 위해 중국어반도 신설할 정도였다.
그녀가 자연스럽
게 중국어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문이었다.
여섯 살 때부터 그녀에겐 바둑이 전부였다. 바둑 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장에서 지냈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침착하고
과감
하며 감정의 기복이 적은 그녀는
바둑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에
입문한 것도 학업을 포기한 과감한
결정의 대가였다.
바둑처럼, 중국어처럼 그녀의 사랑도 운명처럼 다가왔다. 2003년
1월, 중국에서 시합
이 열렸다. 수강생 25명이 6박
7일 일정으로 중국으로 향했다. 시합 전날엔 어김없이
연습 대국이 열린다. 한국 프로 기사들이 일렬로 자리를 정해 앉으면
중국 프로 기사
들이 착석한다. 정해 진 상대는 없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면 그것으로
시합은 시
작되는 것이다.
하지 만 그녀의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일한 여자인 그녀와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선뜻 나서준 이가 바로 위에량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
고 곧바로 시합에 들어갔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 두기 시작한 연습
대국의 결
과는 그녀의 패배. 물론 상대가 남자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지만
순간 자존심이
상
했다.
"좋은 경기였어요. 바둑 경기에서 ‘좋다’는
표현은 시합 내용을 말하는 겁니다. 내용은
좋았지만 지고 말았죠. 안타까운 마음에 한 판 더 두자고
제안했습니다. 연습 대국은
보통 한 게임으로 끝나거든요. 저와 위에량 둘만 남아 두번째 시합을
했습니다. 결국
제가
이겼죠.(^-^)”
그녀의 바둑에 대한 집착, 승부욕은 위에량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 했다. 그날
이후 그
녀의 바둑 연습 파트너는 언제나 위에량이었다. 중국어에 능통한
그녀와의 데이트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그에게
연락 을
취하고 싶었지
만망설여졌다. 위에량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섣불리
다가
섰다가 상처받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더욱 보고
싶
었단다.
자주 중국을 오가며 시합을 하던 그녀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2003년
2월,
중국에서 시합이 열렸던 것. 그녀가 시합에서 지면
혼자서 몰래 눈물 흘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위에량은 그녀 곁을 지키며
위로해주었다. 시합에서 이기는 날
이면, 같이 행복해하며 즐거워했다. 어느새 그녀는 위에량에게 많이
의지하게 됐다.
"‘량’이라고 불러요. 바둑알로 하는 재미난
게임을 하면서 연애했어요.
프로바둑
기사 답죠.(^-^) 내년 5월경에
결혼하기로 했어요. 한국과 중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
입니다. 얼마 전엔
중국에 ‘위에량’이라는 이름으로 바둑 연구실을 차렸어
요. 예비 신랑 이름을 딴 바둑
도장입니다. 중국은 바둑 열풍이 대단하거든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많은 수강생이
왔어요. 프로바둑 기사도 배출 했구
요.”
그녀는 아버지 권갑용씨처럼 훌륭한 바둑 기사들을 배출하는 바둑 도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는 의지엔 변함이 없지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명
성을 떨칠 만한 바둑 도장을 갖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스물셋 동갑내기의 사랑
과 인생, 그들의 화려한 서막이 올랐다.
글 / 강수정 기자 사진 /
최병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