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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빈, 죽을 힘을 다하여 두었습니다.

[중국] 위빈, 죽을 힘을 다하여 두었습니다.

2005-01-29 오후 7:26:46 입력

요즘 중국 바둑계의 화두는 "위빈" 입니다.

기사는 무척 많은데...솔직히 올리기가 싫더라구요...ㅡ.ㅡ::

위빈이 무척 성실하고 모범적인 기사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천하의 이창호가...어처구니 없이..역전패를 당하다니...ㅠ.ㅠ::

 .....

 
위빈: 죽을 힘을 다하여 두었습니다.



2005년 1월 24일의 LG배의 준결승에, 중국 기사 위빈은 흑을 잡고 한국 “천하제일인”인 이창호 구단과 싸워 이긴다. 구리(고력)와 창하오가연속으로 세계 대회에서 한국 기사에게 우승 기회를 놓친 후에, 바른 생활 맨인 위빈이 단번에 “한국을 물리쳐” 결승에 진출한다. 베이징으로 돌아간 후에야, 위빈이 본지 기자의 인터뷰를 받아들인다.

  


위빈 

본적:저장

생일:1967년4월16일

급수:9단

7세 바둑 공부 시작, 11세에 체육 학교, 12 세에 바둑 합숙훈련팀. 1983년 국가 바둑

선수팀에 가입하고, 1991년의 되어 9단. 제4번째 LG배의 세계 기왕전 우승에 2001년, 위빈이 첫 세계 1위를 얻고---, 이후 그는 또 2001과 2002년에서 잇달아 따 중국 기왕의 월계관을 얻는다. 1997년과 2004년 2차 아시아TV의 속기전 우승을 한다.

 

“이창호를 이기는 것은 저의 바둑 생애에 매우 의의가 있어요. 마침내 이창호

에게 한판의 승리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준결승  중에, 저는 단지 '궁지에 몰린 쥐새끼 처럼' 필사적으로 공격하였고, 마침내 나는 한 입에 깨물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중국 기원 귀빈 실에서, 위빈은 기울게 소파에 비스듬히 편하게 앉아있엇다. LG배의

이창호에 대한 준결승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여전히 겸손한 언어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번쩍 밝아진 눈은 그의 흥분된 감동을 잘 나타낸다.

 

"이 전에, 저와 이창호가 12번 싸웠으나, 오로지 1판 이겼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긴 한판은 속기바둑에 불과합니다. “, 저도 중국내에서 나보다 약한 기사에게 질 수 있어요. 이것은 이창호가 저에게 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이창호가 여전히 최강이라고 느낍니다. 시합 할 때에 비록 저의 판세는 일부에 유리했을지라도,  오직 상대는 이창호라는 생각을 갖고  , 나의 마음이 줄곧 걸었습니다. 바둑을 이기기는 했지만, 충분히 만족 스럽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고, 몸부림치다가 부딪쳐 (간신히) 이긴 것입니다."


.........



위빈은 국내에서 최강의 기사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들어간 세계 대회 결승에서 100%의 승률을 유지한다. 중국 기원 원장 왕루난은 이것을 “위빈의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위빈은 손으로 거듭 흔들며 부정한다.:

 

“순전히 운이에요, 내게 국내에서 시합에서 싸움 바둑 고수들에게 매우 많이 패배했어요.그러나 특히 2000년의 LG배의 결승이 유창혁을 이길 수가있었는데, 운이 너무 좋았어요, 이후 또 아시아컵의 텔레비전 속기전과 아시아컵 단체전을 우승했었다, 나는 (실력에 비해) 운이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이의 신장에 따라, 위빈은 이미 국내와 젊은이 시합이 더욱 힘들어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말하기를

 

“계산력은 옛날보다 못합니다. 정말 조금이나마 있는 능력이 의지를 따르지 못한

느낌이에요. 그러나 여하간 마음을 편하게 먹고 LG배 결승에서 장쉬(장허)의

대결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의 바둑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고, 그의 바둑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그가 말하기를 젊었을때 바둑은 "挖萝卜" 라고 하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판세 판단의 엄중함이라고 한다.

 

최근에 한국 바둑이 대세를 이루니, 전투력과 계산력은 승부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만약 10년 후에 지금의 자기 바둑을 본다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위빈은 노장 기사들중에 유일하게 활력을 갖고있어서 신예기사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위빈의 인품은 바둑계에서 거의 칭찬일색이다. 이소향은 위빈 19세에 국가대표팀에 가입할 때부터 그와 늘 함께 살고있다. 위빈에게 그녀는 매우 영향력이 있다.

이소향은 위빈이 줄곧 이런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긴다. 위빈은 아주 작지만 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이라고 한다. 그녀가 말한다 :

 

“그와 신예들간에 말이 서로 통하고, 거추장 스러운 격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타 젊은 기사들은 모두 그와 함께 바둑을 탐구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것은 위빈이 언제나 시대의 최전선에서 머물수 있도록 하는 것 입니다. 이 때문에, 위빈은  “골목 대장”이

라는 별명도 얻게되었습니다 ."

 

이소향은 이렇게 그에 대하여 한 마디 덧붙였다.


 

"위빈이란 사람은, 겸손하고 진실하며, 그는 허위와 가식이나 진부함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얼굴 내보이거나 다중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꺼립

니다. 위빈은 어떤 권위를 내세우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의

롭고, 타당치 않은 일을 본다면 거리낌 없이 나서서 주장을 합니다.

이 사람은 매우 올바른 사람 입니다."


 


【图文】俞斌:像“疯狂老鼠”一样进攻终于咬到一口

http://weiqi.tom.com 2005-01-29
京华时报

  2005年1月24日的LG杯半决赛,中国棋手俞斌执黑中盘战胜了韩国的“世界第一人”李昌镐九段。在古力和常昊两项世界大赛相继失手于韩国棋手后,老实人俞斌一下子被推到了“抗韩”前沿。回京之后,俞斌接受了本报记者的专访。

  俞斌黑白档案

  籍贯:浙江

  生日:1967年4月16日

  段位:九段

  7岁学棋,11岁进体校,12岁进集训队,1983年进入国家围棋队,1991年升为九段。2001年,俞斌获得了首个世界冠军———第4届LG杯世界棋王战冠军,此后他又在2001和2002年连续摘得中国棋王桂冠。1997年和2004年两次获得亚洲电视快棋赛冠军。“赢李昌镐对我的围棋生涯很有意义,毕竟自己这辈子能赢李昌镐一盘。在这十三回合的交战中,我就像只‘疯狂老鼠’一样拼命进攻,终于被我咬到了一口。”

  在中国棋院贵宾室里,俞斌斜靠在沙发上。谈起LG杯对李昌镐的半决赛,低调的他依旧保持着谦虚的言语,但闪闪发亮的眼睛显示了他的兴奋。此前,俞斌和李昌镐交手12次,只赢了一盘,而且还是一盘快棋。“局后我觉得李昌镐依然非常厉害,我在国内也会输给比我弱的棋手,意思差不多。虽然比赛时我的形势要好一些,但是只要李昌镐不投子,我的心就一直悬着。棋是赢了,但不够堂堂正正。人家是要吃我,我怎么着也要挣扎几下吧,不能坐以待毙吧,结果就这么误打误撞地赢了。”

  俞斌曾在世界大赛上5次为赵治勋所阻,直到1998年富士通杯,俞斌终于拿下了这位毁了其大好青春的“苦手”;又过了3年,他才拿到了LG杯的冠军;而这次扳倒“石佛”也称得上是苦尽甘来。接下来的决赛,还有他三战三负的大敌张栩在等着他。

  “我觉得胜利要么是你实力强,要么就是你运气好,我属于后者。”

  俞斌在国内并不是最突出的棋手,但是他在所进入的世界大赛决赛上保持着100%的胜率。中国棋院院长王汝南称这为“俞斌现象”,认为是天道酬勤。但俞斌摆了摆手说:“纯粹是运气,我在国内比赛争冠军输得很多。尤其是2000年的LG杯决赛能赢刘昌赫,绝对是运气太好了,而后又拿了亚洲杯电视快棋赛和亚洲杯团体赛,我觉得运气真是太照顾我了。”

  随着年龄的增长,俞斌已经感觉到和国内的年轻人比赛越来越吃力,他指了指头说:“计算力不如从前了,真有些力不从心的感觉。不过还不能松劲儿,怎么着我也要挺完LG杯和张栩的决赛。”

  围棋的发展日新月异,俞斌对围棋的认识也在不断改变。他说,年轻的时候觉得围棋就是“挖萝卜”———最重要的是判断大小。最近这些年韩国围棋崛起,战斗力和计算力成了决定胜负的重要因素。要是过10年再看自己现在的棋,肯定看不上。

  “俞斌是老一代棋手中唯一一位能和现在这些小孩儿打成一片的。”

  俞斌的人品在围棋界几乎是人人称道,国家围棋队的原生活老师李素香从俞斌19岁进入国家队起就和他朝夕相处,对于俞斌她很有发言权。

  李素香认为俞斌之所以一直能保持这种水平,是因为俞斌有一颗年轻的心。她说:“他和小孩们很谈得来,也没有架子,所以其他年轻棋手都愿意和他一起钻研棋艺,这使得俞斌始终跟在时代的最前沿。”因此,俞斌也得到了一个“孩子王”的称号。

  李素香还介绍说:“俞斌这个人很低调,很真诚,他最讨厌虚伪和俗套,所以一般出席活动俞斌是能不去就不去,即使去了也不愿意出面讲话。还有俞斌这个人虽然心中毫无权力意识,但很有正义感,看到不公平的事他总是敢于站出来说话,用北京话说就是他这人很‘仗义’。”

[i진선 한 마디]

억지로 올리려니..번역도 흥이 안나네요..

위빈은 참 이름 처럼(위를 비운다...ㅡ.ㅡ::) 

마음을 비운 사람처럼(심빈?) 보입니다.

우승에 대한 불 같은 욕심도 없어보이는데..마효춘이 세계 대회 2회 우승했고,

위빈이 1회 우승했지요?

시퍼런 젊은 고수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기사로서는 환갑나이인 40대에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갔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중국 바둑계에서는 일주일 동안 입을 모아 "위빈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수 많은 언론에서 위빈 칭송에 한 목소리를 내내요.

위빈은 칭찬 받을 만한 모범적인 기사입니다. 생활도 마음가짐도 기풍도 이창호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어렸을 때 뛰어난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천재" 소리만

나와도 손사채를 치며 거부한다고 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겸손 떠는 것 같기도 하고....,ㅡ.ㅡ::

 

중국 바둑 팬들의 감격어린 글들 올리려다가..

그 사람들 기분 좋아하는 거 화가 나기도 하고 ..

 

관련 글 업글 하겠습니다...ㅡ.ㅡ::

 

꾸벅

 

TYGEM / i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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