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전 후 뒷풀이 자리에서 다시 뭉친 서울대와 동경대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시합을 마치고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이산가족이 수 십년 만에 재회라도 하듯 술과 더불어 밤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느덧 밤 11시.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가라오케에서의 3차를 마지막으로 헤어질 시간이 왔다. 우리는 아쉽게 포옹하고 손을 흔들면서 내년 서울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다음 날, 동경대 교류전에 참가했던 서울대 선수 5명이 서울로 돌아갔고, 숙소엔 신병식 선배와 나만 남았다. 다음 한일대학 OB.OG(old girl의 약칭)까지는 4일간의 자유시간이 둘에게 남아 있었다. 도쿄에서의 첫 일정은 홍맑은샘 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홍도장을 방문한 필자가 홍맑은샘과 함께 입단지망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홍도장을 방문하다
14일 월요일, 간다의 서점가를 둘러 본 다음 걸어서 약속시간인 4시에 이찌가야역에 도착하니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전화를 걸었더니 홍맑은샘 사범이 5분도 채 안가 우산을 들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도쿄의 이찌가야역은 일본기원이 지척에 있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곳인데 홍사범이 운영하는 도장(일본 사람들은 ‘홍도죠(洪道場)’이라고 부른다) 역시 이 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홍도장은 40평 정도의 넓은 다다미 방에 별도로 숙식을 할 수 있는 방이 여러 개있었다. 원생은 50명 정도인데 1년에 한 명 뽑는 여자프로기사를 2년 연속 배출했기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수업은 매일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5시간. 벽에는 홍도장이 자랑하는 체계적인 성적관리표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렀다는 이강욱 3단. 일본 아마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입단을 준비 중인 하성봉 아마7단과 유신환 아마6단의 얼굴도 보였다.
모처럼의 만남이었던 만큼 저녁을 같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즈음부터 원생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다음날 홍사범이 오사카에 위치한 관서기원에서 시합이 있어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굵은 빗방울이 그 새 그쳐 있었다. 도쿄에서의 남은 일정 역시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며 바쁘게 지나갔다.
▲1차전 대국 전 한국선수단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한일대학 OB.OG 친선교류전
이제 본격적인 한일대학 OB·OG 친선교류전 얘기를 시작해야겠다. 이번 교류전을 위해 도쿄에 온 한국선수단은 지난 주부터 미리 와있던 나와 신병식 선배를 포함해 모두 18명이나 됐다(시합엔 참가하지 않았지만 이상훈 9단, 전욱 선배와 동행한 진주경상대 김기선 교수, 외국인 벤자민 군을 포함하면 21명이다). 현 한국대학바둑연맹(OB) 강병두 회장이 바쁜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내 기억으론 교류전이 시작된 이래 이렇게 많은 선수가 일본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교류전에는 한국 여성 대학바둑인들이 대거 참가해 눈길을 모았다. 한국선수로 출전한 조경진(맨 왼쪽), 김향희(가운데),홍승희(맨 오른쪽).
여자선수들이 역대 최다인원인 7명이 참가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한국여성연맹의 박애영 부회장을 비롯해 장영숙, 김향희 등 중년 멤버들과 홍승희 바둑TV 피디, 이수정 명지대 조교, 타이젬 김지은 기자, 아마 강자 조경진이 가세하며 완벽한 신구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선수단이 호텔에 도착한 금요일, 일본에서는 요시다 아키라(동경대 교류전을 주관했던 그 분이다)일본대학연맹 총회장과 관동지부의 나카조노 회장, 관서지부의 무카이 회장 등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도쿄 시내를 구경한 다음 저녁 7시 반부터 술자리가 시작되면서 도쿄에서의 첫날 밤이 흥겹게 무르익어 갔다.
▲"이번에는 일본이 이겨야죠!" 요시다 회장(맨 오른쪽)이 임전소감을 말하고 있다.이튿날인 토요일, 전날의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서둘러 일본기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가니 늘 보던 얼굴이 많았지만 처음 보는 젊은 멤버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번 시합의 승리를 위해 일본측에서 젊은 강자들을 단단히 불러 모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진 개회사에서 요시다 회장 역시 이번 만큼은 일본이 꼭 이겼으면 한다는 취지의 임전소감을 밝혔다. 이제까지는 4승 2무 1패로 한국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오전 10시부터 본 대국에 들어갔다. 제한시간 각자 한 시간에 초읽기 30초 3회의 방식. 일본 팀에선 84세에 세계아마선수권대회 대표로 선발된 히라타를 비롯, 신구 4천왕 멤버인 나카조노, 미우라 등 전설적인 아마 강자들이 모두 출전했고, 여기에 2년 전 아마본인방전에서 우승한 타키자와를 나에게, 이세 데류유키나 무라카미 후카시 같은 젊은 강자들을 우리의 곽웅구, 안병운 선수와 대진케 하는 등 대국 오더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교류전 모습. 그 결과 1차전 대국은 11승 7패 일본팀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팀에선 임동욱, 김달수 고문이 선전했고, 김원태 전 회장이 한국 선수에 유난히 강한 나카조노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으나 여자 선수 7명 중 김지은 기자를 제외한 6명이 모두 패하는 등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일본 측에서 준비한 초시계에 한국팀이 당황한 것도 있었다. 한국과는 다른 형테여서 생소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일본어든 영어로든 하나, 둘, 셋 하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던 것. 후에 알았지만 이 시계는 일본기원 원생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20초가 되면 삐~하는 경보음이 한번 들릴 뿐 다른 일체의 소리가 나지 않는 반벙어리 초시계였다.
이 때문에 나를 포함한 많은 선수들이 곤욕을 치렀고, 여자 강자인 조경진 선수는 젖혀있는 끝내기만 남긴 상태에서 넉넉한 바둑을 시간패를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오후에 이어진 2차전에서도 초시계 문제는 여전히 우리 팀의 속을 끓였다. 요시다 회장이 점심 때 내게 다가와 초시계가 잘못돼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으나 이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후 2시부터 속개된 2차전서는 전반적으로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임동욱, 김달수, 김지은이 오전에 이어 2승을, 안병운 선수는 일본 선수 중 가네자와와 더불어 가장 세다는 다가 분고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오후 2차전 대국은 9대9로 무승부로 마감됐는데 종합전적 16승 20패(한국기준)로 우승은 일본대학연맹에 돌아갔다.
▲대국 후 만찬
일본 팀은 한껏 고무된 기분이었다. 근처 호텔에서 벌어진 환영 만찬에서 나카조노 관동지부 회장은 “이번에 한국에서 많은 여자 선수들이 와줘서 하나바라(우리말로‘꽃밭)에서 대국하는 기분이었다”고 기쁨을 표했고, 와세다대 출신의 젊은 멤버인 타키자와는 “요즘 프로도 그렇고 아마도 그렇고 한국에게 줄곧 지기만 했는데 모처럼 이겨서 기쁘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단상에 나와 이번 교류전에 참가해 기쁘다는 뜻과 계속해서 교류전을 이어가자는 의지를 전달했다. 동경대 교류전과 마찬가지로 승패보다는 역시 만남 자체가 의미 있고 중요한 자리였다.
이후의 과정은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다. 환영 만찬이 끝난 후 근처의 가라오케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위스키와 맥주로 짬뽕이 된 술을 마시며 밤 늦도록 밀린 회포를 풀었다. 먼저 내가 흥을 돋구기 위해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케토 나미다토 오또꼬토 온나(酒と淚と男と女)를 불렀고, 이어 나카조노 회장이 한국말로 ‘사랑의 미로’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뜨거워져 갔다.
이 날의 절정은 일본측의 요시다 회장이 한껏 흥에 취해 일본 프로야구팀인 한신타이거스 응원가를 부른 것. 처음 듣는 일본 야구팀의 응원가는 쉽고 매력적이어서 이 때 만큼은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후렴구인 ‘오레 오레’를 따라 불렀다. 이후에도 셀 수 없는 술잔과 이야기가 오갔고, 아쉬운 사람들은 다시 신바시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은 석별의 여운을 뒤로한 채 그렇게 저물어갔다.
▲대국 후 한국선수단과 일본선수단이 가진 기념촬영. ●○…에필로그
다음 날인 일요일, 우리가 묵었던 시오도메 역의 호텔에서 가까운 긴쟈에서 점심을 해결한 다음 신병식 선배와 나는 먼저 하네다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른 선수들의 비행기는 이보다 훨씬 늦은 저녁 7시 반이었으니 못다한 쇼핑도 하고 제법 도쿄를 즐겼으리라. 10일 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막 9시 뉴스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돌아와 서둘러 원고를 쓰다 보니 빠뜨린 얘기가 많다. 도쿄 코리아타운에서 목격했던 한류 붐, 도시 재개발로 인해 다시 태어난 우에노와 롯본기 힐스, 무엇보다도 이번 동경대전과 한일대학교류전을 함께 주관한 일본의 요시다 아키라 회장의 특이한 경력에 대해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못다한 얘기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겠다.
참고로 글 제목인 ‘돌 소리는 현해탄을 넘어’는 87년 당시 서울대-동경대 10주년을 기념해 조치훈 9단이 직접 제자(題字)한 것. 이번 교류전의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는 것 같아서 차용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