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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배

중국의 물음표, 한국의 느낌표

춘란배 결승전 관전기

2011-07-01 오전 7:50:38 입력 / 2011-07-01 오전 10:47:28 수정

비씨카드 결승 5번기가 끝났을 때 <명국의 조건, 보이지 않는 가치>라는 제목으로 하수가 지켜 본 관전기를 올려드린 적 있습니다.
☞바로가기-名局의 條件, 보이지 않는 가치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의 바둑을 어찌 감히 하수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만 한 수 한 수의 심오한 가치는 알지 못해도 전체적인 승부의 인상비평(印象批評)은 얼마든지 여러분들과 맘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거겠지요.^^

▲결승전 전야제에서 악수하는 이세돌과 씨에허.

이번 명승부의 무대는 충칭(重慶), 대륙의 심장부입니다.
상대는 이세돌의 천적으로 통하는 씨에허.
이세돌과 비슷한 불(火)의 기풍을 지닌 구리와 달리 씨에허는 물(水)의 기풍입니다. 냉정하기 짝이 없어 얼음(氷)으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우리들을 열광시켰던 대박작품 비씨카드 배 속편으로 아주 절묘하게 상대배역이 캐스팅됩니다.

춘란배는 풍운아 이세돌에게 던지는 중국의 물음표입니다.
오오! 그대가 천하의 구리를 꺾었다고? 좋아 그러면 이번에는 맞춤 형 자객을 보내주지. 대륙 넘버 2에 한국기사 킬러 씨에허야. 이 친구를 넘어선다면 진짜 천하의 지존으로 인정하겠어.

난적 씨에허를 극복해낸다면 이세돌은 진정한 영웅 서사적 스토리보드의 완성과 함께 중국에 보내는 한국의 느낌표가 되겠지요.
1국은 이세돌의 강인한 승부 호흡이 돋보였고, 2국은 씨에허의 냉정한 판단력이 돋보였습니다.
역시 이세돌은 큰 승부에 강했고, 역시 씨에허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3국 복기모습.

서로 물러설 곳이 없는 제3국.
양웅(兩雄)의 기세는 초반 포석에서부터 파바박 불꽃을 터뜨립니다.
전날 두었던 포석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누가 옳은지 끝장을 보자.
아 그때가 언제였더라?
1989년 초대 바둑황제 왕관을 두고 다투었던 조훈현과 녜웨이핑도 같은 포석을 고집하는 오기와 근성으로 기 싸움을 벌였었죠.
그런데 그 초반 전투에서 씨에허가 교묘한 기동작전으로 앞서갑니다.
결승 현장에 함께 머물던 구리, 구링이와 밤새 연구했을 거란 추리가 나옵니다.

▲결승에 임하고 있는 이세돌.

물론 이세돌도 숙소 침대에 누워 수없이 반복해서 그 포진의 참고 도를 그려봤을 겁니다.
하지만 천재의 특성 상 실전에서 수읽기의 힘으로 능률적인 수를 찾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이미지 워(War)를 접었지 않나 싶습니다.
초반 전투에서 상당히 내상을 입었음에도 우리들의 이세돌에 대한 믿음은 강건합니다.

공한증(恐韓症). 축구와 바둑에 있어서 이 증세는 통쾌하지요.
물론 그들의 통증이겠습니다만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가 설정하고 즐기며 중독되어 있는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자기최면이랄까?
뭐 그래도 희한하게 인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신통하게 대륙인들을 눌러대니 아주 근거 없는 헛소리는 아닙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 원정실패 이후 중국인들은 동북쪽을 불길한 방위로 인식합니다.
공한증의 뿌리를 거기까지 찾아가면서 우리는 이세돌의 바둑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세돌은 가냘픈 어깨 위에 우리 바둑 팬들의 염원을 가득 지고 흔들기의 전단(戰端)을 찾아 나섭니다.
흔들어 댈 때 맞불을 놓아주는 구리 스타일이라면 차라리 이기든 지든 서로 마구 휘둘러대는 강펀치에 맞아 한쪽이 장렬하게 쓰러지는 그림이 그려질 텐데 빈틈없이 냉정한 씨에허는 좀처럼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세돌은 자신의 방식대로 검무를 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접신(接神)하면서 화염을 방사합니다.
그에 맞서 씨에허는 소화기의 냉연(冷煙)을 뿜어댑니다.
불과 물의 충돌, 자욱한 연기가 사방을 에워쌉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연기가 걷히면 우리의 이세돌이 툭툭 어깨를 털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야성적이었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뭔가를 깨달은 철학자의 여유도 보이지요. 화려한 무공을 선보이면서도 우쭐하지 않고, 엄청난 개가를 올리고도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에 우리는 허허 웃으며 열광하게 됩니다.
정규 교육을 포기하면서 바둑 외길을 걸어온 천재가 명승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확실히 알립니다.


▲우승컵을 들은 이세돌의 모습.

바둑이 그를 행복하게 하고 그의 바둑이 우리를 즐겁게 해줍니다.
바둑의 강대국 대한민국의 바둑 팬이라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중국의 바둑이 묻습니다.
“그대들은 왜 강한가?”

이제 우리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글세, 아무래도 IQ에버리지가 높은가 봐. 우리가 이세돌만 있었던 게 아니잖아?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가 배턴 주고받을 때 당신들 막막했잖아?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도 그렇고 앞으로도 박정환, 김지석 또 그 뒤로 줄줄이 신동들 번호표 들고 있으니까 알아서들 생각해.”
한 해의 딱 가운데 토막인 6월의 마지막 날 들려온 춘란배의 희소식이 7월의 개막 팡파르로 여겨집니다.
바둑이 우리들 일과의 청량한 탄산음료로 작용하기를 빕니다.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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