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씨배
강수 퍼레이드
- 제7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3국
2013-03-04 오후 7:24:19 입력 / 2013-03-05 오전 9:14:04 수정
▲ 박정환(왼쪽) vs 판팅위.
7시간 40분에 걸친 혈전이었다.
4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벌어진 제7회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 제3국에서 중국의 판팅위 3단이 한국의 박정환 9단을 상대로 178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이하 기사 내 대국자 단위 생략) 이로써 잉씨배 결승 5번기의 현재 스코어는 판팅위가 2승 1패로 앞서고 있다.
숱한 강수와 묘착을 연발했는데도 박정환이 졌다.
묘수가 속출했다는 것은 그만큼 형세가 불리했다는 증거.
초반 포석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좌하 귀에 축 모양이 나왔고, 우상에 축머리를 활용당하면서 박정환은 수세에 몰렸다.
실리를 한껏 당긴 뒤 판팅위는 냉정하게 잠그기 시작했다.
박정환이 혼신의 힘을 다해 판을 흔들었으나 4귀생 통어복을 이룩한 판팅위는 기민하게 반상의 갈등요소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장고를 거듭하며 박정환은 하변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중앙 백 대마를 노리면서 우하 귀를 포획해 국내의 바둑 팬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검토실에서는 백의 승리가 부동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100수 이후의 수순은 박정환의 처절한 몸부림.
▲ 판팅위.
'작은 돌부처'로 통하는 판팅위의 부동심이 돋보인 한 판이었다.
때론 기세의 강수로 부딪히고 때론 유연하게 치고 빠지는 판팅위의 수법에 박정환의 사자후가 통하지 않았다.
농심 배에 연이어 벌어진 잉씨 배 일정이 무리였을까?
상하이 현지에서 박정환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의 최철한이 박정환을 위해 셰허의 진을 뺀 것처럼, 셰허와 장웨이제 또한 판팅위를 위해 박정환의 기력을 소진시켰던 것 같다.
3국은 전체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3국을 이긴 판팅위는 이제 한 판만 이기면 대망의 40만 불을 차지하게 된다.
벼랑 끝에 몰린 박정환은 한국 바둑 특유의 뒤집기 근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 역대 잉씨배 우승컵을 들어올린 한국 영웅들. 왼쪽부터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제1회 잉씨 배에서 조훈현 9단도 네웨이핑 9단에게 1:2로 몰렸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열린 4~5국에서 극적으로 역전해 한국바둑을 세계정상에 올려놓지 않았던가?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등 모든 잉씨 배 우승자들이 한국인 특유의 오기와 근성으로 바둑올림픽을 제패해왔다.
기회를 두 번 다시 잡기는 참으로 어렵다.
역설적으로 승리를 눈앞에 둔 판팅위가 부담감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으리라.
중국 바둑은 큰 승부에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해 무너진 트라우마가 있다.
바둑에서 공한증이 사라진 지 꽤 됐다지만 과연 그러한지 모레 열릴 4국을 지켜볼 일이다.
▲ 박정환. 반격에 성공할 것인가?
이세돌을 잇는 차세대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박정환이 지옥의 상하이 스케줄을 뚫고 농심 배와 잉씨 배를 거머쥔다면 바둑 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
5일 하루 푹 쉬고 운기조식한 다음 타이젬 바둑을 두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판팅위를 상대해주기 바란다.
수만 명의 타이젬 팬들이 일곱 시간 넘게 가슴을 졸였고 수백 만 명의 바둑 팬들이 상하이의 낭보(朗報)를 기다리고 있으니.
잉씨배는 대회 창시자인 고(故) 잉창치 선생이 고안한 잉씨룰을 사용한다. 전만법(塡滿法)이라고도 불리는 잉씨룰은 집이 아닌 점(點)으로 승부를 가리며 덤은 8점(7집반)이다. 특이한 점은 초읽기가 없다는 점. 각 3시간 30분의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하면 35분당 2점의 벌점을 받으며, 2회를 초과하면 시간패 처리된다. 또, 돌 가리기에서 이를 맞춘 이가 흑백선택권을 갖는다.
잉씨배의 우승상금은 단일 대회로는 최고 액수인 40만달러(한화 약 4억 7000만원), 준우승상금은 10만달러다. 2009년 대만에서 막을 내린 제6회 잉씨배 결승5번기에서는 최철한이 종합전적 3-1로 챔피언에 오른 바 있다.
TYGEM / 김종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