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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16시간을 날아왔더니 기권패라고라?

루마니아 크리스찬팝 선수 사상 초유의 지각 기권패

2013-08-05 오후 5:25:08 입력 / 2013-08-06 오후 6:31:33 수정

▲ 땀범벅이 되어 뒤늦게 스튜디오로 찾아온 루마니아 챔피언 크리스찬팝.

귀신같은 수읽기를 거침없이 해대는 고수들은 흔히 신(神)과 비견된다. 반상위에서는 신과 동격일지라도 반상을 떠나면 역시 한낱 인간인 것은 확실하다. 귀신잡는 이세돌도 지각패를 하지 않던가.

변화와 혁신의 기전을 주창하는 삼성화재배 월드조에서 처음으로 '지각 기권패'가 나왔다. 주인공은 멀리 루마니아 대표인 크리스찬팝. 루마니아 챔피언을 8회나 역임하고 일본기원 연구생을 2년간 수료한 그는 이번 월드조에서 우승이 유력시되던 아마7단의 실력자였다.

그는 오늘 오전11시 바둑TV스튜디오에서 방송대국을 갖기로 예정되었다. 스튜디오에서는 두판이 벌어질 예정이었는데, 이동훈-왕하오양 그리고 미국선수인 에릭-크리스찬팝 대국. 통합예선의 모든 대국은 오후1시에 벌어지지만 방송대국만은 오전11시에 벌어진다.

▲ 상대방 에릭(미국, 왼쪽에서 두번째)이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러나 개시시간 11시를 지나면서 에릭과 크리스찬팝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아 방송사측을 긴장시켰다. 관계자들이 어쩔 줄 몰라하길 10분여. 에릭은 허겁지겁 스튜디오에 골인했다. 그런데 상대인 크리스찬팝은 함흥차사였다.

그의 연락처도 분명하지 않아 기원과 바둑TV관계자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30분을 오버하자 입회인 윤종섭 사범이 크리스찬팝의 기권패를 선언했다. 이게 횡재라는 것인가?' 에릭은 한판을 거저 주워 희희낙락.

그런데 이렇게 마무리 되는 광경은 여느 기권패의 모습과 똑같았는데, 1시간여가 흐른 다음(정확히 12시 30분) 이 더운 날씨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190센티미터나 되는 꺽다리 크리스찬팝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기권패다. 애석하게 되었다"며 기자가 알려주자 그의 망연자실한 표정이란.

방송대국이라서 11시에 시작한다고 이미 그의 e메일로 통지가 갔고, 그는 알았노라고 회신도 했다. 따라서 대국시간을 잘못 판단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 16시간을 날아와서 다른 대륙의 고수를 만난다는 희열이 물거품된 것이 아쉽다고 그의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 크리스찬팝은 관계자에게 그의 애석함(?)을 설명하고 있다.

루마니아 챔피언 크리스찬팝은 몹시 애석해했다. 그는 어제 서울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한국기원에 들러 한중일고수의 대국을 관전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국이 처음이 아니었다.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대회를 통해 몇 번이나 한국기원을 방문했고, 한국기원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오늘 지각하게 된 것은 주최측의 불찰도 있어 보인다. 

골프나 테니스 대회의 경우는 지각은 물론이고 불참사태가 바둑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바둑에서는 '신경 써야 할' 선수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오랜만에 방문하는 '파란눈 기사'의 전화번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로 유럽 미주 등 먼 곳에서 출전하기 때문에 홀로 서울을 방문하곤 한다. 그렇다면 늦잠을 잔다든지, 시차적응 문제로 인해 약속시간을 놓칠 위험은 늘 상존한다. 대국 전날이라도 전화로 다시 한번 시간확인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크리스찬팝은 상대였던 에릭과 '번외경기'라도 붙여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미 떠나버린 에릭은 기원관계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비록 에릭과의 '목검승부'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의외로 한국고수에게 한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한국기원에 근무하는 대학강자출신 아마7단 윤광선 주임과 대국할 기회를 얻은 것.

루마니아 고수의 안타까운 사정을 잘 아는 윤주임은 '접대바둑'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했을까? 이겼을까, 졌을까? 윤주임이 이겼으면 크리스찬팝이 더욱 슬퍼지겠고, 만약 졌다면 그가 지각패를 더욱 애석해할 것이고….

아, 기사를 작성하는 도중에 대국결과가 나왔답니다. 역시 윤주임이 접전 끝에 반집을 졌답니다.ㅠ.’

▲ 관계자의 스마트폰에는 빨간 글씨로 오전11시가 선명하게 적혀있다.

▲'꿩 대신 닭?' 크리스찬팝은 대학강자출신 윤광선 주임과 번외대결.
TYGEM / 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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