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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장에서 배워 中 ‘보급의 제왕’으로

뉴스IN 뉴스人-중국 광저우 동호기원 책임사범 우자오이

2014-01-06 오후 11:17:23 입력 / 2014-01-07 오후 10:18:41 수정


▲ 한국도장에서 노하우를 배워가 중국 바둑보급의 선두에 선 우자오이.

중국의 1선급 대도시로 성장일로에 있는 광저우답게 신선하고 참신한 바둑기획으로 팬들의 관심을 단숨에 잡아버렸다. 주강배 결승은 공식대국 사상 최초로 결승을 3인조 복식경기로 치렀는데, 알다시피 한국 시드팀 최철한 강동윤 박정환 등 트리오가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상금 3억5000만원의 거금을 들여서 최상의 선수들을 모아서 최선의 기보를 뽑아보려고 했던 그 기획은 과연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주강배 간사역할을 맡아 직접 아이디어를 낸 이는 광저우에서 가장 큰 사설 기원인 동호(東胡)기원 우자오이(吳肇毅) 책임사범이었다.

이름이 낯설 것이다. 우자오이(49)는 위빈 마샤오춘 차오다위안 등과 비슷한 연배로 '과도기'를 살아온 프로였다. 그러다 보급의 제왕으로 변신에 성공하며 '중국의 권갑룡'으로 중국바둑의 성장에 큰 힘을 보탠 인물이다. 그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보았다.

▲ 그가 기자에게 건넨 홍보책자 한 페이지. 좌로부터 화쉐밍. 차오다위안. 마샤오춘 류샤오광. 위빈. 그리고 우자오이.

죄송하지만 한국 팬에게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986년 국가소년대에 들어갔으나 선수로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1999년 3명의 프로들이 힘을 합쳐 바둑도장을 차렸으나, 1년도 안되어 내부적인 문제로 홀로 도장을 경영했다. 당시 아이들 수는 7~8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도장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보급에 눈을 뜨게 되었다.

홍콩배우 이연걸을 닮았다(웃음). 선수로도 유망했던 분인 것으로 안다.
고맙다. 그러나 무술은 못한다(웃음). 뭐, 유망했던 것은 아니고…. 1986년 이후 한때는 타이틀도 욕심내며 랭킹10위 정도까지 진입했다. 과거 중국엔 국수전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메인타이틀전 이외에 신예국수전이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한번 우승한 적이 있다. 그때 위빈이 3위를 했다. (그가 말한 것은 1995년의 국수초청전이다.)

그 후 도장을 개척하여 지금은 광저우로 와서 보급의 대부가 되어있는데?
대부는 아니다. 베이징에서 도장을 하면서 2005~2010년에는 국가대표소년팀 코치로 복귀해서 일을 했다. 그러다 2011년 광저우로 왔다. 2002년에 정식으로 법인 등록을 하고 동호기원에서 100명 정도의 제자를 키우게 되었다. 현재 기원의 규모는 5000명 정도라고 해두자. 바둑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생 반, 취미생활로 배우는 학생 반이다. 지도사범은 60명 정도. 비교적 빠른 나이에 후진양성에 나선 이유는 비염 축농증을 심하게 앓았는데, 수술을 받고도 산소공급이 안되어서 호흡에 애로를 느꼈다.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동호기원의 성격은 어떤가. 기록계시하던 소년들은 동호기원 소속인가?
중국기원이나 광저우기원은 국가가 관리하는 곳이며, 동호기원은 사립 기원이다. 한국의 일반 기원과는 다르며, 전문도장이라도 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일반기원+바둑도장+유치원을 합쳐놓은 듯한 시설이라고 보면 된다. (주강배) 기록계시를 하던 꼬마들은 동호기원 소속으로 9살 전후의 아마5단이다.

베이징보다 광저우 시장이 더 좋은가?
첫 번째는 내가 광동사람이고, 두 번째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는 취향 때문이다. 2000~2010년에 프로 지망생들을 키울 때는 한국의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서봉수 등 4인방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고, 또 2010년 이후엔 저변을 넓히기 위해 도전했다. 광저우는 아시안게임을 유치했고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좋은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 인터뷰 와중에도 그는 연신 사인공세에 시달렸다.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이창호의 동생이며 사업가인 이영호 씨.

10년 전 바둑시장 상황과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나?
많은 차이가 있다. 베이징에서 바둑도장을 차렸을 때는 한국의 전문도장을 자주 방문하여 하나에서 열 가지를 따라하며 배웠다. 그래서 돈도 벌고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굳이 프로지망생에 국한하지 않고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취미로써 바둑을 굉장히 즐긴다. 중국은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듯하다. 보급으로서 프로지망생은 묘미가 좀 떨어질 정도다.

앞으로 보급 계획은?
인터넷사이트에서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중국을 넘어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 꿈이다. 그를 위해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었고 대국실 구비도 되었다. 곧 출발한다.  

주강배에서 3인이 함께 한판의 바둑을 두자는 기획을 냈을 때 중국의 반응이 어땠나?
반대 의견이 더 많았지만, 크게 반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새로운 기획으로 획기적인 행사를 해보자고 설득하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사실 중국은 단순하게 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획을 자꾸 만들어내고 있다. 주강배의 새로운 시도는 장차 바둑의 종목을 다변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보급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손수 배출한 프로는 누가 있는가?
퉈자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리친청은 무릎에 올려놓고 키웠다. 저우루이양도 어느 정도 키워서 나중에 네웨이핑도장으로 보냈고, 그러다가 입단 이후 소년대에 들어와서 재회했다.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고, 1년 이상 가르친 프로만 60여명이다.

지금 한국바둑이 의기소침한 상태다. 한국바둑을 위해 조언을 바란다.
지금은 중국이 대등하거나 나은 상태로 접어들었다. 권갑룡 사범 같은 분이 없었더라면 한국바둑이 과연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을지 반문해본다. 20년 전 한국의 바둑도장처럼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단 시간 내에 (한국바둑이) 올라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한중간에 서로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한중보급의 선각자 권갑룡과 우자오이.
TYGEM / 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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