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둑팬들에게
2003년 11월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붉은 11월'이 될 것 같다.
저주가 내린 것일까?
10월말 제8회 LG배 8강전에서 창하오(常昊) 9단과 왕레이(王磊) 8단이 패해 전원 탈락하면서 불길한 징조를 보인 중국은
11월 초 제8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 후야오위(胡耀宇) 7단과 시에허(謝赫) 5단마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전멸했다.
급기야 11월 중순 제5회 농심신라면배 제2라운드에서는 역대 최강 멤버라는 왕레이 8단, 저우허양(周鶴洋) 9단, 후야오위
7단이 단 1승도 못 거두고 전패를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특히 농심배의 경우, 세계 바둑계의 최강 트리오,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이 빠진 한국 신예기사들과 랭킹 1-2위 '야마시타
게이고-요다 노리모토'가 빠진 일본 노장기사들에게 받은 일격이라 더욱 그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 중국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3주에 걸쳐 펼쳐진 메이저급 세계 대회에서 9전 9패의 참담한 성적을 거둔 중국 바둑계에
대한 비난과 자조, 격려의 글들이 하루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다.
우선 비난성 글은 제목은 다음과 같다.
- 중국 기사들은 항상 '작은 용(小龍)'과 '작은 호랑이(小虎)'들 뿐이다. 언제
'大龍'과 '大虎'로 성장할 것인가 (6소룡과 10소호를 칭함)
- 참패의 책임을 명백히 물어야 한다. 중국기원 원장은 자진 사퇴하라
다음은 자조 섞인 글.
- 후야오위는 아직 조치훈에게 분패한 상처가 낫지 않았을 뿐이다
- 언제 중국이 최강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하지만 언제 우승했던 적이 있었나?
희망이 담긴 글도 가끔 보인다.
- 아직 절망하기에 너무 이르다. 구리가 남아있지 않은가
- 구리는 이창호에게 1승을 거두고 있고 아직 그에게 간파되지 않았다
비록 최악의 위기를 맞았지만, 중국 바둑계는 최후의 보루로 떠오른 구리(古力) 7단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중국리그에서
14승1패, 93% 승률을 기록하는 등 단체전에서 불가사의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구리 7단에게 중국의 마지막 운명을 맡긴
셈.
구리 7단은 내년 초에 속개될 농심배 최종 라운드의 첫 상대로 확정된 원성진 5단에 대해 "원성진 5단은 최정상급
기사는 아니다. 아직 미세한 부분에서는 '조훈현-이창호-유창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전 수습능력이 뛰어나고,
계산이 밝으며, 거친 몸싸움도 잘하는 등 전체적으로 만만치 않은 실력의 기사임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했다.
중국팀 주장으로서 앞으로의 각오를 묻는 질문에는 다소 부담감을 느낀 듯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부담을 느끼지 않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대국 상대에게 한수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전기 대회보다 잘 두겠다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 확실한 목표를 말해 다른 사람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농심배 최종 라운드는 춘절(설날) 기간(중국은 춘절에 7일 쉼)에 열린다고
들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매년 구정 기간에 슬럼프를 겪었었는데 이번에는 충분한 준비를 거쳐 농심배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다. 특히 농심배 3라운드는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므로 지리적인 이점과 국내 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등에 업을 수 있기에 더욱 좋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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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중국의 희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구리 7단이 위기에 빠진 중국 바둑계를 구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리
7단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내년 2월 11일부터 4일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제5회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항전 최종 라운드에서
판가름난다.
중국=TYGEM/이영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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