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타
네덜란드는 바둑도 약물 검사를 한다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 유럽 바둑 소식 16
2006-05-19 오전 10:52:59 입력
| 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 쓰는 한상대 교수. 한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면 바둑보급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다시 프랑스 칼레에서 브룻셀로 가는 기차를 타고 거기에서 암스텔담 가기 전 역인 레이든(Leiden)까지 우리는 가야 한다. 이 곳 홀리데이 인(Holiday Inn)이 우리의 숙소이다. 그런데 브룻셀에서 네덜란드 행 마지막 기차를 탔는데 항구도시 로테르담까지 밖에 안 간다고 한다. 그것도 도착 시간이 밤 12시다. 나는 10시에 하리(Harry van der Krogt 3단)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다. 하리는 우리 호텔 값을 벌써 지불했으며 자기가 운전해서 지금 곧 로테르담으로 떠나겠다고 한다. 우리는 마치 서울에 올 사람이 대전에 밤 12에 도착해서 데리러 오라는 꼴이 됐다. 우리가 로테르담에 도착하여 하리를 기다리는 20분 동안에 내가 해원이에게 먹을 걸 좀 사오라고 했다. 여기에 오는 기차에는 식당 칸이 없었다. 해원이가 조금 후 돌아 오더나 “교수님, 여자 혼자 들어가기는 식당 분위기가 좀 그런 것 같아요” 해서 내가 길 건너 음식점에 해원이와 같이 갔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다. 그 동안 짐은 하진이가 지키고 앉았다. 우리는 역 앞 아랍 계통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각종 인종들이 북적거리는 속에서 케밥(Kebab) 비슷한 음식을 사 갔고 왔다. 역시 해원이와 하진이가 끝내주게 잘 먹는다. 조금 있다가 하리가 웃으며 역으로 걸어 들어오는데 미안해 죽겠다. 도버 역만 안 지나쳤으면 이런 민폐를 안 끼쳤을 텐데.
2006년 4월 8일 1 층에는 바둑과 첵커, 2층에는 체스와 브릿지 대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유럽 바둑 문화 센터 매니저인 프랑켄 얀센(Franken Jansen 6단-현 네덜란드 챔피언)씨가 일본 옷을 입고 열심히 바둑 강의를 하다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첵커 세계 챔피언도 만났다. 우리도 지도기도 두어 주면서 참여했다. 점심 때 모두가 같이 몇 블록 떨어진 식당으로 갔다. 비가 오니까 테오가 자기의 코트를 벗어서 하진이에게 입혀 준다. 자기는 와이셔츠 바람으로 움츠리고 비를 맞으며 간다. 거기에다가 날씨가 꽤 춥다. 소위 서양식 신사도를 발휘한 것이다. 네덜란드 바둑협회는 그 나라 체육부 소속으로 되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이 돈으로 어린 유망주 바둑 교육비에 쓰려는 생각이 있다며 한국 유명도장에 자기네 영재를 보내면 경비가 어떻게 드는지 문의를 해 온다.
오후에 래이든 바둑클럽 대사배 대국장으로 왔다. 다음 주에 한국 대사가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대사관에서는 김 영사 혼자만 나와 있다. 네덜란드 바둑 협회장 롱엔(Jan van Rongen 3단)씨가 나에게 대사가 안 나와 개막식이 없어져 일부러 힐버섬에 우리를 먼저 가도록 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대신 시상식 때 인사말을 해 달라고 한다. “한국 대사배에 대사 자신이 안 나오다니”속으로 기분이 안 좋았으나 하필 대사가 바뀔 때 이런 행사가 있게 된 것도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했다. 수퍼그룹 16명이 바둑 두는 모습을 우리는 유리문을 통해서 들여다보았다. 해원이가 “바둑 두는 모습들이 너무 진지해요.” 한다. 기분이 찜찜해 있는 나에게 김 영사가 “저녁 늦게나 오늘 3라운드가 끝 날 테니까 그 동안 제가 헤이그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한다. 주최측에 얘기하고 우리 3명은 김 영사 차로 1 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는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 갔다. 김 영사는 바둑이 아마 3단이고 우리에 대해 벌써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와 먼저 아름다운 해안 휴양지인 스케이브닝헨을 차로 돈 후 시내로 갔다.
그는 우리에게 국제사법 재판소, 국회의사당 등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만국 평화 회의장에 가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건물이 크고 무게 있어 보인다. 이 곳은 이준 열사가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가서 을사보호조약을 무효화시키려고 노력하던 장소다. 한국 대표는 회의장에 못 들어가게 해서 밖에서 각국 대표를 상대로 전단을 뿌리고 애를 쓰다가 이 곳에서 운명했다. 그 당시 이준 열사에게 이 곳은 얼마나 생소한 곳이었을까. 그 분의 명복을 빈다. 우리는 저녁을 한국 식당에서 먹었다. 주인이 나와 바둑 사절단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한다. (한상대 교수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소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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