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바둑기고가가 '개혁과 체육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하여'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최근 바둑계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기획된 기사는 1, 2, 3편으로 나뉘어 14일, 15일, 28일에 소개된다.
[1편 바로가기]
[2편 바로가기]
대안을 얘기하라는 질책이 많았다. 졸견이나마 대안도 하나 제시하려고 했었다. 위의 주제에 대해 원래는 5~6회분 정도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시류에 잘 맞지도 않을 뿐더러 지루해질 것이었다. 다만 기왕 얘기를 시작한 것이니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지난번 댓글에서 어느 분께서 말씀하셨듯이 바둑은, 사실은 즐기면 되는 것이다. 바둑이 너무 좋아 바둑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바둑을 취미로 즐기느냐, 거기서 더 나아가 바둑 일을 생계의 방편으로 삼느냐 하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얘기하고 말 것도 없다.
다만 바둑계도 점점 커지고 있고, 또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바둑은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문화라는 것을 바둑인이라면 대개는 공감하고 있으니 그걸 더 발전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 얘기의 출발점은 거기다.
바둑계가 할 일은 교육이다. 조금 더 나누어 말하면 교육과 복지다. 교육은 바둑을 가르치며 보급하는 일. 복지는, 바둑을 아는 삶과 바둑을 모르는 삶의 차이를 인식시키면서 이른바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이다. 그를 통해 바둑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찾는 일이다. 바둑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나는 이게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얼마전 바둑 보급을 위해 군부대에 여성 프로기사들이 나섰다. |
전자는 지금 바둑교실이나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 등을 통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분들이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니 갈수록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 바둑이 어린이 청소년들의 지능개발과 정서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아직은 심정적인 인정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더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둑이 특기 적성 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정규 교과목에 들어갔으면 제일 좋겠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각종 시험에 입시에 사교육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러면 어느 날 만약 바둑이 정식 과목으로 들어가게 될 때 바둑이란 이름으로 들어갈 것인지, 체육의 한 종목으로 들어갈 것인지.
후자의 경우도 몇 년 전에 당시 바둑계 인사 한 사람과 보건복지부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져 노인들의 복지후생 향상을 위한 바둑 교육 사업을 위해 20억인가 30억인가를 후원 받기로 되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은 성사되지 못해 안타까움을 산 일이 있었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그만한 규모의 후원을 결정하는 단계에까지 갔다는 것은 바둑의 효용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그 불씨를 살려야 한다. 처음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가 되겠지만, 그게 자리를 잡으면 지자체들이 나설 것이고, 기업이 참여할 것이다. 현재 우리 굴지의 기업들은 바둑에 참여하지 않고 있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했다가 물러서는 중에 있다.
대기업들은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쪽에는 기꺼이 패트론을 자원하고 있다. 예술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믿기에 그렇다. 바둑도 그들에게 명분을 주어야 한다. 대기업이 바둑을 봐 준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바둑의 가치와 효용을 인정해 동참하게 되면 이후엔 수많은, 이른바 파생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도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90에 이를 것이라는데, 60 언저리에 일선에서 물러나면 나머지 30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바둑은 그 30년을 동행할 좋은 친구 가운데 하나다. 경제력이나 체력에 상관이 없다. 그걸 알게 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바둑을 배우러 오는 60~70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친구들이 모이면 바둑들을 두는데, 혼자 그냥 앉아 있기가 그래서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상징적 조짐이다.
 ▲ 시애틀에서 열린 총영사배 바둑대회. |
이것과는 별개면서도 같은 얘기로 여겨지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둑은 영어권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특히 미국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 가령 미국 시장에 프로기전 같은 게 본격적으로 생긴다면 일단 볼륨이 지금 우리 것의 최하 100배는 될 것이다."
동감한다. 그런데 영어권에,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길은?
10여 년 전에 바둑을 좋아하는 미국 교포 한 사람이 잠시 한국에 들어와 바둑을 미국에 수출하는 길을 모색했었다.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걸 옮겨 보겠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고, 선진국들에서 노인 문제가 심각한 숙제의 하나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도 정말 그렇다. 내가 사는 동네만 보더라도 호자 사는 노인들이 꽤 많은데, 이 분들이 말 상대도 없고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해가 뜨면 아침부터 현관에 나와서 하루 종일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비둘기가 오면 모이를 주고, 어쩌다 우편배달원이라도 오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그를 붙잡고 마냥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것이다. 우편배달원은 우편물을 전해 주는 일보다 노인들 말 상대를 해 주는 것이 본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연금이 있으니 먹고 사는 거야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들에겐 먹고 사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외로움이다. 그래서 자살을 한다. 한국도 지금 거의 그 단계까지 와 있지 않은가."
 ▲ 미국 스탠포드대학에 있는 바둑클럽. |
그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바둑을 떠올리게 되었다.
"주 정부 관리를 만나고 상원의원을 만났다. 그들에게 바둑을 제안했다. 노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더구나 바둑을 두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들도 그걸 알고는 있었다. 우리가 바둑 자원봉사 교사팀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한국에는 바둑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무궁무진하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바둑을 설명했다. 말한 본인이 깜짝 놀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노년의 고독’이라는 사회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얘기였을 것이다. ‘표’하고도 직결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자원봉사 교사팀은 어떻게 만드나? 우선 비용의 문제가 있지 않은가. 최소로 한다 해도 그 자체가 꽤 많은 돈이 들 텐데. 그 나름의 구상이 있었다.
"일차적으로는 교재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다음에는 바둑판 세트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기부-기여-자원봉사 같은 자기희생에 대해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준다. 교재만 해도 그게 얼마나 많은 부수가 필요할 것인가. 바둑판 세트는 또 어떻고. 교재나 바둑판이나 일단 발동이 걸리면 무조건 최소한 1000만부, 1000만 세트 아닌가. 미국이 되면 캐나다도 될 것이고 러시아도 될 것이다. 내가 미국과 바둑을 연결시키려 할 때는 내 나름으로는 사업성도 고려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사업이 또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뭐든 그렇지만, 선점하는 일이다."
그는 주 정부와 상원의원으로부터 “교재나 바둑판 사업은 우리가 밀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불발에 그쳤다. 한국에서 그의 제안에 호응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당시 교포 분의 얘기는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또 그 자신이 바둑보급보다는 바둑교재나 바둑판같은 자신의 사업에 더 주안점을 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노인 복지를 주제로 하는 기여-기부를 통해 미국 사회, 미국 시장, 세계 사회, 세계 시장에 들어가고, 바둑이 먼저 기여하면 사업성도 창출할 수 있다는 그 착상은, 바둑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의 하나로 경청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먼저 준다는 것, 그건 어디나 통한다. 그건 또 바둑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바둑 정책의 경우 우리는 중국보다는 일본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사회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 바둑이 쇠퇴했다는 것은 부분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2007년에 일본기원의 초청을 받아 나라현에 간 적이 있다. 일본기원 산하 나라현 바둑협회 창립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지방 바둑협회의 창립 30주년. 무엇보다 그 시간의 부피가 만만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바둑팬과 프로기사, 바둑관계자들이 500명쯤 모여 기념식, 시상식, 강의와 세미나, 지도다면기와 팬 사인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세계대회 및 도전기가 있는 날이면 일본기원 1층 로비에는 많은 바둑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관전자는 대부분 노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
나라시의 중심지를 벗어난 곳에 있는 조그만 기원에 가보았다. 한쪽 벽에 요일별로 프로기사의 이름과 그 밑으로 일반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요일에 그 프로기사가 기원에 나온다는 것. 그 프로기사 이름 밑에 이름을 적은 사람들은 그 날 그 프로기사에게 지도를 받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주로 노년층이었다. 할머니와 중년 부인도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바둑을 두고, 복기를 하고 환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지도를 받은 사람은 프로기사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지도료였다. 승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지도료가 얼마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도, 승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지도료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액수였을 것이다. 바둑과 함께 그렇게 살고, 그렇게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일본도 젊은 층에서는 바둑이 인기가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바둑의 풀뿌리는 넓고 깊게 퍼져 있다는 느낌, 바둑이 꼭 쇠퇴한 것은 아니고 시대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 프로기사들이 성적을 내고 못 내고는 다음 얘기라는 느낌들을 받았다.
두 가지를 병행하기를 바란다. 바둑의 겉모습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조금씩 변화시키는 일도 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바둑의 본질과 정체성을 위해 더욱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가꾸어 가는 것, 바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정말 좋다는 것, 그런 것들을 일깨워주는 일도 해야 한다. 그게 세계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법, 바람직한 작전이다. 서구인들에게 스피드로 어필할 것인가, 느림으로 어필할 것인가. 바둑은 어려서 배워 늙어서 즐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