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의 버퍼링이 심하다
모두 합쳐 200단(段)이 넘으니 ‘별들의 고향’이라 불러도
무리는 없을 테지. 8월의 뜨거운 한복판, 부산에 모여 정염(情炎)을 토했던 올드보이들의 표정은 소나기 갠 오후의 하늘처럼 맑았다.
한때 빛나는 초록 신성(新星)으로 답답했던 70~80년대의 바둑계를 밝혔던 그들. 曺徐 양웅의 철벽에 막혀 도전5강이나 본선 멤버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후일을 기약해야 했던 그들. 그러나 그토록 갈망했던 후일은 야속하게도 기다림 속의 화석으로 남고 말았다. 어느
틈엔가 이창호 시대가 열렸고 이후 시니어 기사들은 제대로 된 성(城) 하나라도 차지할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정상권에서
회군(回軍)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한 평생 바둑의 길을 걸어 온 그들의 삶은 한국바둑의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로, 보이지
않으나 힘을 보탠 존재가치가 충분한 것.
“우리들끼리도 이렇게 서울에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이
부경대회에서 제대로 회합하는 거죠. 그래서 감회가 각별합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한다.
“솔직히 신예기사들에
비하면 힘이 딸리죠. 그런데 우리들의 대국을 타이젬에서 중계한다니 열심히 두어야겠네요.”
전야제 행사로 부산지역 명사들과 지도 기를 두고 자갈치 시장 횟집에서 술잔을 돌린 후 그들은 각자 선호하는 취향과 그룹에 따라
자유 시간을 즐겼다.
필자는 새벽 4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취한 OB 몇 분과 조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침 일찍 시작된
행사에 그들은 전원이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입장했다.
“평생 초읽기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니 시간관념 하나는
특별합니다.”
대회 집행위원장인 부산의 이기섭 사범이 그렇게 설명했다.

▲ 타이젬 중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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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전은 오전 1차전, 오후 2차전으로 진행됐다. 승리한 팀은 당연히 두 배의 상금을 받게 된다. 또 개인적으로 승리한 기사는
승리 수당을 받는다. 그러므로 팀이 이기고 개인이 2승을 거두면 최대의 상금을 획득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는 최소한의 초청비만 받게
된다.
승부보다는 친선의 성격이 강하지만 타이젬에서 중계를 하고 모든 기보를 서버에 영구보존한다니 아무래도 손에 힘이 들어간다고
밝힌 이도 있었다.
항상 1착으로 판을 끝내고 검토실에 나온 주인공은 서능욱 9단이었다.
“부산에 사는 장명한 사범께서
승리수당을 양보해줘 이겼습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장명한 9단이 씩 웃는다.
차례로 대국을 끝낸 기사들이
검토실 컴퓨터에 앉아 수순을 타이젬 서버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원래 기록자가 대기해야 하지만 당신들이 알아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서능욱, 김준영, 윤현석, 최철한, 정수현
군대로 치면 사단장급 스타들이 기보를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요즘은 두뇌의 버퍼링이 좀 심해요. 예전에는 여러 판의 수순을 기억했는데 요새는 하룻밤만 자고 나면 어제 둔
바둑의 수순이 가물가물하다니까요. 확실히 뇌 세포가 노화되나 봅니다.”
정수현 9단이 기록을 끝내고 고백한다. 젠틀한 이미지에
정확한 표준어와 깔끔한 비유를 구사하는 정9단은 확실히 반상의 소크라테스답다.

▲ 강훈 9단과 차수권 7단이 복기를 하고 있다. |
강훈 9단은 1차전 바둑에서 실수를 범했다면서 거듭 참고 도를 그려 보인다.
“제가 이렇게 경솔하다니까요. 이거 뻔히
알면서도 손이 반사적으로 나가버렸어요.”
중요한 승부가 아닌데도 패착에 대한 아쉬움이 큰 모양이다. 검토실의 어떤 이에게라도
존대어를 사용하고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강훈 9단에게서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 김일환 9단과 정수현 9단의 대국 모습. |
지난 주 삼성화재 배 예선에서 연승을 거두고 32강에 진입한 김일환 9단은 2승을 거둬 최근의 호조가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특별히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 바둑이 즐겁습니다. 특히 강한 신예들과 만나면 짜릿한 손맛이 있어 좋습니다.”

▲ 부채를 들고 바둑을 두고 있는 김수장 9단. |
합죽선으로 살랑살랑 바람을 일으키며 대국하는 김수장 9단은 젊었을 때 당당한 체구와 넉넉한 관상으로 여성 팬들의 인기를 모았던
스타였다. 그런데 50대에 접어든 뒤로 친형 고 김수영 사범의 모습이 살짝 보이는 듯싶다.^^
MVP는 영환도사
이 번 부경대회에서 2연승을 거둔 기사는 최철한, 김영환, 서무상, 김일환 등 4명이다. 역시 전적에서 나이가 반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 실질적인 MVP는 김영환 9단이었다.
그는 부산 팀으로 참가해 우승상금을 획득했고 3연승으로 승리수당, 심야의
당구내기에서도 차수권 사범과 팀을 이뤄 타이젬 취재 팀의 코 묻은 지폐를 따갔으며 숙소에서 벌어진 훌라대회에서도 강적들을 물리치고
우승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원래 선배님들의 밥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상대들이 만취한 상태에서 빈틈을 많이 노출해주시던데요.
당연히 잃어야 할 멤버가 이겼으니 이를 테면 역 끝내기를 한 셈이죠 으하하.”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의 중간 교량
역할을 맡고 있는 김영환 9단도 부경교류전에 어언 열두 해째 참가하고 있다니 이제는 올드보이 쪽에 가까운 모양이다. 활달한 성격의
윤현석 9단은 대진운이 나빠 최철한, 김영환 9단과 붙어 2패를 당했다. 그래도 아주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제 역할이 철한이
전담마크였거든요. 환갑을 앞둔 선배님들이 세계 챔피언과 붙으면 얼마나 시달리겠습니까?”
말수가 적고 마주치면 눈웃음부터
짓는 서무상 7단은 내성적으로 보이는데 검토실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흐름을 주도하는 리더였다. 최신 정석이나 흐름을 가장 많이
공부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 김영환 9단이 윤현석 9단과 대국을 하고 있다. |
세계 챔피언의 수발을 받다
점심 메뉴는 중앙동 우래정의 뽈락매운탕이었다. 낚시로만 잡는다는 뽈락이어서 그런지 식감이 산뜻했다. 참가자, 관계자, 취재 팀
등 30여 명이 한 방에 나란히 앉았는데 식당의 일손이 부족해 음식이 더디게 나왔다. 그때 분연히 일어나 밥그릇 쟁반을 든 이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최철한 9단. 잉창치 배를 거머쥔 세계챔피언이 직접 나눠준 공기 밥은 각별했다.
“올해 큰
타이틀 하나 더 딸 거야.”
공기 밥을 받으며 누군가 덕담을 건넨다. 선배들은 대회 현장에서 끔찍하게 최9단을 아끼고 챔피언으로
대우해줬다. 사진을 찍을 때 가운데 자리를 내줬고 회식 자리에서는 상석을 양보했다. 이번 교류전에서 가장 막내로 참가한 최9단은
사석에서 궂은일을 스스로 찾아 맡음으로써 공식석상에서 받은 배려를 선배들께 갚았다.
사소하지만 진정한 프로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다시 오후 2차전을 위해 대회장으로 들어왔는데 최철한 9단이 필자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왔다.
‘헉! 최 거성(巨星)이 이 필부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저어 이걸 식당에 두고
오셨더라고요.”
최철한 9단이 건넨 것은 필자의 까만 가죽모자였다. 역시 눈썰미 죽여주고 사석 하나 버리지 않는 세심함이라니!
(그가 아니었으면 올해 벌써 아홉 개째 모자를 잃어버릴 참이었음 (- -;;;)
아무도 바다를 보지 않았다.
부산 팀의 압승으로 부경 교류전은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부산 팀이 늘 서울 팀에게 많이 양보했었지요. 머나먼 서울에서
왔는데 차비는 만들어주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타이젬에서 현장중계를 하지 않았더라면 올해도 그 관행이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유저들이 본다는데 부산의 명예를 걸고 꼭 이겨야 했습니다. 최철한 9단까지 스카웃했을 때는 우리의 의지가 어떤지
알았어야죠.”
부산 팀의 주장 김준영 사범이 우승 상금을 받아들고 일갈한다.
교류전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참가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일일이 챙겨주었던 이기섭 사범은 폐회를 알리면서 이마의 진땀을 닦았다.
“말이 20년이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우리 부산협회에서 이 부경대회를 그 어떤 행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용을 조금 더 들여 큰 대회를 만들
수도 있지만 반짝 행사보다 그 동안 우리 바둑을 짊어지고 온 시니어 기사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힘닿는 데까지 이어갈 생각입니다. 다른
지방에서도 부경대회를 벤치마킹해서 시니어 그룹이나 여류 그룹 등을 후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산으로 바람을 쐬러
왔다고 했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프로기사들은 아무도 바다를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부산역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갔고 숙소에서 대회장으로
자갈치 시장으로 다시 숙소와 대회장을 반복한 다음 차례로 KTX를 탔으니 바다를 볼 시간이 없었다.
그 물 좋다는 해운대
해수욕장이나 광안리도 그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일 년 만에 만나는 그리운 벗들이 있는데 어찌 한눈을 팔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