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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옥션배

바둑의 연인(戀人) 김여원

- 지지옥션배를 아마 여류 팀에 안긴 김여원6단

2011-06-08 오후 2:32:29 입력 / 2011-06-09 오전 9:33:14 수정

▲'거리의 천사'로 알려진 김여원 아마 6단

S#1. 지지옥션 최종국 스케치

“졌다.”
맹장 조민수가 굵고 짧게 돌을 던지자 김여원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하 검토실에 모인 시니어 팀 응원단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6월 7일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속개된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대항전 제12국.
여류 팀 5번 타자로 나선 김여원 6단은 시니어 팀의 수문장 조민수7단을 불계로 누르고 여류 팀 우승을 확정 지었다.

여리디여리게 생긴 여원이 조민수를 꺾으리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국 몇 시간 전 문자인터뷰를 통해 받은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조 사범님과 대국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승부는 반반이라고 생각해요.”
‘반반’이라는 뉘앙스에서 자신감이 풍겼다.


▲기원 주차장 아마 사범들과 미소 짓는 여원

대국 10분 전.
김여원의 표정은 환하고 밝았다.
오후에 왕십리 비트플렉스에서 길거리 다면기 행사를 하고 온 터라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수줍어하는 여원

“워메! 미인계여? 겁나게 예뻐불구마잉.”
자리에 앉으면서 조민수7단이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김여원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빨갛게 달은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가 젊었을 때면 몰라도 지금은 안 통할 거여. 하하하.”
김여원의 흑으로 바둑이 시작된 바둑.
포석은 빠르게 진행됐다.
좌변에서 격렬한 부딪힘, 그리고 중앙으로 확산되려는 순간, 조민수7단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흑 대마의 사활을 물었다.
그러나 흑 대마는 빅으로 사는 그림이었고 김여원은 이미 수를 읽고 있었다.


▲마주 앉은 대국자

그 착각 탓에 승부의 저울추가 흑으로 기울었다.
“어? 이상한데! 만만치 않아.”
“끝난 바둑 같은 걸?”
검토실에 모인 시니어 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켠에 앉은 여류 팀 응원단 박한솔과 강다정은 이후 참고도를 주르륵 놓아보고 있었다.
“흑의 집이 많아요.”
물어보니 간단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검토 중인 여류팀(오른쪽)과 시니어팀

이후 조민수7단은 귀를 파고, 들여다보고, 끊고, 돌려치고 화력을 총동원해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여원의 대응은 침착하고 냉정했다.
애매한 곳에서는 역습으로 풀고, 패싸움은 그냥 양보해버렸다.
253수 만에 조민수7단이 돌을 던졌다.
승부는 일찍 기울었지만 시니어 팀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판이라 짙은 아쉬움 때문에 항서를 쓸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리라.

▲김여원과 강다정의 하이파이브

 
▲박한솔과 복도에서 브이


▲사진 기원 나서는 시니어

시니어 팀은 여류 팀의 우승을 축하해주고 기원을 나섰다.
오늘 술맛은 입에 쓰겠지.
아냐. 그냥 들어가는 게 낫겠어.
어두운 밤거리에서 그들은 행선지를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여류팀의 '튀김 파티'

S#2. 길거리의 천사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로

여류 대 시니어 대항전을 종결시킨 뒤 김여원은 후배들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오늘은 내가 쏠게!”
한국기원 인근의 튀김집.


오징어와 새우튀김 파티가 벌어졌다.
- 준비를 좀 했나 봐요?
“네, 정상급 기사들이 스파링 상대로 지도해주셨어요.”
정상급이란 표현에 후배들이 씩 웃는다.
남자 친구 박정상 9단과 윤성현 9단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후배들은 김여원의 장점을 수읽기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지옥션 최종국에서 그녀는 수읽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외모와 달리 깊은 수읽기를 바탕으로 난타전에 능한 기풍이라고 했다.


▲김여원은 2009년 전국체전 우승, 2010년 여류국수전에서 준우승했다.

김여원은 최근 바둑계에서 '거리의 천사'로 알려지며 바둑TV 등의 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왕십리 역 비트플렉스에서 ‘노숙자 돕기’ 길거리 다면기 행사를 매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모은 돼지저금통 속 동전을 털어 시드머니를 만들고 다면기에 응한 바둑 팬들의 기부금을 더해 노숙자들을 위한 기금을 만드는 중이다.

▲다면기 행사 중인 김여원

바둑을 잘 모르는 주부들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김여원은 형식을 깨트리고 낮게 임하는 거리 이벤트를 연출하고 있다.
그녀의 부드러운 여성적 외모와 친근한 미소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쯤은 끌어당기므로 가능한 이벤트다.

타이젬과 함께 한 사랑의 밥차 행사 1회, 2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기사는 그녀밖에 없다.
바둑 보급에 나침반의 눈금을 맞춘 채 뒤돌아보지 않고 몸을 던지는 행보(行步)다.
또 삼성반도체의 바둑동아리 지도사범으로 매주 기흥을 오가며 산업 전사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바둑으로 풀어주고 있다.
그곳에서도 김여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20년이 넘은 삼성전자 기우회가 최근 김여원을 지도사범으로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김여원 사범님이 라이벌 업체로 가신다면 저도 사표를 내고 따라갈 겁니다.”
삼성의 기우 한 사람이 익살스럽게 애정을 표한다.

▲인터뷰 중인 김여원

“어려서부터 입단을 목표로 바둑 공부를 했는데 사춘기를 거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어요. 집중력을 잃으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나이 제한에 걸려버렸지요. 상실감이 엄청났는데 이제는 마음이 참 편합니다. 제게 주어진 달란트가 보급이 아닌가 싶어요.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서기 어려운 곳을 찾아갈 수 있으니 오히려 편합니다.”
그녀의 진솔하고도 따뜻한 고백이 아름답다.

▲타이젬 '사랑의 밥차 행사'에 참여했던 김여원

S#3.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바둑의 연인(戀人)

6월 14일(화) 오후2시부터 왕십리역 비트플렉스에서 길거리 다면기 마지막 행사가 진행된다.
이 날은 김여원을 돕기 위해 한해원, 김효정, 임동균, 심우섭 사범 등이 자리를 함께 한다.
왕십리가 멀지 않은 바둑 팬들께서는 찾아가서 바둑의 연인, 김여원과 수담을 나눠보시길 권한다.
또 한국기원 지하 바둑TV 라운지에서 그녀는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토요일 오후 4시에 바둑 강의를 한다.
제대로 기력을 올리고 싶은 분들께서는 찾아가 보시길.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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