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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푸르니까 청춘이다

지지옥션 6연승의 신데렐라, 김신영

2011-07-05 오후 3:02:46 입력 / 2011-07-05 오후 4:06:42 수정

▲김신영.

S#1. 폭풍의 5월

그녀에게 봄은 감기처럼 다가왔다.
무척 아팠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입단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은 역시 따뜻한 봄이었다.
푸른 들판을 흐르는 강물처럼 거침없이 달렸다.

지지옥션 여류 시니어 대항전에 나가 백전노장의 아저씨들을 여섯 명이나 차례로 제치고 질주했다.


▲힘차게 착수하는 김신영은 시니어팀을 상대로 6연승을 기록한다.

단정한 외모, 냉정한 판단, 뜨거운 승부욕.
바둑 팬들이 환호했다. 입단하지 못 했어도 그녀의 이름은 순식간에 널리 알려졌다.
올해 지지옥션은 그녀를 위한 대회라고 해도 좋았다.
한판만 더 이겼으면 퍼펙트,

▲조민수와 대결한 김신영(왼쪽)은 6연승에서 스톱한다.
그러나 삐끗 발을 헛디뎠다.
맹장 조민수와의 마지막 대국에서 그녀는 다시 몸살을 앓았다.
바둑이야 질 수도 있지만 TV화면을 통해 복기를 하지 않는 모습이 방영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아야했다.
무수한 비난의 화살이 장마 비처럼 쏟아졌다.
스물 한 살의 그녀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통증이었다.

다시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 양천대일 바둑도장에 전화했더니 그 사건 이후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헉! 놀랐다.
가까스로 그녀와 통화가 이뤄졌는데 뜻밖에도 필자의 동네에 살고 있었다.
서로 걸어 나와 공원에서 만났다.

▲공원에서 만난 김신영.

“마음고생 많았지?”
“네, 그렇지만 이젠 괜찮아요. 이유를 떠나서 제 모습이 예의에 어긋나게 비춰졌으니 제 잘못이죠.”
그녀가 서글서글하게 웃는다.

그날 그녀는 몸살감기로 컨디션이 최악이었고 조민수 사범도 마찬가지였다.
의연하게 대국했지만 두 사람 모두 바이오리듬의 그래프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워낙 중요한 판이라 내색하지 못하고 혼신을 다했다.
그녀가 패배를 인정한 순간 조민수 사범이 말했다.
“잘 뒀다.”
그 어투에서 복기하지 말고 끝내자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일어났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맞아야했다.
입단 실패, 지지옥션 6연승, 구설수로 이어졌던 봄날은 롤러코스트처럼 그녀를 흔들어댔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는 신록처럼 푸르렀다.

▲신호등을 기다리던 도중 근처 꽃밭에서

S#2. 신호등을 기다리며

비가 내리는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좀처럼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누군들 기다림에 익숙할까?
김신영은 항상 입단 우선순위에 드는 유망주로 손꼽히면서도 결정 국에서 좌절하며 5년을 흘려보냈다.
전바협 사무국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바둑에 입문한 것이 1998년 토등학교 1학년 때였다.
6학년 때 여자연구생이 되어 여고생 때부터 입단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 후 스물 한 살인 지금까지 그녀는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파란불을 기다리는 김신영.

“왜 이렇게 파란 불이 안 켜지지?”
건널목에서 우리는 우두커니 오래도록 기다리기만 했다.
그때 그녀가 피식 웃는다.

“가만 보니까 이 신호등은 수동조작인가 본데요?”
그랬다. 보행자가 건너고 싶을 때 버튼을 눌러 신호를 바꾸게 되어 있었다.
거기서 문득 기다림을 생각한다.
때로는 사고와 성찰과 행동이 기다림을 종식할 수 있다는 것.
그녀가 안내문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둔한 필자는 한없이 건널목에 서 있었거나 아니면 무단횡단을 했으리라.

▲미용실 원장의 권유에 미용실 의자에 앉은 김신영. 그러나 이날 머리를 하지는 않았다.

동네에서 소문난 순대국으로 배를 채우고 골목길을 걷는데 누군가 우리를 부른다.
“형님, 어디 가세요?”
축구를 함께 했던 미용실 원장이 유리문을 열고 나온다.
평소에는 길을 지나쳐도 씩 미소만 날리던 친구가 튀어나온 이유는 김신영의 존재 때문이다.
그가 다짜고짜 신영을 미용실 안으로 초대한다.
“배우 맞죠? 키도 크고 피부도 곱고 스타성이 있는데요?”
그래서 어쩌자고?
“단발머리가 안 어울려요. 어딘가 웨이브 좀 주면 엄청 성숙해보일 텐데.”

신영의 뜻도 묻지 않고 녀석이 무슨 원석(原石)이라도 발견한 듯 요리조리 관찰한다.
그 쪽 직업을 가진 이들은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보면 뭔가 조각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머리를 해본 적 없어요.”
그녀가 정중하게 사양한다.
바둑의 길을 걷는 소녀들은 숙녀가 될 때까지 대부분 외모를 가꾸지 않는 듯싶다.
그도 기다림의 한 종류겠지.
뜻을 이룰 때까지 뭐든 꾹꾹 참는 것.
▲양천대일 옥득진, 이용수(오른쪽) 사범.

“신영이는 수읽기가 뛰어납니다. 실리에 민감한 스타일이지만 상대에 따라 자유롭게 대처하는 임기응변도 뛰어나구요. 무엇보다 승부욕이 강하죠. 그런데 내면은 의외로 부드러워요. 겉으로 강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편이죠. 바둑을 보면 그런 갈등이 선명하게 보여요. 그래서 중요한 고비마다 흔들렸던 것 같아요.”
양천대일 바둑도장에서 신영을 가르쳤던 이용수 사범의 말이다.
역시 바둑은 어렵다.
재능과 승부욕이 풍성해도 또 어딘가 빈틈이 있다니.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과 김신영의 기념촬영.

S#3. 지지옥션 시상식

7월 4일. 한국기원에서 거행된 지지옥션 시상식.
6연승으로 여성 팀 우승에 톡톡히 기여한 김신영이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연승상금 2백만 원이 적힌 판을 들고 그녀가 활짝 웃는다.
“어디에 쓰고 싶은데?”
“엄마 드려야죠. 저 바둑 가르치시느라 얼마를 쓰셨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화가이자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라고 했다.
바둑을 배운 비용부터 생각하는 그녀가 대견하다.

▲여류팀.

우승한 여성 팀 멤버들이 회식 후 뒤풀이로 노래방을 향했다.
가는 길에 이선아, 김희수 등 선배들에게 신영을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한 마디로 압축한다.
“시크하죠.”
노래방에서 신영의 선곡은 독특했다.
소녀시대와 손담비의 댄스곡을 과감하게 골랐다.
그리고 김여원과 마이크를 잡았다.
지지옥션의 히로인들이 펼치는 무대는 과연 어떨까?
충격이었다.
세상에, 손담비의 ‘미쳤어’를 성악가처럼 빳빳하게 선 채로 끝까지 완창하는 거였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서있는 그림.
표정은 더 없이 밝으나 무의식중에도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절제가 보인다.
저런 마음의 갑옷을 후련하게 던져버리는 날이 곧 오겠지.

TYGEM / 김종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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