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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女子, 바둑에 눈 뜨고 심취하다

신년특집- 여자바둑 1960~1999 정리

2012-01-22 오전 11:50:25 입력 / 2012-01-24 오후 12:07:12 수정


2011년은 한국 여성 바둑계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한 해로 기억된다. 연초에 정관장배에서 문도원이 중일을 상대로 7연승으로 한국 여성의 바둑 실력을 만천하에 고했다.

중반기에는 초단 열풍의 선두 주자 최정이 여류 명인전에서는 대 선배 기사인 박지은 조혜연을 연이어 물리치더니, 여류 기성전 준우승, 지지옥션배 8연승, 명인전 Olleh배 본선 진출 등 맹활약하여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국내기전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도 세계기전에만 나가면 승률 90%에 육박하는 한국 최초의 여성프로기사인 박지은도 질세라, 정관장배 우승에 방점을 찍고, 궁륭산 병성배 1-2회 연속 우승등 주로 세계기전에서 맹활약했다.

한국 바둑 역사상 아시안 게임에서 최초로 금메달 두 개를 목에건 바둑 얼짱 이슬아는 MBC의 서바이벌 오디션 댄싱위드더 스타에 참여하며 바둑 홍보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 어느 해보다도 여성 바둑계는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세계속의 한국 여성 바둑의 위상을 높인 한 해였다. 이런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 여성 바둑사 속에 숨어있는 수 많은 선배기사와 바둑인들의 노력이 오늘의 눈부신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2012년 임진년을 맞이하여 그간 한국 여성 바둑계를 짊어지고 왔던 분들의 몇몇 일면과, 여성바둑계의 변천사, 그리고 2012년 여자바둑계 전망까지 上, 下로 나누어 정리해봤다.
  


초창기의 여성 바둑 현대 바둑 초기,

일제 강점기 이 후 50년대 정도까지 여성들이 얼마나 바둑을 두었는지, 실제로 활동하는 여성 바둑인이 있는지, 구체적인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1956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서울에 바둑 열풍이 불었으며, 바둑을 즐기는 여성들이 꽤 있었음을 기사 자료로 첨부되어있는 삽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 기사에 「...요즘에 바둑열풍이 불어 서울에 기원이 무려 63개소가 넘고, 모두 대성황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는 유단 실력의 소년기사나 여자기사도 있다...」라는 언급이 있다.

아니 벌써 유단자급 여성 아마 기사가 있었다니..고개가 갸우뚱 해보지만, 신문기사로 남아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다. 아마도 바둑에 관심있고, 재능 있는 소녀들이 꽤 있었다는 뜻 아닐까. 다만 사회적인 여건상 바둑계에서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해본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 현대 바둑사에서 90년대 초반까지 계속 유지된다. 물론 여성 바둑이 발전을 하긴 하지만.


60년대에는 중고등학교 특별활동과 대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여성 바둑이 조금씩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한국 여성 바둑이 자극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일본 여류 기사들과의 교류전을 통해서였다. 일본 여류 바둑은 매우 발전했었으며, 여자 프로 선수들도 있었다.

한국은 1966년 수도여고 3학년이었던 윤희율이 한일 여류 친선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기원이 공인한 최초로 해외에 나가서 한국을 대표한 여성 아마 선수였다. 아마 3단자격으로 출전한 윤희율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여 일본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외에도 윤희율은 전일본 아마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하여 역시 우승했다.


그리고 한국 여성 바둑계의 기둥인 조영숙이 있다. 조영숙은 60년대에는 아마기사로서 각종 대회에서 활약하여 주목을 받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mbc 일요바둑에 출연하여 좋은 대국을 보여주어 여성 바둑 홍보에 큰 역할을 했다. 한일 여성 바둑 교류에도 큰 역할을 했으다. 무려 15년 동안 유일한 여성 프로기사로서 그 자리를 지켰고, 아마 여성 바둑 발전을 위해서 큰 공헌을 세웠다. 한국 여성 바둑의 대부이며 산증인이다.


출범하자마자 중단된 여성 프로 제도
1975년에 윤희율과 조영숙이 한국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국수전에도 참여했고,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 대표로서 국제 여류 친선 기전에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 당시에 한국 바둑계는 내홍을 겪게 된다. 한국기원과 대한기원으로 분리가 되면서 여성 프로기사 육성안이 실종이 되어버린 것. 무려 윤희율과 조영숙을 잇는, 후배 프로기사가 다시 탄생하기까지 15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왜 이 시기를 허송했는지, 지금도 참 의문이 많이 든다. 기사 자료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여성 영재 아마 기사들이 매년 나왔다. 서진주 서진순 김혜순 김영 등등의 수 많은 뛰어난 여성 아마 기사들이 더 높은 단계의 바둑 활동을 바랬으나, 제도가 잠자고 있었다.

그 중 서진주는 지금 현재는 은퇴한 프로기사 이동규의 부인. 중2때 서울에서 기원을 경영하던 고모부로부터 바둑을 배워 78년 여류 국수 우승등 70년대와 80년대 한국 여성 바둑계를 대표하는 아마 강자였다.

여하튼 한국 현대 여성 바둑은 조촐하나마 두 명의 여성 프로기사가 탄생한 후에 좀더 내실있는 발전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기원에서는 지역별로 어린이 바둑교실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 수강생들도 늘어났다.

이들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꾸준히 바둑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이는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여대생 바둑 동아리도 생겨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한양여전들의 여자대학 바둑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이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한국 여성 기우회. 1974년에 출범하자마자 무려 전국에서 1,000명 이상의 여성회원을 확보했다. 70년대 한국 여성 바둑은 여류 아마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여성 아마 기사들의 대회 성적은 매우 들쑥날쑥했다. 해외 친선 대국을 하면, 최강 일본 아마 기사를 상대로 훌륭한 성적을 거두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약체인 독일 아마 팀에게는 1승4패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당시 한국 바둑계가 여성 기사를 본격적으로 바둑 교육에 큰 투자를 할 수 없어서 였을 것이다. 물론 여성 프로 입단 대회가 중단된 것이 가장 큰 타격.



현대 여성 바둑의 중흥기

우후죽순 격으로 인재들이 나왔다. 상당기간 동안 소수의 여성 아마기사들끼리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갔던 여류 아마 기전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중 한 명이 자료에 소개된 김영. 프로기사 권경언 김수영의 훈련을 받은 아마기사로서 여성 프로 기사 입단을 내심 바랬다. 그러나 입단 대회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렸다. 아직도 여성 프로 입단 대회를 치르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으니….그동안 여성 바둑 인구는 대폭 증가해왔으나, 뛰어난 여성 기사들에게 프로의 문을 열지 않아서 수많은 영재들이 자의반 타의반 바둑계를 떠났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80년대는 그동안 여성 바둑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시기였다. 아마 여성 기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존의 아마여류국수전과 한국여성기우회장배 여류 바둑대회외에 롯데배 여류 최고위전, KBS배 여성부대회. 쌍용투자증권배 바둑여왕전등 5개의 아마 여성 기전이 생긴다. 상금도 꽤 높은 편이어서, 여성 아마 최상위권은 사실상 여성 프로기사라는 말이 돌았다. 이러한 추세는 1990년 여성 프로기사 입단제도를 다시 부활하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1980년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 바둑 홍보와 봉사 활동이 여성 바둑계의 큰 임무로 더욱 활성화되고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다. 지금도 병원 군부대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바둑을 보급하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1990년 여성 바둑의 새로운 출발 – 여성프로제도 부활

여성 바둑계에 인재들은 꾸준히 발굴이 되었다. 그 인재들이 프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가 여성바둑계의 강력한 바램으로 1990년 다시 새 출발을 한다. 중단된지 무려 15년만의 여성 프로 입단대회가 부활한 것.

15년 만에 부활한 여성 프로기사 제도는 여성 바둑 인재들의 활동 영역을 대폭 확대 시켰다. 윤영선, 이영신, 하호정, 남치형, 권효진, 김민희 등이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배출되어 한국 여성 바둑계를 풍요롭게 했다.

특히 이들은 입단 전부터 빛을 보였는데 1992년 세화여중 3학년 윤영선과 초등 6학년생인 하호정이 1992년 5월에 열린 제4기 쌍용증권배 바둑여왕전 결승에 나란히 올라 여자바둑계의 소녀돌풍을 돌게 했다.
 


소녀들의 입단 후 국내 바둑계는 윤영선의 독주시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추어시절부터 탁월한 기량을 보인 윤영선은 1993년 입단 후 1994년 1기 프로여류국수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포함 90년대 여류국수전에서 무려 다섯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또, 국내무대에서 윤영선보다 빛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던 이영신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95년 이영신은 지금은 없어진 세계여자바둑대회 보해배에서 중국의 펑윈과 우승컵을 놓고 대등한 접전을 펼친 것.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세계바둑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동시에 국내 여자기사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여기에 또 하나 여자바둑계의 큰 사건이 잇다면 1999년 여류최강으로 꼽히는 루이나이웨이가 남편 장주주와 함께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한편, 1990년대를 왕성한 활동을 펼친 여자기사들은 2000년대 후반 이후 바둑 보급 활동 분야로 진출했다. 특히 윤영선은 독일에서 터를 잡고 바둑보급에 힘쓰고 있고, 이영신은 루마니아 등 에서 한국 바둑 보급을 펼쳤었다.

2000~2010년을 정리한 下편은 23일 업로드 됩니다.
TYGEM / I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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