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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 대통령 joonki와의 대화

joonki, 1만승 돌파한 타이젬의 전설

2012-10-14 오후 2:53:34 입력 / 2012-10-25 오전 10:20:36 수정



손오공과 joonki-.

서능욱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손오공'은 프로생활 40년을 돌파한 그를 대변해주는 오프라인 이름이라면, joonki는 10년 동안 무려 16210번이나 불렸던 온라인 이름이다. 어쩌면 자신의 본명보다 더 많이 불렸을 이름 joonki가 영욕의 타이젬 1O년 세월 동안 10000만승을 채웠단다. '10000승이라…'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일인가. 그의 프로생활 40년, 타이젬 생활 10년을 기념하여 워러와 난상대담(爛上對談)을 가졌다.

●○…오프라인 1000승과 온라인 10000승 그리고…

-온라인 10000승과 오프라인 1000승 중 어느 쪽이 값진가?
장고 좀 해야겠다. 40년의 수고도 무시 못 할 일이지만 10년 동안 쌓아올린 10000승도 제2의 바둑인생이니 똑같이 값지다. 기록아란 측면에서 보면, 10000승을 기록한 최초의 9단이니까 조금 더 애착이 있을 수 있다.

-joonki가 아들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아니다. 10년 전 제 아내가 경영하는 회사의 과장 이름이다. 당시엔 내가 인터넷을 잘 다루지 못해서ID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 버렸다.

-joonki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발설한 적이 있는가?
공개적으로는 말한 적은 없다. 결국엔 기자들이 은근슬쩍 밝히기 시작하면서 알려진 것이다. 초창기에 모 대학 교수님이 ‘joonki라는 신출귀몰한 ID가 있다. 누구로 예상되느냐?’고 물어 와서 어쩔 수 없이 본인임을 밝힌 적은 있다.

▲ 타이젬을 즐기는 joonki.

-인터넷을 접한 계기는?
인터넷바둑 이전 15년 이상 천리안 지도사범을 하면서 통신바둑을 자연스레 접했다. 그리고 타이젬 초기엔 이사였다.알다시피 타이젬에서 여러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불러준다. 해설도 종종하고….

-가장 타이젬에서 많이 둔 상대가 누구일 것 같나?
「joonkimomo」일 것이다. 중국ID인데 누군지 잘 모른다. 나의 스타일을 흠모하다가 ID까지 유사하게 바꾼 것 같은데, 아마도 중국의 어린 연구생이거나 프로초년병 같다. 「번개소문」도 초창기엔 많이 두었다. 최근엔 중국기사들과 주로 대국하는데, 혹자들은 중국바둑이 이 정도로 성장한 것에는 joonki의 역할이 지대하다고들 하더라. (웃음)

-월간바둑에 까까머리 중학생의 입단 사진이 실린 지 벌써 40년이 흘렀다. 어릴 때 얘기 좀 해 달라.
바둑을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봤다. 3학년 때는 동네어른들과 바둑을 두면서 성장했고, 급기야 동네 부평기원에서 4급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 후 이일선(작고)사범님이 계시는 한국기원 인천지원에 진출했다. 인천 지역 강자들은 그곳에 모두 다 모였던 것 같다. 김덕규 사범님이 강1급으로 가장 강했고, 그분에게 5점을 놓고 졌다. 결국 6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사범이던 김수영(작고)사범님의 권유로 입단대회 나갔다. 용케도 본선리그에 덜컥 진출해 2승6패했다. 그러나 2,3번째 예선탈락. 당시 장수영 이동규 사범님이 강자였는데 다들 먼저 입단했다. 14세 때 입단했는데 굉장히 빠른 입단이었다. 어릴 때도 무척 빠른 손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1981년도 한일프로교류전이라고 이벤트 대국이다. 사카다에이오(작고)와 김수영 윤기현 사범님이 얘길 해서 한일간 정상대국이 일본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당시엔 조훈현 서봉수가 거함이었고 당연히 그 둘이 참가하기로 되었는데, 우연찮게도 조훈현이 불참하게 되어서 대타로 내가 나가게 되었다. 정선에 조치훈과 빅이 되었다. 솔직히 나는 그 당시 일본 최고봉에 오른 조치훈에게 두 점 놓고 두라고 해도 두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빅을 만든 것은 잘 싸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최정상에게 정선으로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기게 되었다.

-‘도전5강’이라는 이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80년대 이야기인데, 지금 생각하면 ‘도전5강’ 시절이 오히려 더 프로페셔널 했다. 조훈현 같은 당대의 고수에게 치수가 두 점이 되어도 좋고 석 점이 되어도 좋았다. 파이팅이 있었을 때였다. 지금으로 치면 이세돌을 두고서 랭킹 4,5위권에 놓인 기사들이 정선에 도전한다는 셈이었다. 당시 조·서는 정말 강했다. 끊임없이 도전해보는 자체가 즐거웠다.

▲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기고 싶은 조훈현(왼쪽)을 꺾고 대주배 우승을 거머쥐었던 2011년.

-조훈현과의 기억을 되새긴다면?
대주배 우승을 하고 난 후 말한 그대로다. 만약 상대가 조국수가 아니었다면 같은 우승이라도 의미가 남달랐다. 조훈현만 이길 수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다고 여겼던 때도 있을 정도였다. 여전히 조훈현은 이기고 싶은 상대다.

2009년 제1기 SKY바둑배 시니어연승대항전에서 joonki는 오규철 루이나이웨이 등을 이기고 6연승을 질주했다. 다음 조훈현만 넘으면 7연승에다 우승까지 차지하게 도는 것. 당시 워러는 현장에서 그 모습을 함께 기뻐할 요량으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유리하게 바둑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대시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318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스튜디오를 나오자마자 곧장 검토실의 바둑판을 끌어당기더니 씩씩거리면서 복기를 해보던 joonki. 자신의 머리를 모질게 쥐어박더니 탁자가 부서질 정도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물론 그 주변에 있던 워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둘러 쳐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불과 3년 전까지도 '조훈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도 힘이 떨어졌고 나는 힘이 떨어졌다. 그러나 수도 없이 깨졌던 그와의 만남에서 단 한번만 속 시원하게 KO승을 거두고 싶은 맘에 조급했던 것이 화근. 이제 점점 복수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의 패배는 진짜 쓰라렸던 모양이다.

1979년 조훈현을 첫 대면한 지 34년째 12승 55패를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1999년까지는 무진장 죽을 쑤었지만 2000년부터는 joonki가 2승1패로 앞서고 있다. 물론 판수가 적어서 유의미한 기록으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최근 10년 동안은 조훈현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다.

▲ 제2회 대주배 시니어최강자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joonki.

- 대주배를 따고 한 말을 기억하는가?
'아, 때린 사람을 모른다'는 얘기 말인가? 지금도 그 말에는 변함이 없다. 그때 시상식을 하는데, 중앙이 제 자리고 한발짝 비켜 선 자리가 조훈현의 자리였다. 바로 한 발 짝 중앙으로 당겨 서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이 마구 스쳤다. 단 한 번도 조훈현은 나에게 중앙을 양보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패자의 아픔은 패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 지금 조훈현과 10번기를 한다면?
지금은 내가 해볼 만하지 않을까. 조국수도 기력이 줄었고 나도 줄었지만, 내가 조금 더디게 줄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타이젬에서 싱싱한 젊은이들과 겨루고 있는 이 순간만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10번기를 하면 내가 이길 것이다.

- 지금 생각해보면 1인자가 못 되었던 이유는?
실력부족이다. 또 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 이창호와 속사포 대결에 관해서 말도 많았는데?
이창호가 스무 살 정도였으니 한참 이창호의 시대가 왔을 때였다. 이창호가 대뜸 기사실을 찾아와서 속기 연습도 할 겸 치수고치기 제의했다. 한판에 한 점 씩이니 얼마나 부침이 심했겠나. 그때 이창호는 나에게 석 점을 놓고도 졌다. (joonki도 두 점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고.) 지금도 생생한데, 석 점을 놓았을 때 날일자로 걸치면 날일자로 받고… 그 판을 이기니 이창호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버렸다. 서봉수 윤기현 이준학 정동식 고재희 천풍조 등 당시의 터줏대감들이 좀 말이 많았겠나. 그래서 더 이어가지 못하고 대신 이창호는 자리를 뜨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서사범님, 내일 시간되시죠?”.

-바둑도 속기고 직선적인데, 성격이 급해서 좋은 점은 있나?
어릴 적에 부친이 바둑을 장려한 것도 바둑 두면 성격이 차분해 진다고 해서 시작했다. 확신이 서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타입이라서 성미가 진짜 급하다. 팬들은 좋아하지만 프로로서는 좋은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성격을 사랑한다. 약속시간에 1초라도 늦으면 못 참는다. 상대의 장단점을 알고 나서는 주저하지 않고 상대를 압박해 들어가는 타입이다.

-‘괴초식’으로 정상에 설 수 있다고 보는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충분히 괴초식도 통한다. 그러나 정상에 가까워지면 깊은 수읽기가 되어야 한다. 실력이 세지면서 이기는 바둑을 추구해야 하는데 괴초식은 솔직히 철학이 없고 깊이가 없다. 요즘은 매뉴얼화 되어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괴초식을 들고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바둑이 뭔지 모른다. 가장 근접했던 이가 이창호였다고 본다.

-프로바둑에서 '10집 반승', '15집 반승' 이런 기록이 가능한 것인가?
(웃음) 대체적으로는 끝까지 계가를 하는 편이다. 반집 져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주관차이가 아닐까? 작년인가, 지지옥션배에서 ‘33집반패’를 당한 일도 있다. 당연히 돌을 거두어야 하지만, 자신이 납득인 가지 않는 패배일 때는 그를 삭이는 과정이기도 하고…

-정창현·김희중·정대상 중에 누가 최고의 속사포인가?
김희중 사범님과는 동양증권배 8강전에서 만났는데, 세계대회인데도 불구하고 30분 만에 끝난 적이 있다. 당시 서정각 이사장에게 많이 혼났다. 한번은 바둑TV에서 김희중 사범님과 초속기 한판 대결을 붙였는데, 고작 8분 만에 끝난 적도 있었다. 고 정창현 씨와는 원생 때 속기를 많이 두었다. 샤프한 스타일이고, 김희중은 감각이 뛰어나고 고수였다. 정대상 난전에서는 제일이지만 내공이 약하지 않나 싶다.

- 접바둑을 잘 접는 비법이 있나?
있다. 사실 책을 하나 낼 생각인데, '고수가 하수를 잘 접는 법'이다. 상수가 하수를 제대로 잡는 법에 관한한 비법도 있다. 아마 기회가 닿으면 공개할 것이다.

- 수입은 어느 정도 되나?
20, 30대 기전수입이 거의 다였다. 40대에서는 기전수입과 초청행사수입이 반반 정도였고, 50대 이후에는 초청행사 수입이 대부분이다. 타이젬에서도 좋은 분들이 자주 불러주신다.

▲ 인터리그 대국이 끝난 직후 타이젬 대국실을 둘러보는 joonki. "쪽지확인은 필수"라고.

- 다른 사이트에서 대국해 본 적이 있나?
타이젬만 둔다. 간혹 한국기원 기사실에서 다른 기사의 대타로는 둬봤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배반을 하기 전에는 내가 스스로 배반하지는 않는다.

- 댁에서는 전기 코드를 뽑아버린 일이 다반사라던데?
'뭐, 다반사는 아니고…' 스스로 감탄하고 스스로 분개하는 타입이다. 하루는 딸이 그렇게 괴로울 것을 뭣하러 두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다 이긴 바둑 역전패를 당한다든지 하면, 마우스 집어던진다든지, 코드를 그냥 뽑는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행동이 나온다. 일류기사들도 열 받으면 하는 짓은 똑 같다. (웃음)

- 염주 알이 터진 에피소드도 있는데?
1985년 무렵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왕전에서 1기부터 4기까지 준우승을 한 적이 있다. 염주알 파동은 3번째 도전기로 대구에서 두 번째 판을 둘 때 나왔다. 워낙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염주를 돌리다보면 차분해진다는 아내의 조언에 따라 염주를 가지고 대국에 임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염주알도 덩달아 급하게 돌아가다 그만 줄이 끊어져서 16개의 염주알이 반상에 떨어져 버렸다. 당시 조국수가 어이없어했던 표정과 얼굴이 벌겋게 변하면서 황당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생생하다. 염주는 10개 쯤 있다.

- 타이젬 바둑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고수가 많다는 것이다. 나처럼 나이 든 사범이 얼굴 맞대고 스파링하자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타이젬 바둑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의 고수들이 마구 몰려오니… 단점이라면 오래토록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한번 씩 공식시합을 하러 가면 상당히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일례로 바둑판을 세워서 두다가 눕혀서 두게 되니까…

- 4년 전인가, 10000승을 거두고 은퇴한다고 했었다. 지금도 유효한가?
당시엔 그날이 언제 오겠냐는 생각에서 한 말이다. 그 후로 정말 10000승을 거두고서 20000승을 향해 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1승을 향해 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금 생각으로는 더 이상 joonki로서 가는 길보다는 다른 ID로써 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8단으로 떨어졌다. joonki가 8단이면 이상하잖은가? (웃음) 그리고 동양증권배까지는 joonki로 참여할 것이다.


▲ 2012. 10 14 joonki의 대국정보.

- 8단 떨어졌을 때 어땠나?
'아, 몹시 쪽 팔렸다.' '이젠 타이젬 그만 둬야 하나?' 굉장히 고민했다. 내가 입신이 된 지 몇 년인데, 이깟 인터넷에서 8단으로 떨어지다니 초창기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떨어진 날 밤에 잠을 반납하고 9단으로 복귀시키고는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무 강자가 많아져서 오히려 8단 떨어지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

- 10000승 모두 양화점 포석인데 웬 고집인가?
오프시합에서는 소목을 주로 두었다. 온라인에서는 의도적으로 양화점을 한판도 빠짐없이 두었다. 일종의 실험정신이랄까. 양화점을 두면 판이 좁아진다. 패턴이 단순해진다. 그러나 화점이 공격형인 나의 기풍과 맞다.

- 타이젬 바둑을 두면서 어떤 기준? 예를 들면 누구랑 안 둔다든지 하는?
나는 먼저 두자는 얘기를 절대 안한다. 단, 9단이 신청해오면 언제든지 누구라도 둔다. 또 10분의 제한시간을 넘기면 안 둔다.

- joonki 대국의 관전자 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900명까지 관전 객들이 들어찬 적이 있었다. 요새는 뭐 20명이 올 때도 있다. 물론 프로로서 많은 관중이 관전해주면 즐거움은 있겠지만, ‘성적이 나쁘면 괄시하나’하고 생각할 뿐이다. 대체적으로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다.

- 유저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joonki바둑은 배팅하기 힘들어!''joonki 때문에 머니 잃었다'는 말이다. 머니를 땄을 때는 고맙다는 인사는 한번 안하면서 잃을 때는 잃었다고 푸념들이 많다. 뭐, 심각한 것은 아니고.

- 가장 많이 둘 때는 몇 판이나 두었나?
스스로 신청하는 적이 없으니 일단 수동적이다. 하루에 42판을 둔 적이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하루 60판 정도를 둔 적이 있다.

- 돈도 안 생기는 데 왜 이토록 활동하나?
(웃음) 돈도 생긴다. 월급은 주지 않지만, 타이젬 동호회분들이라든지 개인적으로도 지도사범 초청 건이 종종 들어온다. 활동을 안 한다면 이러한 제의도 올 일이 만무하다.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프로로서 재산이다.

- 그리고 보니 바둑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사범님인데?
값이 좀 싸죠. (웃음) 한번은 조국수랑 큰 행사에 초대받았는데 조국수는 300만원을 책정해두고 나는 50만원이었다. ‘아, 내가 조국수와 그 정도까지 차이가 나는가’하고 서글펐다. 사실 초청비는 사전에 숙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알아서 주겠지’ 하며 가는 편이다. 가정 적게 받은 기억은 모 야쿠르트회사였는데 하루에 10만원 받고 행사에 참석한 적도 있다. 지금도 10만원을 준다 해도 난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프로가 아닌가 한다.

- 타이젬을 만끽하는 방법은?
바둑을 즐거움은 다양하다. 최근 들어서 배팅대국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이 지고 있다. 베팅에 연연하면 욕을 하게 되고 매너가 없게 된다. 좋아하는 고수들을 몇 명 지정해서 응원하면서 즐기는 방식이 좋다. 포석 정석을 꼭 따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 주로 가는 음방은?
사실 음방이 없다면 타이젬에 이토록 진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싶다. 발라드를 좋아한다. 어쩌다 기분이 다운되면 클레식도 자주 듣는다. 지영, 작은등불, 음악사랑, 낚시도사, 영혼의소리 방을 자주 들어간다. 일단 음악을 들고서 바둑도 둘 수가 있어서 좋다.

▲ joonki는 10000승 이후 제2의 타이젬 인생을 출발하려고 한답니다. joonki가 애증이 많이 깃든 ID지만 새로운 10000승에 도전할 새로운 ID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팬 여러분께서 지어주시는 ID도 쓰고 싶다고 합니다. 이에 ‘포스트 joonki’ ID를 추천해주세요. 그 외 joonki에게 하고 싶은 질문과 응원 문구를 달아주시면, 추후 별도의 공간으로 기사화하겠습니다.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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