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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에 시작한 김지석의 頂上 등정기

GS칼텍스배에서 우승한 김지석 와이드인터뷰

2013-04-26 오후 1:48:24 입력 / 2013-05-03 오후 5:53:54 수정

입단 11년차. 우리나이 25살의 유부남. 늘 10위권 이내 머물렀다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김지석. 그는 지난 주 GS칼텍스배 결승에서 이세돌을 3-0으로 이겼다. 타이틀을 하나 추가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슬 퍼런 일인자에게 난공불락의 절대자에게 난타전 육박전 공중전으로 완벽하게 제압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세돌은 여태 스무 세 차례 치렀던 5번승부에서 처음으로 완봉패를 당했다고 한다.

십 수 년 째 알고 지낸 사이지만 마주 앉으니 새삼 묘한 생각이 피어난다. 조각 같은 외모에 아담한 사이즈에 목청 볼륨마저 유약하지만, 어디서 그러한 괴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주말 왕십리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GS김을 만났다.

▲ 인터뷰하는 김지석

GS칼텍스배 결승 예고기사 '무서운 者와 센 者' 읽어봤어요?
네. 봤어요. ㅋ 타이젬 기사 다 봐요.

타이젬에서 'GS김'이라고 부르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있던데?
좋아요.

원래 좀 내성적인가요?
(더욱 모기만한 소리로) 네. 

(카페 주인장에게 음악소리를 좀 낮춰달라고 한 뒤) 우승상금이 7000만원인데, 지금까지 받은 최고 많은 상금일 것 같은데요?
농심배에서도 큰 상금을 받긴 했는데, 이번 게 제일 클 것 같네요.

▲ GS배 결승 3국 장면. 김지석은 이세돌을 3-0으로 완파했다.

우승 후 며칠 지났는데, 달라진 거 있나요?
9단 된 거 말고는 별로 없어요. 

자, 슬슬 시작해 볼까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의도를 미리 알아차린 듯 5초 정도 말을 잇지 않다가) 바뀌었어요. 이번 주에 둔 GS배 3국입니다.

타이젬 김종서 작가가 2009년 김지석을 인터뷰할 때는 2009년 LG배 32강전 중국 스웨와 난투극을 벌인 끝에 역전패했던 바둑을 꼽았다. 분해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25살이다. '한국바둑의 미래'라는 말에 대해?
좀 쑥스럽고 아닌 것 같아요.

달라졌다는 얘기가 많던데… 3국도 중반에 실수해서 뒤집어졌잖아요. 곧장 추스리며 좌변에 뛰어들 때 조금 질겨졌다고 할까, 호흡이 길어진 느낌이 들던데….
그런 게 있어요. 예전에는 좀 조급했어요. 조금 승부를 짧게 봤어요. 그래서 급하게 서두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이겨도 '다 이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봐야죠. 예전엔 조금 유리하면 그냥 끝내버리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팬들이 대기만성이란 말을 많이 하더라구요.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있는 선수에게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또 이세돌 구리 등 소위 일인자급을 만나면 어떨 것 같나요?
달라요. 전에는 그런 선수들과 두면, 막연히 엄청 잘 두고, 뭐든지 잘 알 것 같고, 모르는 게 없을 것 같고, 저 사람이 실수를 해도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있었어요. 근데 이제 누구든 크게 신경 안 쓰고 내 바둑을 구사할 수 있어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지석은 구리 최철한 이세돌 등 일인자급과의 상대전적에서 극단적으로 불리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따라잡았다. '능수버들' 조한승에게는 4패를 기록했다가 11년 이후 4연승, 이세돌에게도 3승12패였다가 작년 말부터 4연승, 중국 구리에게도 4연패 후 작년부터 3연승 등 최근 급성장이 눈부시다. 아직 최철한 박정환에게는 많이 밀리고 있으나 가장 최근 경기에서는 일단 승리하고 있다.

▲ 결승2국. 김지석은 이세돌과 난타전을 벌인 끝에 1집반승을 거뒀다.

계가는 안 늘었을까요? 요즘 보니까 반집승씩(?)도 있던데…
아, 그것은 진짜 오해입니다. 원래는 더 이겨야 하는데 추격당해서 반집을 이긴 거예요.

GS 8강전 최철한에게서 반집승, 4강전 조한승에게서 1집반승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김지석의 겸손과는 달리 주변에서 "과거에는 힘만 강하고 계산력이 약점이었는데 그 부분도 보완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등은 동문 선후배인데, 가위눌림 같은 것 없나요?
이세돌 최철한 선배는 제가 도장에 가기 전 이미 입단해서 크게 그런 맘은 없어요. 입단 초창기에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저 선배들은 나보다 훨씬 수가 깊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조금 냉정하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박)정환이가 입단할 때도 저는 별 볼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웃음)

반추하기엔 젊은 나이지만 그래도 지내오면서 아픔이랄까, 그런 게 있나요?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고생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서울 와서 좀 적응을 못했던 거요. 그때가 제일…. 그리고 정환이한테 처음 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정환이에겐 아직….

박정환과 사활을 대결하면?
자신… 은 모르겠어요. 근데 실수가 잦아서요.

박정환과의 전적이 3승9패. 2008~2011년 사이 무려 7연패를 당했다. 자연스레 2009년 김지석이 첫 타이틀을 딴 이후 생각같이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 중 상당부분이다. 곧장 바둑계의 인식은 '포스트이세돌'은 박정환이 되어버린다.

집안 얘기 좀 할까요. 지금 이 시각 부모님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전남대에 아직 재직 중이시고 어머니는 경기도 분당에서 약국하세요. 아직도 주말부부인 게 맘이 아프죠. 사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부모님이 저한테 많이 미안해하세요. 그런데 저는 제가 오히려 죄송스럽고 잘해드리지도 못했는데…. 결혼 한 후로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필자가 추측 컨데, 부모님이 미안해하는 것은 어린 시절 광주에서 서울도장을 왕복ㅎ며 공부시킬 때 어린 아들이 안쓰러웠다는 뜻이 아닐까? 김지석은 그러한 부모님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뜻일 게고.

그런 부모님 모시고 축하연 한번 해야죠?
결혼도 했는데 부모님까지 할 필요가…. 하하. 좀 쑥스럽기도 하고.

김사범 결혼을 선언하면서 했던 그 멘트 기억합니까?
결혼하기에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했던 말? 사실 그때 불쑥 나온 말인데….

3세 연상 부인(박민정)을 어떻게 부르나요?
둘이 있을 '민정아!'하고 부르는데, 처갓집에 가서는 어른신들 계신데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모르겠어요. 어려운 사활이라서….

수입은 누가 관리하나요?
아내가 합니다.

(이번엔 필자가 모기만한 소리로) 비자금은 어떻게?
아직 총각 때 있던 게 남아서….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물어볼게요.

요즘 다시 유도한다는데, 유도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4년 전부터 했어요. 그런 운동도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복싱은 맞으면 기분 나쁠 것 같고, 태권도는 너무 애들만 있을 것 같고…. 유도는 생각보다 의젓하잖아요.

다시 무거운 바둑 얘기. 그간 문턱에 걸려서 넘지 못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는데 뭐가 달라진 걸까요?
예전보다 그냥 이기거나 졌을 때 덤덤해졌다고 할까. 예전에는 지는 거나 이기는 거에 무척 민감했는데, 지금은 좀 무뎌졌어요. 조금씩 무뎌져왔어요. 점점. 그런데 결혼도 인생에서 보면 엄청 큰일이잖아요? 막상 하고 보니, 까짓 것 한판 이기고 지는 게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죠.

▲ 인터뷰가 무르익자, 김지석은 많은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결혼은 현실인데 더 이기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물론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있죠. 그런데 음…. 모르겠어요. 하하.

'이세돌 인터뷰' 봤어요? 이름 하여 '이세돌의 예언'. 왜 그런 얘기 했다고 생각해요?
네. 좀 쑥스럽긴 해요. 그런데 결과가 그렇게 됐긴 했지만, 아직은….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고맙지만 저 자신은 사실 아직 불안해요.‘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이 들어요. 막연히 운이 좋았던 거 아닐까. 지금도 자리를 못 잡고 있는데 이러다가 별 볼일 없이…. 근데 그걸 보고 많이 힘이 되었어요. 그래도 아직은 지금까지 보여준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훨씬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석은 아직까지는 힘을 앞세워 윽박질러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좀 더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게 되면 크게 될 바둑이다. 세기(細技)를 더 가다듬고 어깨에 힘을 빼면 곧 세계정상에 오를 수 있다." - 가장 기대하는 후배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이세돌의 대답.

싸움도 잘하고 창의력도 있고 뭔가 김지석은 화를 다독거리면 잘하게 될 거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어느 정도는 맞아요.

이세돌의 예언을 적중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그런 것 보다는 예전에는 상대가 일인자라는 것에 이기면 지금보다 인정받고 큰다고 생각했어요. 두기 전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두면서도 느낀 게 (이)세돌 형도 승부를 한다기보다는 같이 연습바둑 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중국선수 많이 이기고 싶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바둑계 전체를 봤을 때 지금은 한국기사들이 많이 분발해야할 시기라고 봐요. 더 발전해야 해요. 국내기사는 동료 같은 느낌이고 중국기사를 만나면 전의가 끓어오릅니다.

25살에 일인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들 어렸을 때부터 성적을 내서 그렇지,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작도 안했을 나이잖아요. 전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타이젬엔 요즘 좀 뜸하지요?
시합이 많아서 대국은 많이 못하지만 그래도 맨 날 들어가서 구경은 해요. 근데 가끔 그런 분들 계시잖아요. 바둑 두다 지면 '장난 치냐?' 호통 치는 그분들 겁나서….(일동 웃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 추적추적 비가 내려서 우산이 필요했다. 2시간여의 만남이 끝을 맺을 때는 지난 24년에서 25년째로 바뀌는 순간인 듯 환하게 햇살이 눈부셨다.‘스물다섯 살에 일인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TYGEM / 진재호 강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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