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위 수여식 후 '다사왕비' 열렬독자가 보내준 화환 옆에서 기념촬영.
논문에서 새롭게 밝혀진 것은?명지대 대학원 바둑학박사 과정에 들어온 후 오로지 바둑고전 '현현기경' 연구에 몰두했다. '현현기경의 특성 및 가치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된다.
첫째, 중국 원나라 말기(1349년) 안천장(晏天章)과 엄덕보(嚴德甫)에 의해 출간되어 과거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바둑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바둑고전 현현기경은 단순한 사활문제집이 아니다. 현현기경에는 유가(儒家)에서 학생들이 익혀야 할 6가지 기본 과목인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라는 육예(六藝)의 명칭을 딴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바둑 종합전서이며,그 속에는 사활문제 뿐만 아니라 바둑의 역사 문화 철학 관전기 그리고 고대에 유행했었던 정석과 포석 대국보 등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둘째, 현현기경은 16세기 일본에서 수입, 번역 출간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1753년 카와키 타나루에이(河北鳴平)가 원본 현현기경과는 다르게 목차를 새로 배열하고 바둑 십계명(十誡命)으로 유명한 위기십결(圍棋十訣)을 첨부시키고 각 사활문제마다 붙어있는 제목들에 대한 해설을 가하는 등 대중적 구미에 맞도록 편집하여 '현현기경리언초(玄玄棋經俚諺鈔)'라는 제명으로 출간을 하였는데 이것은 곧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것을 모태로 하여 오청원과 하시모토우타로 등의 일본식 현현기경이 나오게 되었는데, 한국과 대만에서는 이러한 일본식 현현기경을 그대로 받아들여 번역 출간함으로서 많은 바둑인들이 이를 근거로 제시하며 현현기경에 관한 글을 쓰게 되는 우를 범하게 만들었다. 국내에 발간된 여러 종류의 현현기경 가운데 중국어판을 번역한 홍경령의 현현기경이 원본 현현기경과 가장 가깝다.
셋째, 현현기경의 편저자는 안천장과 엄덕보로 알려져 있지만, 현현기경 문자부(예권)를 자세히 분석해 본 결과 서문을 쓴 우집(虞集)과 구양현(歐陽玄)이 현현기경의 제작 발간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이 있다. 서문(序文) 저자들의 글 내용만으로는 우집과 구양현, 안천장 등이 서로 일면식조차도 없는 관계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사료에 의하면 우집과 구양현은 황제의 명에 따라 조정에서 경세대전을 집필하고 있었던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였으며, 특히 우집의 서문에 나오는 안천장 의 조상 안수(晏殊- 북송 시대 명재상)는 구양현의 조상 구양수(歐陽修)의 스승이자 그를 관직에 등용해준 은인이었다. 당시 황제의 명을 받아 송나라 역사(宋史) 편찬을 주관하고 있었던 구양현이 자기 조상에 관련된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으며, 현현기경 속의 사활문제 명칭 중 하나인 수락석출세(水落石出勢)는 구양현의 조상 구양수가 서문 속에 자주 언급되는 지명(地 名)인 여릉(廬陵)의 태수 재임시 지었던 작품 취옹정기(醉翁亭記) 중에서 따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은퇴한 고위 관리 우집은 1347년에 현현기경 서문을 써주고 그 다음해인 1348년에 사망하였는데 우집의 후임자인 구양현은 1349년에 현현기경의 서문 을 써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양현은 현현기경 출간(1349년) 이후에도 십 년 가까이 황제를 모시는 고위 관리로 재직하고 있었기에 자기가 서문을 써주었던 현현기경의 판매 상황이나 인기 등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 었다는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현현기경의 원래 제목은 노자의 '도덕경' 1장에 나오는 일부 구절인 '현지우현(玄之又玄)'에서 '현현(玄玄)'을 따가지고 '현현집(玄玄集)'이라 지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제목은 구양현의 이름자 현(玄)과 우집의 이름자 집(集)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 결과 현현집(현현기경)의 제작은 구양현이 책임 집필 제작하였 던 송사(宋史)의 제작이 완전히 끝난 후에 시작되었다.
넷째, 후대에 발간된 고기서 적정록, 기경중묘, 관자보 등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현현기경의 사활문제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후세 바둑인들이 이를 진롱(珍瓏)이라 불러주고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사실들이나 고사(故事), 유명 인물 등을 빗대어서 작명된 것이다(註1). 300 여개의 진롱(사활문제) 출전과 어원 등을 시대별로 추적해 본 결과 북송 말기이후의 역사적 사실들과 연관되어진 진롱 제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진롱은 북송 시대 이후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註1: 현현기경에는 중국의 고사와 유명한 역사적 스토리가 들어간 내용들도 있다. 반고, 마융, 피일휴, 유종원 등 당시대 유명 문인들의 작품이 들어있는가 하면, 사활문제마다 제각각 독특한 명칭이 붙어있는 진롱 제목 속에는 한고조 유방, 항우, 한신, 조조, 제갈량, 백거이, 왕희지, 이태백, 구양수, 등 수많은 영웅호걸과 문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원나라 이전 시대별로 따져 보더라도 바둑과 관련되지 않은 시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 따라서 현현기경공부는 중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첩경이며, 바둑문화 발달은 곧 문화 발달이라는 등식 관계가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