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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이룬 바둑학 박사의 꿈

1호 바둑학 박사 이상훈 씨 인터뷰

2013-10-12 오후 10:38:57 입력 / 2013-10-13 오후 7:23:10 수정

▲ 바둑학 박사 1호에 오른 이상훈 박사.

기자가 처음 그를 대면했던 것은 월간바둑 기자였던 90년 즈음이었다. 첫 인상은 수더분했으며 굉장히 바지런하고 열정적이었다. 당시 출판사를 경영하며 '내사랑 짱구' 등 학생명랑소설을 수차례 발표했고, '바둑산수' '포석암기법' 등 장르를 초월한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아마 80~90년대 월간바둑을 소지하고 계시다면, 본문 사이사이 그의 바둑저서 광고를 깨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고려대 방사선과, 한양대 연극영화과,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명지대 바둑학과를 거푸 졸업한 '괴팍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출판사만 했던 게 아니었다. 1979년 MBC 단막 수사드라마 당선되면서 방송작가로 나서기도 했고, 난데없는 '바둑재연기'를 발명하기도 했다(특허번호: 제10-1141217호). 사람들은 그에게 만학도(晩學徒)라고 했지만 사실은 다학도(多學徒)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모든 이력의 결정판이라고 할까. 2010년 명지대 대학원에 처음 개설된 바둑학 박사과정 1기로 들어가 3년 6개월 만에 학위 논문명 '현현기경의 특성 및 가치에 대한 연구'(지도교수 정수현)의 심사가 통과되어 1호 바둑학 박사가 된다. 주인공은 타이젬에서 소설 '다사왕비'를 연재하고 있는 '리징' 이상훈(60) 박사다.

그가 기거하는 청주로 도착한 후 기자는 깜짝 놀랐다. 리징 이상훈은 바둑서지학자이자 바둑사학자인 이승우(84) 선생이 5촌 당숙이란다. "저희 아저씨(이승우 선생)의 도움이 없었으면 학위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이승우 선생님은 일본 중국 통이 어서 논문 제작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절반은, 아니 거의 다 아저씨의 공입니다."

▲ 기자와 이상훈 박사, 이박사의 당숙인 바둑사학자 이승우 선생.

바둑학 박사 1호인데, 먼저 소회와 의미에 대해 한 말씀?.
"원래 바둑박사(棋博士)라는 명칭은 중국 당나라 때 처음 등장한다. 당시 기박사들은 궁중사람들에게 바둑을 지도하였는데, 황제를 모시고 바둑을 두던 기대조(棋待詔)보다는 직급이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세계 최초로 개설된 명지대 바둑학 박사과정 1기로 들어와 3년 반 만에 바둑학 박사 1호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하다."

논문을 쓰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을 텐데..
학위 논문을 쓰면서 절실히 깨달았지만, 박사 논문이란 결코 자기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도교수의 헌신적인 도움이 절대 필요하고 주위 사람들의 이해와 협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나는 대단한 행운아라고 생각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아저씨께 감사드린다.

박사1호는 가족들의 격려가 필수라고 본다. 가족 자랑을 한다면?
먼저 아내와의 인연을 좀 얘기해야 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오면서 전주에서 서울 이대부속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 때 이창호의 담임선생님이 지금의 아내다. 아내는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나를 대단하다며 늘 칭찬하고 응원해주었다. 아이들도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해주기도 하고 타이프를 대신 쳐주기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만학도가 아니라 다학도가 맞겠다. 그동안 어떤 학문들을 전공했는지?
처음엔 집안의 권유로 의사가 되고자 의대 시험을 봤었으나 매번 떨어졌고 대신 방사선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1979년 MBC에 서 수사드라마 분야 극본 공모에 응모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아예 진로를 바꿔 연극영화과로 편입학했다. MBC KBS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 수사드라마 등을 집필하였는데, 그때 한양대에서 정수현 프로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내사랑짱구''코끼리함대' 등 학생명랑소설들이 크게 히트를 치게 되어 제법 많은 돈도 벌었다. 그때 출판에 매력을 느껴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잡지학과에 입학을 하고 출판사업도 시작했다. 그러다가 명지대 대학원에 바둑학 박사과정이 처음 생겼고, 주위의 권유로 바둑학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떻게 바둑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공군 위생병으로 복무할 때 바둑 잘 두는 환자들과 어울려 바둑을 자주 두다보니 웬만큼 둔다는 소문이 나게 되었다. 제대 후 복학했을 때 정수현에게 9점을 깔고 만방패를 당하면서 '헛된 꿈'은 깨지고 말았다. 강한 고수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정교수와의 인연이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계기다.

▲ 오촌 당숙 이승우 선생은 자신이 연구한 내용과 경험을 이상훈 박사에게 수시로 전수해주고 있다.

바둑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는?
이승우 선생께서 나의 당숙이다. 당숙과 주변 분들의 권유로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특히 아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바둑에 관심을 갖다보니 바둑 속에는 게임 이외에 연구할만한 가치가 무한정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당숙께서는 수십 년간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 바둑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오셨기에 너무 손쉽게 자료를 열람 할 수 있었다.

박사논문으로 '현현기경'을 택하게 된 이유는?
우연히 중국판 현현기경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현현기경과 사뭇 다른 것에 놀랐다. 그 뒤 일본판과 대만판 현현기경을 구해보니 역시 중국판 현현기경과는 체제와 목차 부분부터 완연히 달랐다 저자가 똑 같고 책 제목이 같음에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 다음 질문 '논문에서 새롭게 밝혀진 것은?' 답변이 길어서 맨 아래 첨부.

오래전 이야기며 근거할 것도 부족했기 때문에 논문 집필에 방해되는 일도 있었을 것 같다.
바둑 분야에서도 진위를 구별해 내기 힘든 국내외 위서(僞書)들이 많이 있었다. 논문 집필 동안 참고 문헌들 가운데 위서를 골라내거나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고 기준을 새로이 마련하는 데에 적잖은 시간이 허비되었다. 한국기원이나 일본기원에서 발행한 잡지나 책자들의 내용, 심지어 명지대 바둑학과의 기본 교재 가운데에도 바둑 관련 역사적 오류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 었다.

▲ '리징이상훈'은 박사 학위를 꺼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바둑학을 전공하며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둑학의 분야는?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 중국 일본의 바둑 역사 정립이다. 검증을 받거나 학술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인지 과거 현재를 막론하고 오류를 범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심지어 인명이나 년도, 시대 구분 등이 잘못 되어있다. 다른 분야를 나아가기 이전에 일단 큰 틀의 역사 정립이 우선인 것 같다.

앞으로 박사 이상훈의 목표는?
이미 바둑판과 바둑돌을 이용하여 이진법 수열 방정식 미분 적분 도형 등을 배울 수 있도록 연구한 적이 있다. 바둑과 연계된 학문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바둑 교육 방법을 개선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보다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조만간 대학에서 강의도 맡을 것이고….

ID명 '리징이상훈'으로 타이젬에서 '다사왕비'를 연재하고 있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는지?
먼저 '리징이상훈'이란 1970년 개봉된 영화 '스잔나'의 주인공 리칭을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다. 프로 이상훈과 구별하기 위하여 호(號)처럼 '리징'을 붙여서 필명으로 사용한다. 경남 하동에 가면 '다사촌'이라고 있다. 과거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름을 따서 소설 '다사왕비'가 나온 것이다. 소설 게재 시기가 박사 학위 논문 집필 시기와 맞물려서 글 올리기가 참 힘들었다. 열성 독 자 분들 덕분에 원래 예정했던 횟수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다. 결말은 물론 해피엔딩이다. 마지막엔 이제까지 감춰져있었던 복선 들이 한꺼번에 모두 풀어진다. 기대하셔도 좋다.

박사님이 보는 타이젬 유저들이 특징이라면?
이제 타이젬의 급수와 단수가 어느 정도 국제적인 기준과 표준이 된 듯한 느낌이다. 어느 바둑 장소에 가더라도 '타이젬에서 어떻게 두느냐'를 묻거나 듣게 된다. 아마도 타이젬 유저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난 타이젬 6단이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이지만 무엇보다 회원간 소통이 잘 되는 편인 것 같다.

▲ 학위 수여식 후 '다사왕비' 열렬독자가 보내준 화환 옆에서 기념촬영.

논문에서 새롭게 밝혀진 것은?
명지대 대학원 바둑학박사 과정에 들어온 후 오로지 바둑고전 '현현기경' 연구에 몰두했다. '현현기경의 특성 및 가치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된다.

첫째, 중국 원나라 말기(1349년) 안천장(晏天章)과 엄덕보(嚴德甫)에 의해 출간되어 과거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바둑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바둑고전 현현기경은 단순한 사활문제집이 아니다. 현현기경에는 유가(儒家)에서 학생들이 익혀야 할 6가지 기본 과목인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라는 육예(六藝)의 명칭을 딴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바둑 종합전서이며,그 속에는 사활문제 뿐만 아니라 바둑의 역사 문화 철학 관전기 그리고 고대에 유행했었던 정석과 포석 대국보 등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둘째, 현현기경은 16세기 일본에서 수입, 번역 출간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1753년 카와키 타나루에이(河北鳴平)가 원본 현현기경과는 다르게 목차를 새로 배열하고 바둑 십계명(十誡命)으로 유명한 위기십결(圍棋十訣)을 첨부시키고 각 사활문제마다 붙어있는 제목들에 대한 해설을 가하는 등 대중적 구미에 맞도록 편집하여 '현현기경리언초(玄玄棋經俚諺鈔)'라는 제명으로 출간을 하였는데 이것은 곧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것을 모태로 하여 오청원과 하시모토우타로 등의 일본식 현현기경이 나오게 되었는데, 한국과 대만에서는 이러한 일본식 현현기경을 그대로 받아들여 번역 출간함으로서 많은 바둑인들이 이를 근거로 제시하며 현현기경에 관한 글을 쓰게 되는 우를 범하게 만들었다. 국내에 발간된 여러 종류의 현현기경 가운데 중국어판을 번역한 홍경령의 현현기경이 원본 현현기경과 가장 가깝다.

셋째, 현현기경의 편저자는 안천장과 엄덕보로 알려져 있지만, 현현기경 문자부(예권)를 자세히 분석해 본 결과 서문을 쓴 우집(虞集)과 구양현(歐陽玄)이 현현기경의 제작 발간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이 있다. 서문(序文) 저자들의 글 내용만으로는 우집과 구양현, 안천장 등이 서로 일면식조차도 없는 관계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사료에 의하면 우집과 구양현은 황제의 명에 따라 조정에서 경세대전을 집필하고 있었던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였으며, 특히 우집의 서문에 나오는 안천장 의 조상 안수(晏殊- 북송 시대 명재상)는 구양현의 조상 구양수(歐陽修)의 스승이자 그를 관직에 등용해준 은인이었다. 당시 황제의 명을 받아 송나라 역사(宋史) 편찬을 주관하고 있었던 구양현이 자기 조상에 관련된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으며, 현현기경 속의 사활문제 명칭 중 하나인 수락석출세(水落石出勢)는 구양현의 조상 구양수가 서문 속에 자주 언급되는 지명(地 名)인 여릉(廬陵)의 태수 재임시 지었던 작품 취옹정기(醉翁亭記) 중에서 따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은퇴한 고위 관리 우집은 1347년에 현현기경 서문을 써주고 그 다음해인 1348년에 사망하였는데 우집의 후임자인 구양현은 1349년에 현현기경의 서문 을 써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양현은 현현기경 출간(1349년) 이후에도 십 년 가까이 황제를 모시는 고위 관리로 재직하고 있었기에 자기가 서문을 써주었던 현현기경의 판매 상황이나 인기 등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 었다는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현현기경의 원래 제목은 노자의 '도덕경' 1장에 나오는 일부 구절인 '현지우현(玄之又玄)'에서 '현현(玄玄)'을 따가지고 '현현집(玄玄集)'이라 지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제목은 구양현의 이름자 현(玄)과 우집의 이름자 집(集)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 결과 현현집(현현기경)의 제작은 구양현이 책임 집필 제작하였 던 송사(宋史)의 제작이 완전히 끝난 후에 시작되었다.

넷째, 후대에 발간된 고기서 적정록, 기경중묘, 관자보 등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현현기경의 사활문제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후세 바둑인들이 이를 진롱(珍瓏)이라 불러주고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사실들이나 고사(故事), 유명 인물 등을 빗대어서 작명된 것이다(註1). 300 여개의 진롱(사활문제) 출전과 어원 등을 시대별로 추적해 본 결과 북송 말기이후의 역사적 사실들과 연관되어진 진롱 제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진롱은 북송 시대 이후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註1: 현현기경에는 중국의 고사와 유명한 역사적 스토리가 들어간 내용들도 있다. 반고, 마융, 피일휴, 유종원 등 당시대 유명 문인들의 작품이 들어있는가 하면, 사활문제마다 제각각 독특한 명칭이 붙어있는 진롱 제목 속에는 한고조 유방, 항우, 한신, 조조, 제갈량, 백거이, 왕희지, 이태백, 구양수, 등 수많은 영웅호걸과 문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원나라 이전 시대별로 따져 보더라도 바둑과 관련되지 않은 시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 따라서 현현기경공부는 중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첩경이며, 바둑문화 발달은 곧 문화 발달이라는 등식 관계가 성립된다.
TYGEM / 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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