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장석주는 위기십결에 녹아있는 지혜를 고전의 형식으로 해석했다.
적어도 바둑을 접하고 배우고 즐기는 이들에겐 바둑은 소우주다. 이들에게서는 일정기간 동안 바둑을 접어둔 경험은 있어도 인생의 중도에서 바둑을 끊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한번 바둑의 길에 접어들면 그 기기묘묘함에 흠뻑 취해서 퇴로마저 잊곤 하기 때문이다. 바둑이 인간의 반려자로서 4000년 동안 인간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의 이기(利器) 이전에 인간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서점에서 '인생의 한 수를 두다'를 만났다. 남이 먼저 채 가지도 않는데 파리채를 휘두를 때보다 재빨리 손이 갔다. 오랜만에 출간되는 '바둑책'이다. 바둑고전 위기십결(圍棋十訣)을 우리의 일상과 접맥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수필이라기엔 조금 무겁고 철학책이라기엔 조금 가벼운 책이었다.
바둑인문학서 '인생의 한 수를 두다'(한빛비즈刊)를 쓴 저자 정석주 시인을 합정동 카페에서 만났다. 나이 60에 청바지가 그리 잘 어울렸고 둥근 안경테와 중절모를 패션아이템으로 선택한 그의 첫 인상은 자유인이었다.
그는 1979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시와 문학평론을 함께 써 오고 있으며,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 출간한 '마흔의 서재'가 12쇄에 들어갈 만큼 서점가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기 작가였다.
또한 1992년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즐거운사라'(마광수 작)와 학창시절 긴 밤을 지새우며 베갯잇을 적셔본 기억이 있을 '홀로서기(서정윤 작)'를 출간한 도서출판 '청하'의 전 대표였다. 그는 무엇보다 최근 20년간 줄곧 바둑을 통해 그의 글 철학을 완성해가고 있단다.

▲ 바둑에 담긴 소중한 지혜를 설파하는 장석주 시인. 그는 한때 '즐거운사라' '홀로서기' 등을 출판한 '도서출판 청하'의 대표였다.
자신을 문장노동자라고 표현하셨는데 자기소개를 좀 더 하신다면?
시인이자 비평가라면 되겠죠. 인문학자이기도 하고요. 누가 절 표현하기로는,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 읽을 수 없는 것들마저 읽으려고 드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책을 많이 읽고 쓰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바둑얘기가 조금 들어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전반에 걸쳐 바둑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위기십결과 고전을 접맥하게 되었나요?
평소 출판사에서 바둑얘기를 하면 기획자들이 '그 얘길 책으로 쓰세요!' 하면서 빠져들더군요. 바둑기사들 기풍 얘기라든지, 난관에 부딪혔을 때 헤쳐 나가는 방법 등 바둑을 모르는 분들이 너무 재미있어하는 것이에요. 십 수 년 전부터 출판기획자들과 얘기하면서 모아둔 것을 쓴 것입니다. 위기십결에 들어있는 지혜랄까 가르침이랄까, 논어를 위시한 고전에 비해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삶의 지혜를 끄집어내려고 했습니다. 수필이라고 해도 되고 철학책이라고 해도 되지만, 사색적인 자기계발서라고 하면 되겠죠.
각 챕터마다 자작시도 보이고, 페이지 대신 1수 2수…를 넣어 바둑사랑을 한껏 표현했네요. 바둑은 언제부터 알게 되었습니까?
10살 때 바둑을 알게 되었고, 중1때까지 두다가 공부할 시간을 뺏길 지경이 되어서 잠시 쉬었죠. 1993년 경영하던 출판사를 접고 전업 작가로 나서면서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어요. 월간바둑도 정기구독하고 바둑서적을 30권쯤 사서 공부했죠.
추천사가 조훈현 국수네요. 바둑계와 더러 인연이 있는지요?
전혀요. 차민수 사범에 관한 얘기를 글로 쓴 적이 있어서 약간 인연이 있는 정도입니다. 그저 바둑TV보고 잡지보고…. 김수영 사범의 해설을 좋아했어요. 그분은 바둑수에 대한 해설만이 아니라 고전에서 주는 가르침이 있었죠. 서봉수 명인이 나이가 들어도 바둑이 는다고 말한 자세는 너무 훌륭합니다. 아들 뻘에게 쫓아가서 배우고… 승부를 포기하지 않으니까 늘게 되는 것이죠.
위기십결에는 다른 고전 못지않게 많은 지혜가 담겨있다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부득탐승'같은 말은 씹으면 씹을수록 다분히 철학적이고 동양의 오래된 지혜가 집약되어 있어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겸허와 겸양 같은 것, 욕심을 내세우는 것에 대한 3000년 된 말인데..., 현대에서도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침들을 뽑아 낼 수 있죠. 고전들은 시대를 달리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죠.
타이젬 4단인데, 감히(?) 위기십결을 빗댈 생각을 했나요(웃음)?
'이렇게 오묘할 수가 있나!'하며 감탄한 적이 많아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고심하다보면 또 길이 보이기도 하고, 이기려는 욕심이나 상대를 경시하게 되면 필시 덜컥수가 나오고…. 내 맘이 바르고 편하면 그 모양에 나타나잖아요. 나쁜 맘이면 좋은 모양이 안 나와요. 위기십결은 노자 장자의 가르침이나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십결과 노장사상의 만남이라, 아주 어울립니다. 1년에 1000권쯤 읽는 다독가(多讀家)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노자 장자 논어 주역 등 동양철학이 전공 아닌 전공입니다. 2~30대에는 서양철학을 공부했고요. 남들은 절더러 독서광이라고 합니다. 1년이면 책을 1000권은 사니까, 지금까지 3만여 권을 가지고 있죠.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제가 읽는 방식은 보통 사람들이 읽는 방식과는 다르죠. 동일계통에 관한 책은 지식의 교집합이란 게 있죠. 책을 몇 십년동안 읽다보면 뇌가 구조가 바뀝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알잖아요? 하루에 3시간씩 10년이면 전문가의 뇌로 바뀐다는 이론.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서 연구생에 들어가서 어마어마하게 공부하잖아요. 한쪽 분야에 몰입을 하고 되고 고수가 되면 우리의 뇌도 리셋이 됩니다. 프로기사가 될 정도의 친구들은 다른 무엇을 해도 어마어마한 수련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 위기십결에서 배우는 4000년 지혜, '인생의 한 수를 두다'(한빛비즈刊)
출판계에 오래 몸담은 분으로서 바둑출판에 관심은 없으신지요?
바둑계도 순수바둑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고, 만화 스토리텔링 영화 등 산업이 일어나야 시장이 커지고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바둑도 트렌드가 바뀌어서 낭만이고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을 끌어들여야 하겠지요. 삼국지(三國志) 사기(史記) 같은 콘텐츠는 제가 갖고 있으니까 기회가 되면 바둑과 접맥하는 이른바 '퓨전'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둑기사 중에서 어떤 인물의 캐릭터를 갖고 싶습니까?
조훈현 같은 번뜩임 빠름을 배우고 싶고, 동시에 이창호가 갖고 있는 느림 돌부처 같은 안정감을 갖고 싶어요. 제 안에 양 극이 다 있어요. 일반인도 양 극단이 있지요. 40대까지도 불같은 성질과 교만하고 오만했던 적이 있었죠. 돌아보면 조절할 줄 모르고 달릴 줄만 알았죠. 도덕경에서 말하길, 도와 덕은 물과 같다고 했어요. 물처럼 순리를 따르고 조용히 드러내지 않는 삶. 지금 삶에 만족합니다. 노자와 장자를 읽으면서 바둑도 즐거운 도락이자 마음수련에 대한 공부가 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어요.
한국바둑이 중국에게 뒤지고 있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겠는지요? 꼭 한국이 일등국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위기가 올 때 달리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니까 멈추는 게 두려운 것이지요. 돌아본다는 것은?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에서 맘을 연다고 할까, 다른 것에 대해서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이기려는 맘을 가졌다면 지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노자에서도 어떤 것에 극에 이르면 반(反)이 온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우리 바둑계에서 한창 자라는 기재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
정말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10대들에게 지혜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무지 속에서 그 무지를 견딜 수 있는 내공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운데요? 불꽃처럼 투신해야 합니다. 한판의 승부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고 큰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거장(巨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버리고 비울 줄 알아야 합니다.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그 눈의 무게 때문에 땅으로 고개를 숙이지요. 어느 순간 대나무 잎이 흔들리지 않았는데도 눈은 미끄러져 땅에 떨어집니다. 무심은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서도 벗어나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됩니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대나무 잎에 쌓인 눈이 저절로 땅에 떨어져 푸르르 날립니다. 이렇듯 완전한 자유는 무위 속에서 작용합니다. 완전하게 비울 때 당신은 완전한 자유인이 됩니다. 완전한 자유인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노자는 도는 비어 있으면서 작용한다고 이릅니다. 도는 그 비어 있음이 너무 깊어 그 바닥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근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항아리는 진흙을 빚어 만들지만 정작 진흙으로 빚은 부분이 아니라 그 안의 빈 곳을 씁니다. 반지도 가운데가 비어 있지 않으면 쓸모가 없게 되지요. <봉위수기(逢危須棄) > 105-107수 중에서

▲ 그는 위기십결과 노자 장자의 가르침이 대동소이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