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영재입단대회에서 맞난 신민준 신진서.한국바둑의 미래, 13세 신진서 군 제1회 영재 입단대회에서 12연승을 거두고 당당히 프로의 관문을 통과했다. 2000년생 첫 21세기 기사이며 15년 만에 첫 초등생 프로다.
영재정상대결에서 변상일 신민준을 꺾고 우승했으며, 기념대국에서도 이창호를 격파했다. 중국 최정예와 벌인 한중교류전(베이징)에서도 5승3패를 거두었다.
팬들이 기억하는 신진서는 대개가 이럴 것이다. 그런데 현미경을 가까이 들이대면 이것은 최근 6개월 동안의 뉴스는 아니다. 2012년 2패, 2013년 24승16패. 승률 60% 언저리니, 그렇다면 그럭저럭? 그러나 최근은 5할을 밑돈다. 특히 7,8월에는 여름을 타는지 패가 승보다 월등히 많다. 그렇다면 스퍼모어징크스?
작년 3월 부친 신씨는 20년간 운영했던 부산의 바둑학원을 정리하고 아들의 대성을 위해 서울에 정착했다. 운이 닿으려고 했던지 5개월 만에 신진서는 입단관문을 통과했다. 그러자 세상은 그에게 신동이란 칭호를 너무나 '쉽게' 내려주었다.
"영재입단대회라고 하지 말고 주니어입단대회라면 좋았을 것을…. 진서는 상대적으로는 영재일지 몰라도 많은 일류기사들이 어렸을 때에 비하면 특별하지도 않죠. 자신보다 10년 선배랑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 영재정상대결에서 자신의 우상 이창호를 지목하며 환하게 웃는 신진서.
▲ 신진서가 이창호를 꺾자 각 포털에서는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족상황과 어린 시절 얘기 좀 해주세요?제가 기원을 하다가 바둑교실로 한 20년을 했습니다. 진서 엄마도 바둑교실에서 같이 일했죠. 진서는 외할머니가 돌봐주시다가 6살 무렵인가 돌아가셨어요. 때문에 애를 맡기기도 마땅찮고 해서 바둑교실에 와서 놀게 했죠. 바둑교실도 엄연히 공부하는 곳인데 어쩔 수 없이 입문부터 배우게 되었죠. 진서 형이 명지고에 다닙니다. 진서 형도 7세 무렵에는 바둑을 잘 두었어요.
타이젬에서 바둑을 두면서 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스승은 있었을 것인데 스승의 계보랄까, 이 참에 도움 받은 사범님들 좍 나열해보시죠?일곱 살까지는 참 잘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래라 저래라 터치를 못했어요. 틀에 박힐 것 같아서요. 그래서 타이젬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한국 뿐 아니라 중국의 고수들이 즐비하니까 실전 대국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약한 8단 정도 되었죠. (헉, 7살 때 8단!) 지금도 중국의 고수들은 스승입니다.
제가 부산에서 '돌사랑기우회' 활동을 했습니다. 회원중에 김해 권병섭 송남구 사범님이 특히 어릴 때 많이 지도했죠. 그 분들 덕택에 아마6단 실력은 넘겼어요. 3학년 때 부산지역 연구생에 들어가서 장명한 김종준 김준영 사범님의 지도를 받았죠. 또 김항 원장님 유재성 배준희 이현욱 김남훈 사범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바사(아마추어바둑사랑회)' 홍시범 대표도 고맙고, 박병규 이용찬 사범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신진서) 충암도장에 와서는 한종진 사범이 가장 많이 배웠어요.
입단 전에 가족전체가 터전을 떠나 서울로 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제가 운영하는 바둑교실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학원생들도 줄어들고 경제적으로도 마이너스가 되었죠. 아예 연구생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 싶어서 결국 서울행을 결심했죠. 서울에서는 3년 정도 머무르면서 진서 뒷바라지를 할 계획입니다. 서울서는 제가 많은 일을 못하니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입단할 때까지는 거의 독학이다. 독학의 어려움과 장점은?(단호하게) 마이너스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겠죠. 아직은 창의력이라고 하기엔 수줍은 수준입니다. 그래도 진서에겐 시기가 참 좋다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에 국가대표 상비군이 생겨서 학교처럼 일정하게 공부할 수 있고, 생각해보면 입단한 것도 큰 행운이라고 봐요. 아직 연구생 상위권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신 대성의 밑거름인 창의력은 더 낫지 않나요?
초창기엔 창의력이 있었고, 지금도 있겠지요. 그런데 기력이 탄탄해지면서 끈기를 실어줘야 하더군요. 끈기는 시간과도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최철한 사범은 중국에서 많은 시간을 주어도 잘하지 않습니까(중국리그를 말함). 지금 진서는 시간 있는 바둑은 두어본 적이 없어요.
하루의 스케줄은?
월요일 영재기리그전, 화요일 상비군 리그전, 목요일 국가대표연구회를 나갑니다.
나머지는? 주로 도장에 나가서 공부하고 저녁9시부터는 타이젬에서 실전을 하곤 합니다.
사실 팬들은 빨리 컸으면 하는데, 아버지가 볼 때는 어떻습니까?현재 3~40위권 기사들 수준으로 2년 내에 올라가야 합니다. 사실 정상급만 자꾸 얘길 해서 그렇지 3~40위권도 여간 강한 게 아니라고 합디다. 저도 조급한 맘은 약간 있긴 하지만, 분명히 바둑은 긴 마라톤입니다. 다행히 진서는 아주 느긋한 성격이에요. 다만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죠. 문제점도 자신이 알 것입니다.
▲ 아빠가 고기를 굽는 사이 신진서는 신민준과 문자를 주고 받는다. 한살 터울의 신민준은 가장 절친한 사이라고도.자신이 볼 때 자신이 바둑이 어떤 상태라고 보나요?
(신진서) 올해 한국리그 olleh배 천원전에 진출했는데, 형들과는 아직 약간 부족한 것 같아요.
주변에서 한국바둑의 미래라는 얘기에 대해? (신진서) 부담은 없어요. 다만 지금보다는 좀 더 잘해야 한다는 느낌은 있어요.
아, 참! 박정환과는 자신 있어요? (천원전 8강전) 10월1일 두게 됩니다.
타이젬에서 두어본 중국의 정상급들과 실력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신진서) 일단 다 밀리고요. 판팅위는 올 초엔 3~40% 쯤 했는데 지금은 10% 대로 떨어졌어요. 커제는 역시 30%정도에서 20%대로 떨어졌어요.
타이젬에서 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나? (아버지) 진서의 기력이 낮았을 때는 많이 늘었죠. 지금부터는 확실한 자기의 바둑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끝으로 작년 추석과 올해 추석의 기분 차이랄까요?
작년엔 입단했기 때문에 그야 말로 즐거운 추석이었죠, 올해는 크는 과정에서 약간 슬럼프기운이 있으니까 썩 좋지는 않지요. 다만 누구나 올 수 있는 굴곡이니까 그것도 잘 이겨내는 것이 프로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기차에 올라타면 금의환향하는 기분이겠죠. 하하.
신진서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서도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문자 쓰니?" "네. (신)민준이 형에게요." "형이라고 불러?" "네에 형이죠."
▲ '진서야, 빨리 먹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신진서의 성장은 개인의 영달을 넘어 한국바둑의 흥망성쇠와도 관계가 있다. 입단한 지 이제 겨우 2년차요 그의 나이 만13세에 승률60%. 지금도 충분히 그 기재가 부러울 뿐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이지만 가능성만 가지고 희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다. 부친의 인터뷰에서도 나왔듯이 신진서는 운이 좋다. 입단도 천운이 따랐고, 뭔가 잡아줄 것이 필요했을 때 상비군제도가 생겼다. 이번 추석은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출발점이 길 바라마지 않는다.
"타이젬 유저여러분! 추석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우리 진서 대국실에서 만나면 아들같이 형님같이 많이 격려해주세요!" (진서아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