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바둑이야기' 광구兄을 추모하며…
바둑평론가 이광구 씨 별세
2015-11-27 오전 9:49:37 입력 / 2015-11-27 오후 3:14:03 수정

▲ 故 이광구 바둑평론가
대략 6개월쯤 되었을 것이다. 광구형의 몸무게가 부쩍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다. 환갑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신 들이대며 취재현장을 누비던 광구형이었다. 그 나이쯤 되면 당뇨다 고지혈이다하여 지병도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갈수록 심각하게 빠졌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광구씨가 많이 안 좋은 것 아냐?"하고 걱정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어렵게 광구형에게 전화를 넣었다.
"아, 건강이 좀 그래. 공기 좋은 데서 며칠 있으면 괜찮을 거야. 의사가 공기 좋은 시골 가서 맑은 공기 좀 쐐고 오래요. 여긴 아랫지방이야. 병원 정기검진 받는 날이 목요일인데 그때 봐!"
그는 애써 명랑했다. 느낌으로 많이 힘든 상황임을 알았다. 만나기로 약속한 1주일을 채 채우기 전에,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다시 전화를 넣었다. 병원이란다. 수화기를 타고오는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중이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나는 바둑책이 꽂혀있는 서재로 향했다. 그러고선 1992년 월간바둑을 들춰내어 그의 기사가 나온 페이지를 스크랩해두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꼬맹이 기자시절 내가 직접 쓴 '내 이름은 관전기자'란 이었다.
베스트셀러작가 이광구. 당시 유행하던 바바리코트에 볼 살도 통통하게 올라있는 흑백사진 한장이 그의 전성시대를 나타내고 있었다. 순간 살포시 번지는 웃음이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광구형은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으며 이듬해인 1980년 (재)한국기원에 입사해 그토록 질긴 바둑계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특히 1991년부터 스포츠조선에 연재한 바둑칼럼 <이광구의 바둑이야기>가 많은 바둑 팬들에게 사랑받았고, <이광구의 바둑이야기>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후 90년대 들불처럼 번지던 바둑출판계의 활황은 광구형 덕분이었다.
광구형은 나의 우상이었다. 딱딱한 바둑 글을 그처럼 위트 있게 쓰는 재주는 탁월했다. 바둑의 대중화에 앞장선 그는 바둑계의 원효였다.
1992년 당시 나는 월간바둑에 광구형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그대로 싣는다. 광구형에 대한 이해가 되길 바라면서..
프로들은 팬들에게 있어서 당연 별이요 우상이다. 팬들은 프로들의 바둑수에 감탄해 마지 않으며 그 비법을 조금이나마 제 것으로 만들고자 애 쓰며 프로세계의 주변잡사에 대해 목말라 한다. 그러기에 바둑소식을 전달하는 종군기자인 관전기자들도 언제나 인기가 있다.
조선일보 기왕전을 담당하고 있는 이광구(38) 씨의 역저 '바둑이야기'시리즈는 그러한 바둑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이즘 출판가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바둑책이 버젓이 베스트셀러를 거쳐 스테디셀러로 서가에서 행세하기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하는 일에 속한다.
그는 대중적인 관전기자의 효시가 된다. 바둑잡지나 신문 한 귀퉁이 관전기란을 일부러 찾아 읽은 열성 바둑팬 외 일반 독자에게도 '이런 직업이 있소!'하고 당당히 외친 흑백 종군기자 이광구 씨. 귀족의 몫이었던 불교를 오늘날처럼 대중화시킨 원효의 역할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광구 씨는 그의 대중적인 명성에 비하면 관전기의 연륜은 비교적 짧다. 지난 1988년 박치문 씨의 뒤를 이어 기왕전을 맡았으니 5년 남짓이다. 그러나 그의 바둑 이력은 1980년으로 거슬러 가며 그의 풍성하고도 유려한 필치도 월간바둑에 몸을 담았던 13년 전부터 원류를 찾아야 한다.
월간바둑의 말단 기자에서부터 편집장을 거치는 10년간 그는 관철동 구석구석에 배인 희노애락을 누구보다 피부 깊숙이 체험한 것은 물론, 기왕전 관전기란을 수놓고 있는 기름진 필력도 돌이키면 그 당시부터 발원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관전기를 주의 깊게 살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맛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국적불명의 문투이며, 그 표현과 논리가 마치 씹어서는 안될 딱딱한 고체처럼 묘미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광구 씨의 시각도 그 점에 닿아있었고, 이러한 악재를 타파하는데 앞장섰다. 예를 들면 '207手完 白2집半勝'같은 식 표기도 '207수끝 백2집반승'으로 고쳐놓은 것을 말한다. 아직 '승'이라는 글자를 한글로 바꾸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그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 관전기의 한글화를 시도한 것은 바둑출판계에서 혁혁한 변화였다.
또한 숫자와 글이 만나는 관전기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을 대하노라면 문법이 파괴되었다든지 흐름이 깔끔하지 못하다든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잡지든 신문이든 이광구 씨의 글은 재미와 함께 논리적이며 정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요소가 '일류 이광구'를 구성한다. 관전기의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추구한 그의 문투는 언제나 짧고 명징한 스타카토로 다가온다.
그는 오늘도 관철동의 남루한 계단을 틱톡틱톡 분주히 오르내리며 바둑계의 온갖 여물을 걷어 맑고 청아한 문장으로 되새김질 하는데 여념이 없다.
(부고) 바둑평론가 이광구 씨 별세
월간바둑 편집장과 조선일보 기왕전 관전기자를 역임하고 현재 일요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는 바둑평론가 이광구 위원이 27일 새벽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1955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광구 위원은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980년 한국기원에 입사해 바둑계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91년부터 스포츠조선에 연재한 바둑칼럼 <이광구의 바둑이야기>가 바둑팬들에게 사랑받았다. <이광구의 바둑이야기>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바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식장-부천성모병원 장례식장 3호
상주-이상엽 010-9059-4792
발인-11월29일(일) 08:30
빈소-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소사로 327
TYGEM / 진재호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