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게임

기획기사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2)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이창호가 얼마나 강한 기사였는지

2017-08-07 오후 1:05:39 입력 / 2017-08-07 오후 1:27:16 수정

[출처] 사이버오로 정용진 콘텐츠총괄상무가 월간바둑에 기고한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내용을 1, 2편으로 나눠 옮겼습니다.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1)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2)



20세기 바둑만 놓고 본다면 우칭위안, 이창호 딱 두 명!

- 그러니까 이창호라는, 워낙 끝내기에 뛰어난 강자가 등장하면서 끝내기가 승부에 엄청 중요해졌고 이후 젊은 후학들이 끝내기에 눈을 뜨고 영향을 받아 열심히 공부해서 다 일취월장했다는 얘기네요. 대표적으로 박영훈부터 시작해서…‘끝내기 계산’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하면 정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옛날에 이창호가 끝내기라는 신무기를 일찍이 장착했고 그걸로 무적을 구가했는데 이후 누구나 이런 무기를 갖추게 되면서 이창호시대의 추락이 빨리 왔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30~40대가 되면 아무래도 계산력이 그 전보다 떨어지고, 정확하게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해야 적확하려나… 하여간 창호형 스스로 계산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놓았듯, 시간이 더 걸린다거나 초읽기에 몰렸을 때 정확히 계산하기가 예전보다 어렵게 됐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후배들은 신무기를 다 장착하고 나오니깐…(웃음)"

- 그래서 스승 조훈현시대보다 더 빨리 붕괴된 경향이 있다? 물론 조훈현시대와는 환경이 많이 달랐지만 말에요. 이창호시대는 국내뿐 아니라 바깥(중국)과도 동시에 경쟁하는 시대였으니까 롱런한 스승의 시대와는 대놓고 비교할 순 없을 테지만요. 자, 정리하면 바둑사적으로 이창호의 존재 의미는 중후반 끝내기의 중요도, 두터움을 보는 눈...계산 분야에 대한 패러다임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큰 틀에서 보면 우칭위안의 틀 안에 있는 거고요.

"20세기 바둑만 놓고 본다면 두 명… 우칭위안, 이창호 두 명이죠."

- 일찍이 ‘컴퓨터’로 불린 이시다도 그 시대엔 끝내기에 일가견을 보이긴 했어도 지금 눈으로 보면 그렇게 대단한 끝내기 실력은 아니었다...구형 컴퓨터와 신형 컴퓨터의 차이랄까, CPU의 차이랄까. (웃음) 그렇지만 왕년의 기사이긴 해도 다케미야의 바둑은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 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 보아도 굉장한, 상상할 수 없는 바둑 아닙니까? 어쩌면 다케미야의 바둑이 알파고와 더 가까운 거 아닌가요?

"저는 사실 가장 존경하는 기사로 우칭위안 선생 다음으로 다케미야 9단을 꼽습니다. 물론 조치훈이나 고바야시, 조훈현 국수님처럼 뛰어난 승부사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몇백년이 지나면 잊혀질지도 모르지만 다케미야는 남을 겁니다. 우칭위안, 이창호처럼 완벽하게 세계정점에 우뚝 서지 못했을 뿐이지 초일류기사였잖아요. 진짜 남들과 완전 다른 바둑을 두면서, 어쩌면 허황되고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중앙바둑으로 일가를 이뤘으니… 아마추어가 가장 좋아할만한 바둑이기도 하니 대중적인 매력도 최고였고요. 중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알파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다케미야는 일방적으로 모양을 쌓는 거고 알파고는 전반적으로 두터움을 잘 활용하고 집을 짓는 쪽이라 좀 차이가 있다 봅니다."

- 앞선 조훈현시대까지 선보였던 바둑스타일, 가령 다케미야의 우주류, 실리의 화신으로 불린 조치훈, 지하철 바둑 소리를 들은 고바야시 등, 다양하고 특색 있는 기풍에 견주면 계산과 균형에 의존한 이창호 바둑은 특징이 없는 밋밋한 바둑이란 평이 다수였지요. 권투로 치면 화끈한 한방이 없는. 특히 나이 많은 선생(조훈현)한테는 체력전으로 버티다가 항상 막판 역전하는 패턴으로 이겨간다는, 지금 생각하면 다소 폄하하는 평가가 많았어요. 마샤오춘(馬曉春)한테도 끝까지 형세가 안 좋다가 뒤에 가서 역전승한 판이 많았지요. 지금 가만 생각하면 이것은 애초 중반 어느 지점에선가 두터움을 어느 정도 계산하고 (이때 남들은 비세라고 봤지만) 뽑은 계산서에 맞춰 반면을 그리 운용한 것일까요?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상대적으로 중후반 비해 초반에 뒤처진 경우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초창기엔, 그러니까 최정상에 올라오기 전에는 그런 식으로 이긴 판이 많긴 많아요. 반집승, 역전승… 창호형 본인도 초반에 항상 밀리고 불리하게 시작된 게 많다고 고백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전성기(9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내용적으로 훌륭한 완성도를 보였습니다. 남보다 더 정밀하게 계산하고 끝내기 자체가 강했던 거지요."

- 본시 발상이라는 게 ‘콜럼버스 달걀깨기 식’으로 알고 나면 쉬워 보여도 전환하기에 무척 어려운 거지요. 이창호의 끝내기에 대한 발상전환이 그렇습니다. 그 전에도 수많은 기사가 수없는 판을 뒀을 텐데, 그렇다면 끝내기 공식이라기엔 뭐하지만 여하간 나름 정립된 시스템이랄지 노하우 같은 게 있었을 거라고요. 역발상이라고까지 하기엔 그럴 테지만 여하간 이 수준을 단숨에 뛰어넘어 새로운 끝내기 경지를 열었으니 이창호라는 존재는 뭔가 계산법이 달랐다는 거 아닙니까. 겸손하다, 한결같다, 뭐 이런 인간성에 관한 칭송은 바둑 외적인 부분이니까 차치하고 오늘날 알파고시대에서 이창호를 바라볼 때 재해석할 부분이나 수정할 대목은 없을까요?



▲"적응이 잘 안되네요~" 2005년 2월27일 인천공항 출입구를 나오던 이창호 9단이 팬클럽 회원들이 손에 손에 든 "미안하다 다 이겼다" "농심배 30연승! 전설은 끝나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등의 손팻말을 보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다. 이창호를 '석불(石佛)'이라 불렀다. 우리말 '돌부처' 별명을 그리 표현한 것이지만, 이 표현에는 이창호 바둑에 더해 인품에까지 그들의 한없는 경외심이 담겨 있다. 이창호는 영웅이었다.


▲이 사진들을 보면 지금도 진한 감동이 되살아난다. 혈혈단신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일본 5명의 강자를 연거푸 쓰러뜨리고 농심배 6연패의 신화를 창조한 '전설의 5연승' 순간이. 월드컵 4강 진출의 순간보다 더 짜릿했던 그때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이창호가 얼마나 강한 기사였는지

 
"오히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몰라요. 조훈현 국수님이 얼마나 치열했고 창호형이 얼마나 강했는지… (최)명훈이형과 가끔 이를 겪어본 우리는 행일까 불행일까 얘기하곤 합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요즘 어린 기사들은 잘 모르죠. 이창호의 바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저희는 무수히 얻어텨져 봤기에 오히려 행운아죠. 요즘 어린기사들은 커제나 박정환을 두려워는 합니다. 하지만 창호형을 다소 과소평가한다고 할지."

- 링 밖에서 볼 때와 막상 링 위에서 파바박 붙어보는 거 하고는 완전히 다르죠. 기보로만 봐서는 사실 모르는 거니까요. 커제가 알파고와 싸우면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오죽하면 ‘싸나이 눈물’을 다 흘렸겠습니까. 이창호시대에도 그런 기사들 많았을 텐데요, 감독님은 어떠셨습니까? 이창호와 마주앉았을 때의 느낌.

"갑갑하다! 하하. '깝깝'했다고 강하게 발음해야겠군요. 기풍도 상극이었죠. 저는 조국수님이나 세돌이와 둘 때는 치고받고 신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데 창호형은 계속 안 싸워주는데, 이건 뭐 허공에 대고 혼자 주먹질하는 느낌? 장기전, 끝내기로 가면 뭔가 안될 것 같은 압박감, 불안감....창호형 시대에는 다들 그랬을 겁니다. 조훈현, 조치훈 사범님과는 앉자마자 위압감, 일종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나. 뭔가 아우라가 훅 뿜어져 나오는데 창호형은 그런 게 없는데 뭔가 갑갑해요."

- 상대를 압도하는 존재감은 그닥 안 보이는데, 그러니까 펀치를 맞아도 아픔을 그리 못 느끼는데 나중 보면 골병 들어 있다 뭐 이런 얘기로군요. 이런 거대한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사람을 더 체념하고 주저앉게 만들 듯싶습니다만.

"그건 기사들마다 근성에 따라 다르겠죠. 이세돌 같은 경우는 넘어선 케이스이고요. 세돌이는 워낙 뚜렷한 장점을 지녔고 제가 보기에 끝내기는 나중에 세졌어요. 처음 창호형을 이길 땐 이러한 자기 장점을 잘 살렸기 때문이죠."

- 흥하면 소멸하는 게 세상 이치죠.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승부세계에 더없이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고요. 결국은 후학이 추월하기 마련인데 조훈현시절만 해도 허구한날 사제가 ‘맞장’을 떠 한시대가 넘어간 거고, 사실 도전기가 주류였던 이때까지만 해도 바통터치는 한 사람이 완전 녹다운될 때까지 맞대결로 결판나곤 했잖아요. 그런데 토너먼트 시대가 열리면서, 이창호에서 이세돌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선 격투기처럼 어느 한쪽이 뻗을 때까지 사생결단을 펼치는 장면이 별로 없었단 말이지요. 이창호가 흠씬 두들겨 맞고서 내려온 게 아니라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된 흐름이었어요.

조훈현과 달리 이창호시대의 종막은 봄철 목련화처럼 뚝 낙화하는 정경이 아니라 산수유꽃마냥 시간에, 바람에 시나브로 스러진 모습이랄까. 마지막에 세계대회 준우승만 연속 8번인가… 될 듯 될 듯 아쉽고 안타깝게 애를 태우다 끝내 하산하고 말았던 이런 기록도 사실 대단한 저력을 보인 거고요. 솔직히 이창호 이후부터는 기사들의 기풍이 마치 대량생산되는 공산품마냥 일정한 규격에 맞춰 통일된 느낌이 듭니다. 어쩔 수 없는 추세인가요?

"결국은 종합능력… 박정환이나 커제가 어느 한 분야 뛰어난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정상급 기사들보다 조금씩, 최소한 반 보는 더 강하기 때문에 앞서는 겁니다. 예전처럼 자기만의 뚜렷한 장점을 내세워 승부하는 시대는 이제 아닙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기사들의 개성이 결여된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군요. 어쩔 수 없는 추세이긴 한데 상당히 안타깝죠. 아쉽고… 그나마 알파고가 나와서 자유분방한 새로운 시도들도 많이 해보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어느새 또 다들 알파고 따라하기로 가고 있긴 합니다만…"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니깐 그러다 자기것이 되고 자기류가 나오겠죠. 그렇지만 이창호처럼 끝내기라는 블루오션을 찾아 자기만의 시대를 구가하는 영웅을 다시 기대하기 난망한 시절인 듯합니다. 막상 이런 시절을 맞고 보니 이창호란 존재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엄청난 거인이었고 그가 어쩌면 마지막 개척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입니다.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는 건, 신이 준 선물이었고 인간계에 더없는 복이다는 기분, 알파고가 등장한 지금 나만의 생각일까.


▲ 중국인들은 이창호를 '석불(石佛)'이라 불렀다. 우리말 '돌부처' 별명을 그리 표현한 것이지만, 이 표현에는 이창호 바둑에 더해 인품에까지 그들의 한없는 경외심이 담겨 있다. 이창호는 영웅이었다.
TYGEM / 타이젬

관련기사

SNS 간편로그인

(주)컴투스타이젬    대표이사:이승기    사업자등록번호:211-86-95324    사업자정보확인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315 파이낸셜뉴스빌딩 4층

제호: 타이젬    등록번호: 서울 아04168    등록(발행) 일자: 2016.10.4

발행인: 이승기    편집인: 정연주    청소년보호책임자: 장성계

전화: 1661-9699 (상담시간:10:00-18:00)    FAX : 070-7159-2001    이메일보내기

COPYRIGHTⓒ Com2uS TYGE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 타이젬 일본
  • 타이젬 중국
  • 타이젬 미국
  • 타이젬 대만

2019 인공지능대상 수상

등급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