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인물
①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대 '유영욱'
흑백으로 361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2018-04-13 오전 10:34:59 입력 / 2018-04-13 오후 2:28:47 수정
9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처음 피아노를 만졌다. 10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픔을 피아노 곡으로 작곡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를 했다.
그 무렵 피아니스트와 바둑의 인연도 시작됐다. 피아니스트와 바둑의 첫 만남은 특별하지 않았다.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잠시 바둑학원에 다녔다. 당시에는 진득하게 앉아서 바둑을 두지 언젠가는 잘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중학생 때부터 미국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두뇌스포츠에 대한 동경이 늘 자리잡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때 체스를 시작했고 깊이 들어갈수록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의 갈증은 계속 됐다.
‘바둑이 어떨까, 다시 둬보자!’ 라며 책장을 뒤적였다. 미국으로 올 때 잊지 않고 챙겨온 10권짜리 바둑입문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렇게 바둑은 그에게로 다시 왔다.
꿈을 꾸듯 한 판의 바둑을 두는 상상을 했다. 가끔 한국에 오는 경우에 경비아저씨한테 한 수를 청하기도 했다. 처음 사람과 바둑을 둬보니 혼자 상상하면서 두던 것과는 달랐다. 뉴욕에서 우연히 알게 된 기원을 기웃기웃해봤지만 어린 그를 상대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매주 토요일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갈 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친구들의 아버지를 찾았다. 바둑을 알만한 사람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양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고 바둑 한 수를 청했다. 피아니스트 옆에는 늘 휴대용 바둑판이 있었다. 실전 경험이 없으니 장고를 많이 하게 됐다. 바둑을 자주 둘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감칠맛이 났다. 그는 바둑이 맛있었다.
바둑은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고 길러주기에 마음의 존경은 갈수록 커졌다. 바둑의 초반은 감을 사용해서 시작하기에 예술적인 면에서 공감이 되었다. 평생 단 한 번도 같은 모양이 나오지 않는 361로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피아니스트는 연주하는 것 보다 가르치는 것에 더 열정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캠프를 갔을 때 대학생 누나들이 피아노 연주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런 것은 이렇게 연습해보라’고 조언을 해줬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다. 초등학교 4학년이 대학생한테 연주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다니!
연주회를 4년 정도 하면서 전세계를 돌았다. 연주를 하다 보니 문득 남은 인생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그를 모르는 곳에서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지만, 고독한 일이었다. 인간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관객 앞에서 연주할 때 보람을 더 느끼기도 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 경험한 깨달음의 가치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어떤 타이틀 보다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곳을 따라가고자 했다. 연주했던 홀이 어땠는지 보다, 그 때의 긴장감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줄리어드 음대에, 맨해튼 음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피아니스트는 각종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가히 눈부신 해외활동을 하다 음대교수로 임용되어 한국으로 왔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온 유영욱 교수를 연세대학교 음대 교정에서 만났다.

지난해 바둑대상 시상식에는 특별한 공연이 더해졌다. 곧게 차려 입은 남성이 객석에서 시상대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와 피아노 연주를 했다. 마음이 꽉 찬 연주를 끝내고 사람들 앞에 선 그를 보았으니, 3개월 만이다.
지난해 연말 바둑대상 시상식 때의 특별공연은 프로기사 자문위원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바둑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바둑대상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고, 기꺼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바둑을 배우기 위해 한국기원에 일반인 대상으로 한 바둑강좌가 있냐고 전화를 했을 정도로 바둑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그 인연으로 프로기사 자문위원회에서도 활동을 하게 되었다. 유교수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배움에 있어서 늘 적극적이다.
“머리를 써야 하고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는 모든 것은 가능하다면 항상 도전해보고 싶다. 바둑은 생각의 깊이와 연관된 부분이 많아 적극적으로 배웠다. 나는 항상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말이 서툴러서 말 솜씨를 기르자고 결심을 했다. 어떠한 상황을 만들고 상상을 하며 연습을 했다.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말도 걸어보면서 프로젝트를 완성 시키곤 했다. 믿음이 있었기에 점차 좋아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악에 빠져들듯 바둑에도 빠져들었다.
“한때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했다. 인터넷 바둑을 두는데 5급에서 시작해 5단까지 올라갔다. 급수가 한 계단씩 올라갈 때 마다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있기에 열심히 배웠다. 한 급수씩 올라갈 때 마다 그 급수의 강한 상대와 대국을 해야 하니 떨렸다. 지금처럼 인공지능이랑 둘 수 있으면 부담이 덜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인공지능 바둑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인공지능이 작곡도 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없어질 직업’이라는 뉴스는 자주 등장해 이제 큰 감흥도 없다. 예술가 입장에서는 어떨까.
“알파고가 승리를 거뒀을 때 한동안 울적했다.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학생들한테 피아노 연주기법을 알려주거나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 음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다 보면 ‘어차피 이거 기계가 다 해줄 텐데, 시간을 들여서 연마해서 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만의 조합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의 정신 세계를 느끼는 것이 진정한 포인트라고 본다.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없으면 듣는 사람이 감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기계가 아름다운 소리만을 조합했다고 과연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바둑을 감상할 때 승부에서의 희열은 프로기사가 오늘 대국을 하면서 어떤 감정의 기복을 겪고 어떻게 난관을 이겨내면서 승리를 거뒀는가를 보기도 하고, 수 자체를 감상하는 매력이 있다. 청중 모두를 만족하게 하면 좋겠지만, 결국은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바둑도 그렇지 않을까.”
요즘 유교수의 관심은 체스를 두는 인공지능 ‘알파제로’에 있다. 이전의 체스 인공지능은 단지 사람보다 실수 없이 깔끔하게 두고 정확한 계산으로 이기는 느낌이었지만 ‘알파제로’가 체스를 두는데 상상도 못했던 수를 두는 것을 보고 놀랐다. 피스를 몇 개씩 희생하면서도 승리를 이끌어 낸다. 재미있는 것은 체스 인공지능 ‘딥블루’가 사람을 이기면서 체스의 낭만적인 모습이 사라졌다가, 창의적인 ‘알파제로’가 나오면서 다시 체스가 낭만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기계인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정말 인간다운 학습이 뭔지 다시 배웠다. 우리는 지금까지 빠르고, 명석한 것만 원했다. 사실은 우리가 기계같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알파고’ 특징은 시간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성찰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인간적인 과정을 우리는 축소해서 생각했다. ‘알파고’는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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