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샘지구 44호분에서 발굴 된 바둑돌로 대국을 하는 장면.

바둑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지금은 바둑대회에도 여성부가 따로 있고, 여성바둑협회도 있고 여성바둑클럽 등이 활성화 되어 있는데, 현재와 다르게 과거의 바둑은 남성들 특히 최상위 계층의 놀이로 인식이 되어 왔다.

이것은 남성 무덤에서만 바둑 유물이 출토됐기 때문인데, 2020년 12월 신라 왕족 여성 무덤에서 바둑돌이 발굴되면서 그간 통념을 깼다.

5세기 후반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대릉원 동쪽에 위치한 쪽샘지구 44호분의 신라 왕족 여성의 무덤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들과 바둑돌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의 주인은 키 150cm 정도의 여성이며 머리에 썼을 금동관이나 귀걸이, 팔찌 등이 유달리 작은 것으로 미루어 연구자들은 10대 소녀일 걸로 보고 있다. 또한 최상위 계층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최상위층 고분에서만 나왔던 비단벌레 딱지날개 금동 장신구 수십 점도 출토됐기 때문이다.

▲860점의 바둑돌이 발굴됐다.

연구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피장자의 발밑에서 나온 860점의 바둑돌이다. 17줄 바둑판에 289개의 바둑알을 놓을 수 있는데, 860점의 바둑돌은 17줄 바둑판으로 3판 정도 대국할 수 있는 양이다. 발굴된 바둑돌이 860점이었다는 것은 과거에 19줄 바둑이 아니라 17줄 바둑이 유행했다는 점을 방증해준다.

발견된 바둑돌은 지름 1~2cm, 두께 0.5cm 내외이고 평균적으로 1.5cm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지금 사용되는 바둑돌은 보통 2.15cm 정도이니까 크기가 좀 작은 편.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고,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쉽게 목재로 제작됐을 바둑판은 부식돼 사라졌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유물 하나하나는 고분 주인공의 생전 삶과 연관성이 있어 많은 연구가 필요할 텐데, 바둑돌을 무덤까지 가져간 것은 주인공의 일상 놀이기구였거나 바둑을 신선들의 놀이로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작용했을 가능성 모두 열려 있다. 함께 출토된 약용 돌절구로 유추해 봤을 때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였으나 바둑을 즐겼던 공주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자 돌절구와 바둑알을 함께 묻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고 한다

▲2020년 12월 출토된 신라시대 바둑돌. 바둑돌과 함께 묻힌 신라공주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이 바둑을 뒀다는 내용과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확인된다. 신라 시대의 바둑돌이 출토 된 적 있는데, 황남대총 남분이나 천마총, 금관총 등 최상위 계층에서만 발견이 됐었다.

1973년 출토된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바둑돌로 추정되는 자갈돌이 대거 나왔는데, 여성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바둑용품이 출토되지 않았다.

그 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는 모두 남성으로 추정되어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쪽샘지구 44호분의 유물로 인해 1500여년전 신라 여성도 바둑을 즐긴 흔적을 볼 수 있어서 새로운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경주에서 발굴된 바둑돌로 바둑 시연을 펼쳤다.

한편, 쪽샘지구 44호분에서 발견된 유물 흑돌과 백돌로 대국을 하는 ‘천년수담’ 특별편이 4월28일 오전 11시에 바둑TV에서 방영된다.

바둑TV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합작으로 두 아마추어 강자(흑번 김수영 아마 7단:백번 홍슬기 아마 6단)의 대국이 성사되었다. 이번 대국은 승패보다 대국 자체의 가능성이 더 중요한 대결이었다. 흑백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수읽기나 형세판단을 하는 데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기존에 쓰던 돌과 달라 낯설다는 느낌이 들지만, 대국에 지장을 주지는 않아 바둑돌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