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KT배 결승에서 정면대결했던 일지매와
쎈돌이 다시 만났다. 그런데, 한달전과는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이세돌 7단이 LG배 우승이후 슬럼프 기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유창혁 9단은 KT배에서 역전 우승을 이룬 데 이어 며칠
전에서는 이창호마저 꺾는 등 급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바둑은 한달 전과는 정반대로 유창혁에게 무게가 쏠렸다.
그리고 과연 예상대로 유창혁은 특유의 공격력을 과시하며 이세돌의 대마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그로기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다 이겼다고 느낀 찰나, 어이없는 해프닝이 일어나면서 별안간 천국과 지옥이 갈렸다. 유창혁이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이세돌이 강력한 카운터 KO펀치를 작렬시킨 것. 거대한 대마의 운명이 오락가락한 역전극의 현장으로 가보자.
[제34기 명인전 본선리그]
○이세돌 7단 ●유창혁 9단 <2003. 5. 28,
126수 끝, 백 불계승>
장면(그로기에
몰린 쎈돌)
'세계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의 진면목이 실감되는 장면. 우상귀를 귀곡사로 유도한 다음
흑1로 갈라간 것이 멋진 수순이었다. 백은 △들과 ○들이 꼼짝없이 양곤마로 엮인 신세.
백2가 불가피할 때 흑3으로 포위하니 △들이 풍전등화! 흑7에 이르러 흑의 승세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역전극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참고도1(백,
못견딘다)
우상귀는 귀곡사 형태. 자체로는 흑이 안되지만, 문제는 외곽의 백돌(○)이다. 즉, ○들이 갇혀서 미생인
상태라면 백1이하로 패가 되는 것. 물론 이 패는 흑의 꽃놀이패여서 백이 견딜 수 없다.
따라서 백은 △쪽을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참고도2(임시
축머리)
□는 흑3·5의 절단을 선수로 방지하려는 궁여지책. (백A의 축머리를 만들려는 뜻).
만약 손따라 흑1로 받아준다면 중앙 백대마 타개에 나서겠다는 심산이다.
그런데, 이 수가 훗날 역전의 불씨가 될 줄이야….
실전진행1(보따리까지
빼앗은 쎈돌)
▲를 얻어맞자 중앙 백대마는 안에서는 살 길이 없어졌다. 포위망의 흠집을 찾아 몸부림치는 수밖에.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될 것 같았다.
"이세돌이 곧 돌을 던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 무렵 어이없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승리감에 도취한 유창혁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른 것. 흑18이 통한의 패착! 백19~23로 죽죽 밀어붙이니
졸지에 흑대마가 백세속에 갇혀버린 것 아닌가.
이윽고 백25·31이 회심의 역전타! 이제 백은 수렁에서 빠져나와 보따리마저 빼앗을 태세이다.
참고도3(흑,
수부족)
계속해서, 그냥 흑1로 막는 것은 백2·4로 조여 흑 사망! 이렇게 단순히 수상전을 해서는 백이 2수 이상이나
빠르다.
실전진행2(쎈돌의
역전 KO승)
갑작스런 비상국면을 맞아 유창혁 9단은 점심도 거른 채 대책마련에 부심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흑1로 변화구를 던져보았지만, 백2가 냉정한 응수. 수습이 궁해진 유9단은 꼬리를 살리는 용단을 내렸으나,
백12로 몸통이 떨어져나가서는 흑이 망한 꼴.
담백한 성품의 유9단은 더 둘 맛이 가신 듯 곧 싹싹하게 돌을 거두었다. 엊그제 프로야구에서 10대1로
앞서다 9회말 대역전패를 당한 기아를 연상케 하는 비극이었다.
참고도4(유창혁의
후회)
유창혁 9단은 국후 흑1로 하나 더 밀어두어야 했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랬으면 하중앙 흑대마의 안형이
훨씬 풍부해서 잡힐 돌이 아니라는 것.
이제는 수상전을 하더라도 △들이 먼저 잡힐 것이다. 이랬으면 정말로 이세돌 7단이 돌을 던져야 했을 터.
참고도5(김승준의
대안)
또하나의 흑승 코스. 애당초 끊겼을 때 섣불이 흑A로 단수 몰지 말고 흑1로 늘었어야 했다. 이것은 김승준
8단이 제시한 대안.
이렇게 두었어도 흑승에는 이상이 없었을 것이다.
TYGEM/김창호 gigung@tyge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