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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생명배

"한명의 기사라도 불이익을 당한다면 나도 책임지겠다"

[인터뷰] 조훈현 9단, 동양생명배에 관한 견해 표명

2003-10-02 오후 6:13:55 입력


지난 두달 동안 바둑계에 핫이슈로 떠올랐던 동양생명배 타이젬바둑오픈이 마침내 10월 5일(일요일) 저녁 8시 개막전을 시작으로 장장 3개월에 걸친 32강 본선리그에 들어간다.

프로, 아마대회를 망라하고 이제껏 바둑계에 그 어떤 대회가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바탕으로 새롭게 자리하고 있는 온라인바둑문화….

온라인바둑의 속성을 십분 반영해 만든 동양생명배는 기존 오프라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색달라 보일 수 있는 대회이기에 그 신선감만큼이나 충격도 있었으리라.


인터넷기전 동양생명배의 주최사는 타이젬이다. 말하자면 '21세기 서두에 바둑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진원지인 셈인데, 조훈현 9단은 바로 이 인터넷회사를 대표하는 이사다. 조훈현 9단은 동양생명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바둑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매우 바쁘시더군요. 동(일본)에 번쩍, 서(중국)에 번쩍…. 조국수님을 뵈면 영원한 활화산, 죽지 않는 불사조가 연상됩니다. 도대체 어떤 비아그라(?)를 복용하시길래 이토록 노익장을 과시하는 겁니까? 하하.

"에이∼, 이미 한물 간 사람에게 그 무슨…. 비아그라 살 돈은커녕 쌀값조차 못 벌고 있는걸요. 요새 젊은 후배들이 워낙 세서…."

-하하, 과연 엄살도 황제급이시군요.
그나저나 동양생명배에 대해 한국기원 유건재 총장이 공개적으로 '주관 불허' 입장을 밝힘으로써 바둑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조국수님은 한국기원 소속기사이면서 타이젬 이사 직함을 갖고 계신데 처지가 매우 난처하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인지 그동안 추이를 지켜볼 뿐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신 것 같은데…,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동양생명배 예선은 예정대로 치러졌고 이제 본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동양생명배에 대한 솔직한 조국수님의 심경을 듣고자 방문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9월 29일일자 발송) 한국기원으로부터 또 한 장의 공문을 받았습니다. 소속 기사 전원에게 보낸 공문이더군요.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서 동양생명배에 소속 프로기사들의 참여를 불허했다는 것을 공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동양생명배와 관련하여 보름새 벌써 두 번째 받는 같은 내용의 공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특히 공문 내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양생명배 참가로 인해 한국기원과 기사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는 문구 앞에서는 참말 착잡했습니다. 동양생명배의 인허 여부를 떠나 소속 기사들에게 더 많은 대회를 마련해 주어야 할 한국기원이 스스로 대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거듭 경고하는 현실 앞에 기사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하고 안타까웠다는 얘기지요.
저는 현재 한국기원 상임이사입니다. 지난 9월 23일 열렸던 상임이사회 분위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서 내 뜻 밝혔다

-그 자리에서 동양생명배에 관한 토론이 있었고 조국수님께서 개인적인 견해를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진언한 바 있다고 들었습니다. 공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못할 것도 없지요. 이미 공개석상에서 한 발언이니까…. 그간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타이젬을 만든 주역으로서 임원으로서, 그리고 한국기원 소속 기사로서 상임이사로서 가운데 놓인 어정쩡한 처지라 처신에 무척 조심하고 고심했지요. 그러나 한국기원 사무국이 공개적으로 기사들에게 처벌을 거론하는 지경에 이른 시점에서 제 입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장께서 직접 주재하신 상임이사회에서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자리는 한국기원의 정책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이기는 하나 타이젬이 주최하는 동양생명배에 관한 안건이 올랐으니 타이젬을 만들고 현재 경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동양생명배 공인을 두고 한국기원 사무국은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처음엔 주관을 불허했다가 입장을 바꿔 인허한다고 했다. 뉴스로도 보도된 사항이고 앞서 열린 임시 상임이사회 석상에서도 사무총장이 직접 보고한 사항이었다.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대다수의 기사들이 대회 참가신청을 한 걸로 아는데 대회 직전에 돌연 공인 불가를 결정했다. 그리고 소속 기사들에게 한국기원이 공인하지 않은 대회에 참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

한국기원 사무국의 결정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일관성 없는 행정은 대회 참가를 결정했던 많은 기사들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렸다. 한국기원 사무국은 정관을 들먹이며 대회 참가를 결행하는 기사에게 은연중 징계를 암시하고 있고 불안해진 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건 동양생명배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떠나 한국기원 사무국의 일관성 없는 행정이 큰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본다.
만약 이를 덮어둔 채 원칙만 따져 중징계한다면 타이젬의 임원으로 있는 나부터 중징계하라. 타이젬이 만든 대회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기사가 단 한명이라도 생긴다면 나 또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전 타이젬 임원이기 전에 한국기원 소속 기사입니다. 올바른 결정이라면 한국기원의 정책에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과정에 일관성을 보이지 못해 혼란을 가중시킨 사무국의 책임은 따지지 않고, 한국기원의 '주관 합의'를 믿고 대회에 참가한 기사들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면 저부터 책임을 물으라는 거지요. 타이젬과 연루된 일인 만큼 타이젬 경영진의 한 사람인 저 역시 책임이 크지 않겠습니까. 만약 한 건이라도 불미스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저 역시 책임지겠습니다."

-그렇다면 프로기사들이 이번 동양생명배에 많이 참가했다는 얘기인가요?

"참가했는지 안했는지 실명이 아닌 아이디로 바둑을 두는 대회인 이상 그건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도 평소에 타이젬에서 바둑을 자주 두는 편이고 실존인물은 알 순 없으나 바둑 수준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프로급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동양생명배가 자격에 관계없이 타이젬 회원(9단)을 대상으로 한 '회원대회'이고, 더군다나 대회직전까지 한국기원에서 주관하기로 합의한 바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프로로 짐작되는 회원도 참여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까닭에 제가 상임이사회에서 책임론을 분명히 밝힌 것이지요."

-상임이사회의 분위기도 엄중처벌 쪽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은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더 이상 사태를 확대하거나 악화시키지 말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사장님의 뜻도 그러하셨고요. 이 정도만 전하겠습니다."

-그럼 조국수님께서는 이번 동양생명배 논란의 핵심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주관료를 받고 못받고의 문제 이전에, 프로대회냐 아마대회냐의 구분 이전에, 프로기사의 존재를 인정하니 안하니의 논란 이전에 한국기원이 급변하고 있는 시대의 조류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넷바둑의 속성과 문화를 좀더 깊이 파악하고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한국기원이 바둑보급과 발전에 지렛대 역을 해온 것이 사실이고 그 공 또한 지대하나 이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다변화 다양화하는 시대에는 상호 협력적인 코드를 생각해야 합니다."

온라인바둑에 거는 기대감

-조국수님께서는 지금도 세계적인 토너먼트 기사로 대회 일선에서 맹활약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굳이 인터넷바둑사업에 뛰어드신 이유가 있었는지요?

"글쎄 이런 대답이 답이 될지 모르겠군요. 전 80년대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일 때 앞으로 바둑은 세계화의 시대가 올 것이고 그때는 나 혼자 힘으로는 국제무대에 대응하기 벅찰 것이라는 생각을 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바둑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레저, 취미의 발달로 바둑은 점차 사양화 추세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재미있는 게 널려 있는 세상입니다. 이 와중에 바둑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만났다는 건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넷바둑은 그 잠재성이 무한하다고 봅니다. 바둑 부흥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터넷이라 확신합니다. 이것이 제가 타이젬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인터넷바둑 사업에 뛰어든 첫 번째 이유입니다."

-누군가 이번 동양생명배 사태를 '성장통'으로 표현했더군요. 앞으로도 기존 오프라인 양식을 뛰어넘는 기발하고 색다른 온라인기전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피차 소모적인 성장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나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전 한국기원 소속 기사이며 상임이사입니다. 타이젬이 동양생명배를 기획할 때 무조건 타이젬 입장에 서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러한 색다르고 신선한 기획에 바둑팬들은 즐거워 할 것이고 특히 온라인바둑 열기를 붐업시키는 데 일조하리라 확신했습니다. 다만 한국기원이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생각 못했지요. 동양생명배는 타이젬 회원을 상대로 한 이벤트였으니까요….
그렇지만 한국기원이 예민한 반응도 보였고 타이젬 회원 중에는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도 있을 수 있을 것이기에 대회 발표 직후 한국기원과 주관 협상을 벌였던겁니다."

-한국기원이 동양생명배에 대한 인허를 번복한 건 '프로기사 존재에 대한 불인정'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저도 기사입니다. 그런데 '타이젬 9단'에게 자격을 주는 동양생명배의 대회요강이 기사에 대한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면 제가 먼저 반발했을겁니다. 전 기사의 존재가치를 그런 식으로 찾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타이젬 9단을 달라고 해서 대회예선에 직행하는 것이 가치를 세우는 일입니까? 흥미적인 요소를 한껏 돋보이게 기획하는 이벤트성 대회와 프로기사 실명으로 뛰는 정규대회 등등, 담는 그릇에 따라 가치를 따져야지요.

생각해 보세요. 흑백TV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라디오의 가치가 완전히 몰락할 것으로 예견했습니다. 컬러TV가 선을 보였을 때도 이제 영화시장은 별볼일 없을 것으로 예단했지요. 물론 잠시 침체기를 거친 적은 있었습니다만 어디 그랬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진정 가치 있는 존재는 어느 시대에서나 가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접근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공감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상호 협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역할 모델을 찾아야겠지요."

-오늘 정말 많은 것을 '복기'하게 하는 말씀이로군요. 어려운 인터뷰였을 텐데 허락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제가 한 말들에 오해가 뒤따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TYGEM/정용진 sodol@tygem.co.kr
TYGEM / tyg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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