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가 돌아왔다. 2003년 말에서 2004년
초에 걸쳐 조혜연과 박지은에게 줄줄이 깨져 순식간에 무관으로 전락한 루이 9단이 1년만에 잃었던 여류명인전 탈환에 성공하며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1년전 대구에서 잃었던 여류명인을 똑같이 대구에서 되찾아온 루이 9단.
그녀를 결승2국이 끝난 다음날인 1월 5일 한국기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때마침 제2회 도요타덴소배 결승1국(이세돌-창하오)을
열심히 검토하고 있어 인터뷰는 이 대국이 끝난 뒤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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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9단(오른쪽)이 서봉수 9단과 함께 도요타덴소배 결승1국을 검토하고 있다. 루이 9단은 평소에도 검토하는
것을 상당히 즐기는 몇 안되는 프로기사이다. |
-우승 축하한다. 어떤가. 1년만에 다시 찾아온 소감이.
운이 좋았다. 조혜연 5단이 1국을 두던 날 심한 감기에 걸린 상태라 컨디션이 무척 나빠 보였다. 2국에서는 내내 어려웠다.
승부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만 조혜연 5단이 실수를 범해 싱겁게 이겼다. 초읽기에 몰린 탓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은가. 1년 전, 타이틀을 빼앗겼을 때 아픔과 심정을. 게다가
이창호한테도 심심치 않게 이길 정도로 강한 루이 9단이어서 더 충격이 컸었다. 당시 심정을 생각나는 선에서 들려달라.
2003년 11월에 조혜연 5단한테 여류국수전을 먼저 빼앗겼다. 결승1국을 졌을 때 상당히 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를
이기기란 무척 힘든 일이구나'고 새삼 느꼈다. 그래도 아직 결승2국에서 만회할 수 있으니 열심히 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국마저도 져 여류국수 타이틀을 빼앗겨 버렸다.
그리고 나서 조혜연 5단에게 또 다시 여류명인전을 잃었다. 그것도 2 : 0으로. 그 사이에 박지은 5단한테도 정관장배
준결승에서 패해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별로 슬프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덤덤했을 뿐이다.
다만 다시 이들과 대국하고 싶은 마음은 강하게 가졌다. 그리고 한가지 소원을 이뤄 여류명인은 찾아왔다.
 |
-조만간
여류국수전에서도 조혜연 5단과 대결하지 않는가.
그렇다. 승자 결승에서 조5단과 맞붙게 되어 있는 데다가, 패자조 결승에는 박지은 5단이 올라와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두 사람과 번갈아 겨룰 수도 있는 상황이다.
-누구와 최종 결승전을 벌이고 싶은가.
둘 다 붙고 싶지 않다. 조혜연 5단이 더 싫다. 너무 세기 때문에….
-조혜연 5단과는 그 동안 꽤 많이 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결승2국을 벌인 날 조혜연 5단 모녀와 저녁을 먹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혜연 어머니가 이날
둔 바둑까지 저와 딸이 23판을 그 동안 뒀다고 들려줘 화들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많이 뒀나, 싶었다.
그런데 조혜
|
연 5단은 24판이라며 어머니한테 한판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중국선수들을 포함해 공식대국에서 가장 많이 둔 셈이다.
-그렇다면 조혜연 5단과 둔 첫 대결을 기억하는가.
물론이다. 내가 한국에서 활동하기 전인 97년에 보해배에서 만났다. 그 당시 나는 미국대표로 출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전에서 조5단과 공식대국으로 처음 뒀고 내가 이겼다. 그리고 2년 뒤에 삼성화재배 예선전에서 그녀는 나를 꺾었다.
그때 앞으로 상당히 '강해질 선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2003년 겨울에 여류국수전 도전권을 따낸 그녀는 확실히 강해져서
내 앞에 나타났다.
-한국에서 활동한 지 꽤 지났다. 언제부터 활동했고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지
알려달라.
99년 4월 9일부터 활동했다(그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활동하기를 바란다.
-단체전으로 바뀐 정관장배에 중국 대표로 출전했다. 한국에서 활동한 이후로 처음
중국대표로 나선 셈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선택한 사항이 아니다. 한국기원과 중국기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다만 중국기원에서 선발전 없이 출전권을 준 점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 단체전인 만큼 중국사람인 내가 중국대표로 나갈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 중국이 우승하길 간절히 바란다.

▲ [자료 사진] 루이 9단(왼쪽)과 조혜연 5단이 여류명인전 결승1국을 두고 있다. |
-이번 정관장배에서 드러났듯이 아직까지는 한국 여성들이 중국에 비해 좀 밀리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다. 컨디션이 많이 좌우하는 게 바둑이다. 게다가 조혜연 5단이 이번 선발전에서 떨어져 한국으로선 전력 손실이
크다. 만약 그녀가 참가했더라면 중국은 우승을 장담하기 어렵다. 또 그녀가 빠졌어도 중국이 조금 앞설 뿐이지 남은 3차전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박지은이 있어서….
-요즘 잘 나가는 이세돌과 최철한을 도요타덴소배와 잉씨배 결승 전망을 곁들여
들려달라.
전망은 늘 어려운 일이다. 이세돌-창하오의 도요타 결승전은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것이라 생각한 정도다. 분위기로는 이세돌
9단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세돌은 무척 강한 선수다. 그는 천재성이 강하고 컨디션만 최상이면 어느 누구와도 겨뤄
이길 강자다. 몇 년전 치른 후지쯔배 결승전에서 느꼈던 점이다.
1 : 1이 된 잉씨배는 정말 모르겠다. 새로운 출발이다. 창하오와 최철한 둘 다. 이세돌과 최철한은 둘 다 전투를 즐기면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이세돌은 더 강한 싸움을 추구하는 편이지만, 최철한은 전투를 하다가도 한발 물러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이창호는 여전히 부동의 세계1인자
-아직도 이창호를 세계 최강이라고 말하는 편이다. 이세돌이나 최철한이 이창호와
대등하다고 보는가.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창호처럼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한 선수는 한명도 없다. 좀더 지켜볼
일이다.
-루이 9단도 최철한 9단처럼 이창호 9단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역대
전적에서 6승 2패이던데, 지난해에는 전자랜드배서 이창호를 꺾었다. 왜? 이9단에 강한 것인가.
나도 믿을 수 없다. 하하하. 너무 운이 좋은 덕분이다. 이기고도 늘 진짜 이겼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창호와는 두는
자체가 행복할 뿐이다. 그가 세계1인자이기 때문이다. 한 동안 둘 기회가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지난해에 모처럼 한판을
두게 되어 정말 기뻤다. 3년만에 만끽하는 즐거움에 이긴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그런데 반집으로 승리를 거둬 기쁨이
더욱 컸다.
-중국이 세계대회에서 큰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우승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실력적으로는 몇 차례 우승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너무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우승컵을 계속 놓치고 있는
듯 싶다. 편안하게 둔다면 오히려 쉽게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본다.
-2세에 대한 계획은 없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밝힐 수 없다.
-한국에 오면서부터 한국말을 꾸준히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쓰기, 말하기,
읽기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게 무엇인지. 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지.
요즘 경희대학교 방학특강을 듣고 있다. 재미는 있는데, 오전에 공부한 것을 오후가 되면 다 까먹어서 속상하다. 쓰기는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어 잘 못한다. 바둑 내용이 실린 기사를 읽거나 바둑계 사람들하고 얘기하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바둑과 관련 없는 신문기사를 보기는 어렵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과는 말이 거의 안 통한다.
-끝으로, 올해 목표를 말해달라.
(주먹을 힘차게 치켜올리며) 중국 정관장배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