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바둑의 발견2」 나왔다!
박사 프로기사 문용직 5단의 역저
2005-10-25 오후 5:20:00 입력
| 바둑은 변해 왔다. 문화의 영향에 의해서, 게임의 논리에 의해서, 인간의 심리에 의해서…. 그 요인들이 모여서 관념의 모험을 이루었다. 그 모험은 가설과 이론, 실천으로 나타났고, 그에 힘입어 2000년 동안 바둑은 진보해 왔다. 17줄 바둑판이 왜 19줄로 정착되었는가? 반상(盤上)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한 판의 바둑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신포석 혁명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새로운 바둑 패러다임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권위(權威)와 권력(權力)은 어떻게 유지되고 도전 받는가? 학문과 바둑을 겸비한 저자 문용직 5단은 전작(前作) 『바둑의 발견』(부키, 1998)에 이어 엄격한 과학적 논리와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종횡으로 구사하며, 바둑 자체의 게임 논리와 바둑에 반영된 사회 문화적 요인, 그리고 바둑에 투사된 인간의 본능적 심리와 지적 사고를 분석하여 바둑의 본질을 규명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특징: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만, “이 책은 7년 전의 『바둑의 발견』과 비교해서 약간 더 관념적인 느낌을 줄 것이다. 당연하다. 난 변했고, 그 변하는 방향은 좀더 관념적인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바둑을 보는 눈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그 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저자는 자평(自評)한다. (본문 5쪽) 1958년 중국 하북성 망도현(望都懸)에서 출토된 AD 182년의 석제 바둑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바둑판이 17줄이었기 때문이다. 17줄 바둑판은 왜, 그리고 어떻게 19줄 바둑판으로 변화되고 정착되었는가? 저자는 ‘19줄 바둑판의 인식(認識)’을 바둑의 본질을 규명할 키워드로 간주하고, 1) 사회, 역사적인 맥락과 2) 게임 자체의 논리 두 측면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그래서 그들의 경우에는 바둑판이 17줄이든 19줄이든, 또는 15줄이든 21줄이든, 어떤 형태이든 상관이 없었다. 바둑은 우주적 질서와 세상 이치를 반영한다는 비유적 관념에 머물고 있는 한, 오로지 부분 전투의 합으로서의 바둑, 사활(死活)에만 치중하였을 뿐, 반상에 국한된 바둑만의 게임 논리는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17세기 도사쿠 이후의 일본인들은 “세상의 이치가 그대로 반상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상에는 반상만의 세상이 있다. 바둑은 그냥 게임일 뿐이다. 세상사(世上事)가 적용되는 그런 곳이 아니다.”(본문 19쪽)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한 이해에 입각하여 그들은 착수교대의 원칙과 바둑판은 19줄이라는 두 조건에서 도출되는 이론적 설명을 추구할 수 있었고, 마침내 포석이나 세력, 두터움 등 바둑의 게임 논리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중국 한대(漢代)의 17줄 바둑판이 19줄 바둑판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아마도 심미적(審美的)인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이겠지만(본문 31쪽), 그 후로 15줄, 17줄, 21줄 등의 정방형은 물론이고 그 외의 여러 다양한 모형의 바둑판(귀가 없이 변과 중앙만이 존재하는 뫼비우스의 띠 형, 귀도 변도 없이 중앙만이 존재하는 정육면체 형이나 둥근 구(球) 형 등)이 가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19줄 정방형(19×19) 바둑판으로 귀착된 데에는 이 형태가 가장 흥미 있는 바둑 ‘게임’이 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증명하고 있다. (본문 153-190쪽 참조) “왜 돌의 자유가 중요한가? 자유를 권력이라고 하자. 권력이 큰 만큼 선택은 자유롭고, 선택이 자유로운 만큼 재미가 크다. 바둑은 대국자의 실력 차이가 큰 게임인데, 착수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을수록 대국자는 자신의 실력을 잘 드러낼 수 있다. 모든 착점은 최대한의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돌의 효율이 높아지고 승부에 유리하다.” (본문 164쪽) 17세기 일본에서 바둑의 게임 논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이나 조선(순장바둑)에서와 같이 반상에 4개나 16개의 돌을 미리 배치하는 사전배석제와는 달리 흑1의 첫 착수가 이루어지는 자유포석제가 성립되었다. 착수가 자유로운 자유포석제는 사전배석제에 비해 불확실성이 높고, 따라서 그만큼 게임으로서의 흥미는 배가된다. “고급의 실력자는 하수와 게임을 할 때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이길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불확실성이 높은 규칙을 선호한다. 집단도 그러하다. 같은 게임이라도 불확실성이 높은 규칙을 보다 더 선호한다. 왜냐? 그게 훨씬 큰 재미를 주니까. 집단은 불확실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경향을 갖게 된다. 자유포석제는 사전배석제에 비해 불확실성이 훨씬 높다. 따라서 집단의 입장에서 볼 때 즐거움이라는 효용이 높아진다. 집단이 선택할 만한 것이다.”(본문 240쪽)
그리하여 반상 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혁명, 새로운 관념의 모험이 시도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바둑의 위기로 귀결될 것이다. 프로들이 새로운 시도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래서 “프로들이 이끌어 온 바둑의 세계가 하나의 형이상학적 현실로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마추어들은 프로를 지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이 프로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아마추어들은 그들의 이상향을 잃어버릴 것”(본문 70쪽)이다. “로버트 노직(Robet Nozick)이 우려한 대로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정책은 장기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더욱 어려움에 빠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본문 8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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