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조남철 선생의 7가지 업적
조남철 선생 7월 2일 노환으로 타계
2006-07-02 오후 9:55:32 입력
당시 한성기원을 설립하시며 선생은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원칙으로 삼으셨다. ‘기도보국(棋道報國)'의 원대한 뜻을 품고 출범한 한성기원이었으나 이후 바둑을 건전한 국민오락으로 보급하기 위한 노력은 많은 난관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한성기원은 이후 1948년 조선기원으로, 이듬해 대한기원으로 개칭하였으며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에서 1969년 오늘날의 재단법인 한국기원에 이르기까지 4차례나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968년 종로 관철동에 한국기원 회관이 건립되기까지 무려 16회나 이전을 거듭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한국 현대바둑의 여명기를 지나 발흥하기까지 선생께서는 일생을 바둑계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헌신했다. 선생께서 우리 바둑사에 남기신 빛나는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나 그 중 각별히 주목할 만한 몇몇을 정리해 보았다. * 한성기원에서 사단법인 한국기원까지 1945년 11월 한성기원 설립을 시작으로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발족하기까지 선생께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원의 창설을 목표로 일로매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부산 피난지에서조차 대한기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환도 후 대한기원을 발전적 해체하고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탄생할 수 있었다.
* 단위 결정 대회 1950년 6월 대한기원에서 최초의 단위 결정시합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아직 ‘전문기사'라는 개념이 자리잡지 못했던 당시 처음으로 전문기사를 인정하고 그 단위의 서열을 정한다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대회 결과 선생(3단)과 함께 13명의 초단이 탄생하여 우리나라에도 전문기사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955년 3월 제1회 한중(대만) 바둑교류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대회였다. 당시 선생은 민영현, 김봉선, 장국원 등과 함께 대만에 원정하여 압승을 거두고 귀국, 전 국민들의 가슴에 뜨거운 자긍심을 심어 줬다. 전후(戰後) 혼란의 시기에 열렸던 이 대회는 민심수습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 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시범대국을 보였던 경무대 대국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1956년 오늘날 국수전의 효시인 국수제1위전이 탄생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기전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선생께서는 초대 우승 이후 9기 대회까지 무려 9연패를 달성하여 ‘무적의 조남철 시대'를 구가했다. 초대 명인, 최고위전 7연패 등 요즘과 달리 기전의 수가 보잘 것 없는 시대였음에도 생애 통산 30회 우승을 기록, 후진 김인 9단이 등장하기까지 우리 바둑계 제1의 강자로 군림했다.
일본의 명문 기타니 도장에서 수학하셨던 선생께서는 일본의 선진 바둑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후진들의 일본 유학을 적극 지원하심으로써, 오늘날 우리 바둑이 극일(克日)을 통해 세계 최강의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선생의 노력으로 김인,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조치훈 등 뛰어난 젊은 기재들이 일본 유학을 통해 선진 일본바둑의 기술을 습득, 장차 바둑계의 일세를 풍미하는 거인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 한일교류 60년대는 일본이 현대바둑의 종가를 자처하며 최고의 기술과 바둑환경을 과시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일본은 후발국인 우리나라를 되외시하고 중국과의 교류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선생께서는 비록 굴욕감이 없지 않으나 장차 극일을 위해서는 선진 일본바둑을 배워야 함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시고 한일 바둑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하셨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 해 12월 서울 한국기원에서 제1회 한일 대학생 친선바둑대항전을 시작으로 66년 8월 한일 고교생바둑대회, 67년 한중일 동양3국 고교생대회, 69년 한일 프로교류전까지 선생의 노력은 한일 양국 간 활발한 바둑교류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54년 선생의‘위기개론(圍碁槪論)'이 출간됨으로써 한국식 바둑용어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오늘날 바둑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흔히 사용되는 바둑의 용어들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 용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후 선생께서는 행마의 기초, 행마의 급소, 정석정해, 포석의 요령 등 우리 바둑 출판물이 전무하던 시절 주옥같은 저서들로 국내 바둑팬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선생의 저서들은 일본 무단 복제판이 판치던 국내 바둑 출판시장에 ‘토종 바둑서' 출간 붐을 일으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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