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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의 북한바둑행사 참관기④

8월 24일, 본격적인 대국을 시작하다

2006-09-21 오전 10:58:27 입력 / 2008-01-25 오후 4:32:31 수정

4월, 유럽각지의 바둑계 소식을 들려줬던 한상대 교수가 이번에는 북한 주최 '제2차 세계무도대회의 바둑 소식'을 전한다?[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 바로가기].

한상대 교수는 호주 팀 단장 겸 선수로 8월 22일에 북한에 들어가게 됐다. 29일까지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 한교수. 과연 북한 바둑행사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타이젬에서는 한상대 교수의 북한 방문기를 차례로 연재한다. 북한 방문기는 타이젬 칼럼 '한상대의 지구촌 바둑 기행'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8월 24일(목)
오늘은 바둑 1회전이 시작 하는 날이다. 아침 9시. 나의 첫 상대는 권미현 선수(81년생). 여자 중 맏언니라고 한다. 국제대회 성적이 좋은 선수다. 미현이가 나보고 “혹시 이하진을 아세요?” 하길래 “내가 하진이를 금년 초부터 내 바둑영어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고 지난 3~4월에는 유럽 6개국을 데리고 여행했다.” 고 하자 부러워한다. 하진이가 현재 잘나가는 프로라고 했더니 “아! 프로가 됐습니까?” 한다. 자기네가 세계 페어대회 결승에서 남한의 김동섭-이하진 조를 누르고 우승했다고 한다. 나는 이 대국에서 싸움 바둑으로 난전을 펴 봤으나 고비마다 수 읽기가 정확한 미현이가 이겨 간다.

북한의 바둑 선수 명단은 리봉일, 박호길, 조대원, 박철만, 리광혁, 안선일, 박성림, 김성원과 여자 선수는 조새별, 권미현, 황경주 등이다. 그들은 항상 중앙역 근처에서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주로 책에서 기보를 공부하거나 자기네끼리 둔 바둑을 공동 검토 한다고 한다. 3개월에 한 번씩 '기술 혁신 경기 대회'란 이름의 바둑대회를 연다고 한다. 내가 1993년 세계 대회에서 당시 14살의 문영삼군을 만나서 졌는데 안 보인다. 관계자가 “지금은 대학생인데 이번엔 출전 안했습니다.” 한다.


▲ 권미현 선수와 함께.

■ 북한 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거둔 성적

1992년
제14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문영삼
15위
제4차 세계여류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최은하
8위
1993년
제15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문영삼
6위
1996년
제18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최명선
7위
1997년
제19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문영삼
3위
1998년
제20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문영삼
5위
제7차 세계여류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조새별
준우승
1999년
제21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리봉일
3위
2000년
제22차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박호길
준우승
제11차 국제아마추어페어선수권대회
림현철
권미현
우승
제1차 국제인터네트친선바둑경기대회
박행운
준우승
2004년
제15차 국제아마추어페어선수권대회
조새별
리봉일
우승

중국 선수들을 만나면 북한 선수들은 필사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를 만난 자리에는 웃음이 넘친다. 같은 민족이고 바둑도 약한 아저씨들이고 게다가 지면서 선물까지 주니까. 북한 선수들이 겸손하고 어른을 어려워해서 기분이 좋았다.


▲ 모란봉에서 본 평양. 삼격형 모양의 건물은 유경호텔(105층)이다.

나는 1회전을 11시쯤 끝냈다. 2회전이 오후 3시라 4시간이나 남는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택시로 모란봉엘 갔다. 서울로 치면 남산에 올라간 셈이다. 우리 방문 스케줄에는 없는 곳이다. 최승대- 을밀대까지 올라 가니까 대동강을 중심으로 발달 된 평양 중심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대동강 한 복판에 있는 능라도도 한 눈에 들어 온다. 모란봉에 일반 시민들이 눈에 안 띄는 것이 좀 이상했다.


▲ 능라도.

▲ 최승대.

내려오는 길에 안내가 우리를 모란봉 호텔에 데려간다. 고급이라고 자랑하며 식당, 객실까지 보여 준다. 내 눈엔 규모도 작고 우리나라 장급 모텔 수준 정도로 보인다. 하긴 외국인 출입이 적으니까 큰 호텔이 필요 없겠지. 점심은 조련계가 운영 하는 은반식당이란 곳에 갔는데 독방에서 먹는 고급 식당이다. 랭면과 개성 보쌈 김치로 유명한 식당이라고 한다. 랭면은 200그램짜리와 3백 그램짜리가 있는데 3백 그램은 쟁반 같은 그릇에 준다. 내가 냉면을 워낙 좋아해서 욕심에 3백 그램을 시켰는데 다른 음식을 더 시킨 게 있어 도저히 3백 그램은 못 끝내겠다. 그 다음부터는 항상 2백 그램을 시켰다.


▲ 뒤에 보이는 것이 을밀대.

두대의 택시 운전사들도 들어 와서 먹으라고 내가 권 하자 일행이 약간 당황해하며 사양한다. 자기네 기준으로는 비싼 식당이라 그러는 걸 눈치로 알겠다. 내가 끝까지 들어 오라고 하자 감사하다며 옆방에 들어와 냉면을 시킨다. 내가 종업원에게 불고기도 갖다 주라고 했다. 이 곳에서 불고기 2인 분이 미화 6달러(6천원)이다. 나는 모처럼 회랭면을 시키고 보쌈김치, 과일 어름 보숭이(아이스크림)를 시켜 먹었다. 그런데 회랭면의 회가 홍어회가 아니고 북어 무침이다. 이걸 여기선 '동태 회'라고 부른다. 맛은 있었다. 우리는 평양 시내로 나와 락원 거리를 지나며 락원 영화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것도 보고 개선문과 천리마 동상을 거쳐 경기장으로 돌아 왔다. 우리만 평양을 실컷 본다는 사실이 너무 옹골졌다.

나의 2회전 상대는 같은 호주 팀의 진박사다. 우리는 웃으며 즐겁게 대국을 끝냈다. 진박사는 전공이 전자(Electronics)이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1970년에 호주로 유학을 갔다. 공부를 끝내고 호주연방정부 연구원으로 현재 30년이 넘게 근무 중이다. 그는 자기 부친이 이북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호주 교민 중 그를 '빨갱이'라고 매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그를 비난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아버지가 북한에 계시다는데 그 사람이 북한에 가는 걸 시비 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옹호해 준 일이 있다.


▲ 1회전에서 권미현 선수와 대국 중.

나는 그를 75년 멜본 탁구대회 2회전 상대로 만난 것이 첫 대면인데 이번엔 31년 후에 2006년 평양 바둑대회 2회전 상대로 만났다. 그는 나와 함께 호주 바둑협회 정기총회에 출석하는 단골 멤버다. 영어 때문에 다른 한국 바둑인들이 거의 이런 회의에는 안 나온다. 내가 호주 바둑협회(AGA) 회장(93~95)을 지낸 후 그도 부회장을 거쳐 회장을 지냈다. 호주만 한국인 바둑 회장을 두 번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진박사 부친은 돌아가시고 이복 형제가 두 명이 있어 이번 방문에도 그들을 찾느라고 여념이 없다. 남한에는 남자 형제가 없다고 한다. 그는 자기 동생들을 만나고 부친 산소에 성묘하러 다시 북한에 올 계획이다. 북한 바둑인들도 분단의 비극을 통감하며 자기네도 진박사 형제들을 찾아 주는데 최선을 다 할 것을 약속 한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한반도에는 진박사와 같은 이산 가족이 천만명이나 발생했다.

“차라리 삼팔선을 베고 누워 내 허리가 두 동강이 나는 한이 있어도 내 조국이 분단 되는 것은 차마 볼 수가 없소” (백범 김구 서신 중에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서 식사도 하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특히 아일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남아연방 등 영어권 선수들과 친해 졌다. 저녁 늦게 조선 바둑회 간부들이 나타나 담소도 하고 같이 놀았다. 우리가 면세점에서 사간 미제 말보로 담배가 인기였다. 북한 남자는 다 담배를 태우는데 다행히도 담배를 피는 여자는 한 명도 못 봤다. 다른 동구권 국가에서는 여자들도 담배를 많이 피웠다.

전서기장과는 당구를 한 판 쳤는데 포켓볼 밖에 없어서 처음 쳐 보는 내가 고전을 했다. 탁구장에도 갔으나 문을 닫았다. 밤 12가 다 되어 누가 화면반주음악실(노래방)에 가자고 하자 전서기장이 안내에게 가서 허가를 얻겠다고 카페를 나간다. 자기가 지위도 더 높은데 왜 안내에게 허가를 받으러 갈까?

호텔 지하 노래방에는 큰 홀이 있고 대형화면 외에도 TV화면 몇개가 더 있다. 따로 작은 방이 없다. 손님이 더 오면 어떻게 하지? 아는 노래를 찾으려고 하는데 다 모르는 노래뿐이다. 신사장이 용케 먼저 계몽기가요 속에서 '홍도야 울지 마라'를 찾아서 부르기 시작 한다. 그 후 나에게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신청해 놓고 부르라고 한다. 내가 부르는데 모르는 다른 일행이 들어 오더니 나와 같이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좀 어색했으나 그들과 '찔래 꽃'도 같이 불렀다. 북한에서는 흘러간 옛 노래를 한 동안 금지 시켰다가 일제 하에서 국민을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하여 계몽기 가요라는 명분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침 이슬'은 부르다가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북한에서 몇 번 들은 노래 중 '심장에 남는 사람' 이 있다. 요즘 인기곡이라고 한다. 나는 가사를 적어 달라고 했다.


<심장에 남는 사람>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함께 있어도 기억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내 방에 TV가 고장이나 며칠째 못 보고 있다고 했더니 안내원이 큰 일이 나 난 것처럼 왔다 갔다 한다. 그 날 밤 중에 내 방에 호텔 여자 종업원이 다른 TV를 들고 와서 바꿔 주고 간다. 구형 TV라 꽤 무거운 데 여자가 들고 다닌다. 통역 순영 양도 우리가 바둑을 두려고 경기장에서 바둑세트를 빌렸는데 걸 어서 거의 10분 거리인 호텔까지 자기가 들고 왔고 진박사 가방도 꽤 무거운데 자기가 들고 다닌다.




TYGEM /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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