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타
바둑판에 내 얼굴을 그린다
농심신라면배 1차전 3국 뒷 이야기
2006-09-15 오후 1:58:40 입력
| 한국기사가 출전하지 않은 날이라 마음이 편하다. 9월 14일 농심신라면배 1차전 3국, 펑첸과 하네나오키 대결이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한국과 일본 기사간의 대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검토실의 분위기. 위빈, 뤄시허, 창하오가 차례로 검토실에 모여든다. 검토에 열기를 보인다. 역시 프로기사는 바둑을 둘 때가, 연구할 때가 가장 멋지다. ^^ 대국은 한창. 두 기사는 엎치락뒤치락하며 피말리는 승부를 계속한다. 대국이 끝날 무렵 기자는 대국장 문 밖에 서 있다. 중국 기자들이 많아서 늦게 갔다가는 사진을 담아 낼 수 없기 때문. 1년전이던가. 창덕궁 부용정에서 이창호와 옥득진이 왕위전 도전기를 둔 적이 있는데 이해찬 총리가 대국장을 방문했다. 이해찬 총리와 함께 저 멀리서 까만 구름이 몰려 오고 있었는데 많은 수의 경호원들과 취재기자들이었다. 왕위전 이후 처음으로 많은 취재기자들이 있는 곳에 기자가 있는 것이다.(왕위전보다 수가 많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고 달려와 펑첸이 이겼다는 기사를 올리고 한국 바둑관계자 및 기자단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15명 정도되는 일행은 중국식 샤브샤브를 하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중국에 와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식사였다. "부산에서 최철한을 봅시다!"라는 구호와 함께 건배를 했다. 최철한은 알까 모르겠다. ^^ 중국으로 와 최철한의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식사와 함께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쯤. "정연주 씨, 이리로 좀 와봐요. 술을 잘 못하나 봐? 술을 못 마시는데 자꾸 준다고 마시면 안되네.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야지. 무엇이든 자신의 페이스를 잘 조절하면 성공할 수 있다네." 김인 국수다. 조남철 선생 이후 한국 바둑을 이끌어 주신 김인 국수. 1943년생이신데 정정하며 바둑대회가 있는 날이면 항상 한국기원에 와서 바둑을 검토한다. 사실 마주보고 앉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다. 김인 국수의 업적을 알기에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감사해요. ^^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말, 바둑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바둑을 좀 둔다지? 얼마나 두나? 아마추어 3단정도라고 들었는데." "예, 그정도인데요. 잘은 못 둡니다." "3급이라 했으면 내 이런말을 안 할테지만 3단이라고 하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말은 어찌 보면 바둑하고도 관련이 있을 듯하네. 바둑에 사람의 인생이 다 들어가 있다는 말을 들어 봤는가. 바둑을 바둑판에 둔다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과 같네. 자신의 얼굴을 그리면서 치사하면 안되네. 이기는 것도 좋지만 내 얼굴을 그리는데 치사해 지면 안되지 않나. 치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바둑을, 이길 수 있는 바둑을 둘 수 있다네. 어릴적부터 이창호류, 고바야시류, 조훈현류 등 여러가지 기풍들을 많이 공부를 하지.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야하네. 바둑을 두다보면 공부했던 내용들이 자꾸 떠올라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서 생각하지 않고 공부한 내용대로 두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이건 쉬운길을 선택하는 것이라네. 그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지라도 어려운 길까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네. 자신의 얼굴이 남의 얼굴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창호가 왜 인정을 받고 세계정상에 서있는 줄 아는가. 끝까지 반집이며 한집이며 최선을 다해 어려운 길까지도 생각을 한다네. 자신의 얼굴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지." 사실 어려운 이야기였고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치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바둑을, 이길 수 있는 바둑을 둘 수 있다.'였다. 생각을 해본다. 자신이 생각해도 치사한 바둑을 둔 자는 부끄럽다는 생각에 그 바둑은 복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물론 승부사라면 치사하든 정직하든 이긴지가 강한 것이다. 하지만 이왕 기록되고 기억할 승부라면 정직한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 인터뷰를 하다보면 기사들이 "부끄럽지 않은 바둑을 두고 싶다." 혹은 "후회없는 바둑을 두고 싶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 "바둑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아서 이기고도 기분이 별로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정직한 바둑을 두고 싶은 것이다. 명국. 분명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다. 하지만 명국을 창조해 낸 승자와 패자는 분명 치사한 바둑이 아닌 정직하고 또 정직한 바둑을 둔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얼굴을 책임을 져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난 승부사가 아니다. 바둑을 즐겨두는 아마추어다. 바둑판에 가장 정직한 얼굴을 그려보고 싶다. 걱정없이, 결과에 게의치 않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나는 바둑이 있어 행복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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