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개성 의주 단동을 거쳐 북경 사행길을 여섯번이나 다녀온 '조수삼'은 외이사(外夷史)를 남겼다. 조수삼은 조선후기의 문인들의 전(傳)에 자주 보이는 바둑의 고수다.
- 점성가들이 말하기를 별중 큰것은 땅(지구)의 열배, 백배라고 하지만, 지금 바라보면 단지 점일뿐이다. 만약 사람이 그 별에서 땅을 내려다 보면 또한 그렇게 보일것이다. 하나의 바둑돌이나 탄환처럼 말이다(碁子彈丸而上耳). 그러나 경전을 살펴보고 도면과 책을 상고하면 복희의 만국과 우공의 구주(九州)가 빽빽히 사,방 만리가 된다. 하물며 풀 한포기 없는 북극과 띠풀옷을 입는 남방 사이에 황무지와 섬들이 늘어서 셀수 없이 많으니 바둑돌과 탄환이란 말이 틀린말이 아니다(側所謂碁子彈丸九者).
조수삼은 천재였으나 시대의 인재도 은자(隱者-down-sbift)도 아닌 중간자적 입장에서 진퇴를 강요받는 고단의 삶을 살았다.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성리학의 세계에서 천체 운행의 비밀을 엿본 이단(?)의 삶은 결코 평탄치 못했을 것이다.
진퇴불능을 육조어록(六祖語錄)은 만리무점(萬里無店)이라 한다. 만리길에 주막하나 없고 눈은 내린다는 것이다. 막막하고 답답한 절망에 직면한 화두(話頭)다. 이 화두를 신라 사람 최치원은 하늘은 넓으나 물을곳 없고 날은 저물어 돌아갈 곳 없다(天廣莫問日暮何歸)라는 말로 살짝 비튼다. 별야(別野)를 떠돌던 자화상이다.
길없는 길, 문 없는 문을 백거이는 해저물고 눈까지 오니 술 한잔 어떠신지(漫來天欲雪能飮一盃無) 하며 마음껏 비웃는다.
만리무점이 선(禪)으로 아무리 포장이 되어도 속성은 삶의 고단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익현은 흑산도 유배지에서 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엄동설한에 죽은 어미옆에 붙어 있던 아이들을 기록했다. 파리한 아이들의 얼굴과 언 몸둥이가 차라리 차가운 별과 같고 한아이의 작은 손안에는 깨진 바둑돌이 막막하더라는 말이다. 백년전 흑산도의 그 추운 겨울을 살았던 그 아이는 무슨 이유로 손에 깨진 바둑돌을 들고 있었을까.
삶이 고단하기는 과거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2007년 정해년도 결코 만리무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서 고통과 비명의 파열음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한해의 끝에서도 영양가 없는 정치적 구호는 허무하고, 서해안 기름 사태의 아우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반상(盤上). 바둑 바둑인. 고통과 비명을 토하는 세상속에서 역정의 한해를 보낸 바둑계는 나름의 성과를 냈다하겠다. 사상 초유의 거대 기전(碁戰)인 바둑리그의 흥행과 전통의 기전인 명인전이 우승상금 1억의 기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후지쓰배 중환배의 재패와 엘지배 삼성화재배등 세계기전에서의 발군의 활약은 대단했다. 정상을 호시탐탐 노리던 중국의 기세를 꺽는 한편 일본은 주장 요다가 투덜(조치훈 장쉬등을 거론)거릴 정도로 아에 도전 욕구를 상실케 했다.
금년 한해 바둑계를 가장 고무시킨 일은 이세돌의 무차별적인 활약이다. 이세돌의 폭풍의 돌진은 조훈현 이창호로 이어지는 한국 바둑의 계보가 이세돌에게 와 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부침 없는 박영훈의 기량유지도 든든했고 신예 한상훈의 등장은 바둑계를 고무시켰다.
그리고 목진석의 90승 달성이란 기록도 의미가 있다. 한때 사대천왕으로 주목 받다가 주춤했던 목진석이기에 그의 부활은 바둑계의 즐거움이다.
이런 불꽃같은 반상의 전투 아래에서는 프로기전의 개혁을 놓고 뜨거운 논쟁도 있었다. 갈수록 좁아지는 바둑의 볼륨을 키우고 보다 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이끌어 내기위해서는 반세기를 고집해 오던 기전의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바둑의 주변에서 계속 되어온)이 프로들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설왕설래가 있지만 대의는 만년자격증(?)식의 프로제도가 컷오프제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한 사례로 볼때 바둑계의 지난 한해는 풍성했던듯 보인다. 그러나 내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세돌의 무차별적인 활약이 주류 언론의 외면을 받고 국내에서 두번째로 설치된 바둑학과가 신입생 유치에 고전(?)할 정도로 잔고가 바닥난것이 현실이다. 찾아 보기 힘든 기원, 떨어져 나가는 바둑교실의 원생, 재학생들보다 OB생의 참여가 두배나 많은 대학 바둑대회의 기형적 실상은 우려를 넘어 심각한 문제다.
이속에서 스포츠로 방향을 잡은 바둑의 진로도 답이 없다. 중국 개최의 아시안 게임의 한 종목이 되었다는 것외에는 아무런 가시적 무엇이 없다. 최소한의 협조국인 일본마져 별로 흥미가 없는 듯하다. 바둑의 스포츠화가 약이될지 독이 될지도 가늠되지 않는다. 어차피 바둑의 스포츠화가 대세라면 준비는 있어야 겠다. 자칫 비인기 스포츠들이 받는 천대와 수모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바둑팬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나부터 여덟살 먹은 딸에게 바둑을 가르켜야겠다. 바둑팬 한명이 주변의 한사람씩이라도 바둑을 인식시키자. 바둑필자들은 바둑의 가치를 높히고 프로들은 보다 헌신적이고 겸허한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바둑인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씩을 실천하는 내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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