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에 대입시켜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5월 31일에 바둑학회에서 개최된 상금제 도입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자로 초청되어 제 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제 의견을 청취하신 분들께서 전체 바둑계를 대상으로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망설임이 있었지만 바둑계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며 여러분들께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래 글은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지금 한국의 바둑계와 10년 전 영국의 축구계의 공통점
전세계 수많은 축구리그 중에서 가장 크고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라고 바로 대답했다면 당신은 축구 중독자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10년 전에 똑 같은 질문을 하면 어느 누구도 프리미어 리그가 최고의 리그라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프리미어 리그는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훌리건으로 대변되는 소수의 광적인 팬과 거친 태클이 다반사인 과격한 경기 스타일로 인해 외국선수들과 자국의 선수들조차 시선을 돌렸던 B급 리그였다.
축구 종주국으로 오랫동안 최고의 리그라고 자부했던 영국 리그가 잇단 악재로 B급 리그로 전락하자 자연히 스폰서들의 투자가 적어지고 리그의 규모가 작아졌다. 자연히 축구선수가 되려고 하는 지망생들마저 감소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축구종주국의 위상이 드높았던 영국리그가 ‘최악의 리그’로 낙인 찍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것이다.
뜬금없이 프리미어 리그의 문제점을 나열했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얘기이기도 하다. 이는 축구를 바둑으로 바꾸면 그대로 현재 바둑계의 문제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바둑팬, 스폰서들의 기전개최 기피. 이로 인해 프로 지망생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 현 바둑계의 모습은 신기하리 만큼 10년 전 프리미어 리그가 안고 있던 문제점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바둑계의 해결책을 찾아보기 전에 위기의 프리미어 리그가 선택했던 해결책은 침체의 늦에 빠진 바둑계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프리미어 리그의 개혁
프리미어 리그가 선택한 해결책은 리그 오픈을 통한 규모의 거대화와 각국의 최고 선수의 영입을 통한 경기력 향상이었다. 우선 프리미어 리그는 프리미어 리그의 대표적인 팀들을 자국 주식시장에 상장시켰다. 심지어는 멘체스터, 첼시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팀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리그의 규모를 크게 키웠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본은 최고의 외국 선수 영입에 사용했다.
각 국의 대표선수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집중되면서 자연히 재미있는 경기가 많아졌으며 자국의 축구팬들은 물론 전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또, 전통적으로 축구를 싫어했던 여성들도 최고의 축구스타들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레 축구팬으로 유입되었고 이것을 기폭제 삼아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 최악의 리그에서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탈바꿈했다.
최상의 경기력을 갖추기 위한 제도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프리미어 리그가 무분별하게 외국선수들을 영입하지 않고 최고의 외국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만든 ‘워크 퍼밋’ 이란 검증제도이다. 워크 퍼밋 이란 외국선수가 프리미어 리그에 뛰고자 할 때 반드시 인증 받아야 하는 일종의 노동 허가증 으로 자국의 국가대표경기의 70%를 참가한 선수에게만 프리미어 참가 신청 자격을 부여한 제도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이 걸림 장치를 통해 각국의 최고 선수들을 선별해서 영입했다. 또, 같은 식구가 된 외국선수에게 차별 없이 최고의 연봉을 주어 모든 외국선수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리그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의 변화를 짧게 정리하자면 프리미어 리그는 자국 리그의 오픈과 리그의 대형화를 통해 시장의 규모를 키웠으며 워크 퍼밋이란 기준을 만들되 워크 퍼밋을 통과한 선수에게는 차별 없이 대우함으로써 경기력을 최상급으로 키웠다. 이는 다양한 볼거리와 끊임없는 화제거리를 양산,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냈으며 자연히 세계 최고의 리그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벤치마킹
앞서 우리는 지금 한국 바둑계와 10년 전 프리미어 리그가 비슷한 처지였음을 같이 인식했다. 축구 인구가 줄어들 듯, 바둑 인구도 점점 노령화되면서 감소 하고 있다. 스폰서들이 축구에 투자하는 스폰서들이 적어지는 현상도 동일하다. 심지어는 축구를, 혹은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현상도 비슷한 것이다. 문제점이 동일하다면 해결방법도 동일해야 하지 않을까.
좁은 한국 시장만으로 바둑계를 되살리기란 한계가 있다. 한·중·일 3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서양의 바둑인구를 타켓으로 삼아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비로소 위기극복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즉, 10년 전의 프리미어 리그가 과감한 시장 개방과 외국 선수 영입을 통한 세계화 전략으로 최고 리그로 발돋움 했듯이 우리 바둑계도 세계화만이 살길이며 이 중심에 프로기전 오픈이 있다고 생각한다.
4가지 변화
바둑이 글로벌 스포츠가 되고 한국이 중심국가가 되면서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 | 첫째, 바둑계의 ‘워크 퍼밋’ 기준을 만든 다음, 기준을 통과하는 세계 모든 기사들에게 세계기전을 오픈 한다. 향후에는 프로급 아마츄어 에게도 문호를 개방, 전세계 대표 선수들이 한국 바둑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보유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둘째, 각국의 대표기사들이 참가하는 거대기전을 되도록 많이 개최한다. 이미 삼성화재배와 LG배는 부분적인 오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전면 오픈 및 상금제 도입를 통해 기전의 규모를 더 키우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국내 기전 중에서 총 규모 5억 이상 되는 기전 3개를(명인전, 전자랜드, GS칼텍스) 오픈전으로 전환하도록 하며 향후에는 1년에 약 10개 정도의 세계기전을 매달 개최하여 세계 초일류 기사들이 한국 바둑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이는 세계 최고 기사들이 한국 바둑계에서 활동하게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셋째, 서양의 프로기사를 적극 육성해서 이들을 한국 바둑 보급의 첨병이 되도록 한다. 현재 한국에는 세계 각지에서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이 상당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이들을 위한 지원이 전무하다. 한국 바둑 세계화의 중요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때는 프로면장을 획득해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즉, 외국인을 위한 제한적인 입단제도를 신설하여 세계 각지의 바둑인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는 향후 한국 바둑계의 든든한 지원군을 육성하기 위함이다.
넷째, 상금제 및 오픈제 도입을 통해 얻어지는 기원 수입의 10%이상을 바둑보급을 위한 예산으로 책정하여 바둑 교육에 힘쓴다. 현재는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바둑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하다. 특히 30~40대 성인 남성들은 바둑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다. 보급예산을 확보하여 전국민, 더 나아가서 세계의 모든 초보자들이 바둑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기전의 오픈을 통해 얻어지는 팬들을 바둑계로 유입시키는 장치가 될 것이다. | |
네가지 변화가 시행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전세계 초일류 프로기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명실공히 최고의 바둑 시장이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바둑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것이고 이들을 바둑 팬으로 재생산시키면 바둑계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여 제2의 중흥기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현 바둑계는 기전은 갈수록 작아지고 바둑팬은 줄어들며 기전은 없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으로 가고 있다.
변화에 상금제가 필수인 이유
현재 진행되는 기전의 대부분은 대국료제이다. 대국료제는 단 1판이라도 대국료를 지급해야 한다. 예선은 대국수가 많다. 대국료제로 진행되는 시합은 참가 인원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상금제는 예선에 대한 대국료가 사라지면서 참가 인원의 제한이 없어진다. 이것이 상금제와 대국료제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즉, 경직화된 기전방식에 상금제와 오픈제를 도입하여 유연성 확보할 수 있다. 기전방식에 유연성이 보장되면 다양한 방식의 기전이 개최되고 많은 인원을 시합에 참여 시킬 수 있다. 그래야 팬들이 바둑계에 다시 관심을 갖을 뿐 아니라 스폰서도 바둑계에 투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상금제 도입이 중요한 이유는 이모든 변화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바둑계의 프리미어는 중국이 먼저 시작. 그러나 늦지 않았다
최근 한국의 상위 랭커들이 국내 기전을 기권하면서까지 중국리그로 진출했다. 프로기사 입장에서 바라보면 10판 이상을 이겨 우승을 해도 우승상금이 2천만원~4천만원 사이인 국내기전보다 1판을 이길 때마다 1천 만원을 벌어 들일 수 있는 중국리그가 우선시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국리그에 진출하는 한국기사들을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비난해서는 안되며 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한국의 기전규모가 초일류 기사들이 다투어 참가할 정도로 매력적인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또 이를 통해 당금의 바둑계는 일류 기사들이 느끼는 매력도가 한국바둑계가 아니라 중국리그로 기울여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바둑계의 프리미어 리그화는 중국이 앞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바둑계는 늦지 않았다. 세계대회를 가장 많이 개최하고 있으며 세계대회 규모 못지 않은 국내기전도 상당수 개최하고 있다. 기존의 인프라가 잘 갖쳐져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고 앞서 말한 4가지 변화를 시행한다면 10년이 지난 2017년에는 한국 바둑이 바둑계의 프리미어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면 10년 후 한국 바둑계는 중국리그에 선수를 공급하는 공급처로 전락할지 모른다.
상금제 논의를 통해 바둑계의 목표를 설정하자
마지막으로 상금제 도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현 바둑계는 목표 설정이 되어 있지 않다. 바둑단체들은 공통적으로 바둑 보급과 기전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가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면 5년 안에 100만 바둑팬 확보. 바둑교육기관 100여개 확보. 3년 안에 세계기전 2개 개최 등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 목표가 없으므로 사공은 많고 일하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일해야 할지를 모른다. 상금제 논의를 통해 우리 바둑계는 나아가야 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즉, 전체 바둑인, 바둑팬에게 비젼과 자긍심을 심어 줘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바둑의 세계화를 통해 바둑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런 컨텐츠로 육성하는 것을 바둑계의 목표로 제안한다. 또 구체적인 목표를 우리 바둑인들이 함께 설정하기 바란다. 필자가 상금제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금제도가 허용되어만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이 단순히 상금제 도입을 찬성하는 글로 읽히기를 원치 않는다. 상금제 논의를 통해 바둑계의 목표를 설정하자는 것으로 이해되길 바란다. 이것이 상금제 논의의 본 뜻이다.

한국기원의 역할
한국기원과 기사회는 바둑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청취한 다음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 바둑계의 ‘빅 브라더’ 역할을 해야 한다. 상금제 도입에 관한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는 것은 목표설정을 위한 의견수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바둑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토론하는 논의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토론의 핵심에는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들의 활발한 토론을 부탁한다.
맺음말
저는 5월 30일에 위와 같을 내용을 주제로 주제 발표를 했으며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제 의견 중 가장 핵심 사항은 변화를 위한 4대 제안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바둑 관계자 및 바둑 팬 여러분들이 인터넷, 혹은 공적인 회의를 통해 토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모든 프로기사 및 한국기원 직원들은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로(功)와 실수(失)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공로는 생각하지 않고 한국기원 전체를 매도하시는 것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둑계가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된 것은 선배님들이 음지에서 묵묵히 노력하셨기에 지금의 바둑계가 있습니다. 상금제 논의가 이분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발전하기 위한 후배들의 노력으로 이해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상금제 도입의 장·단점에 대해 여러분들이 냉정한 평가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금제 도입의 장점이 있다면 분명 단점도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장, 단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경영학 및 마케팅을 조예가 깊으신 분들께서 상금제 도입의 장,단점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 주시고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보내주시면 더욱 감사드립니다. 저의 이메일을 공개하오니 여러분들의 많은 의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기원 기사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또, 유창혁 바둑 도장에서 유창혁 9단과 같이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한국기원 기사회 총무자격으로 쓰는 글이 아니며 유창혁 9단과 같이 일하고 있어 유9단을 염두에 두고 쓴 글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가 가르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프로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순수한 김만수 개인 의견이므로 곡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프로기사 선·후배 및 바둑관계자 그리고 바둑팬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로기사 7단 김만수 / 메일 : baduk7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