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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당락 뒤바꾼 회심의 고춧가루

내셔널리그 최종라운드, 투혼의 스포츠맨십 발휘한 선수들

2016-10-03 오후 1:14:13 입력 / 2016-10-03 오후 10:46:16 수정


▲ 대국 시작 후 약 2시간30분이 지난 시점, 381수까지 가는 내셔널리그 부산 투어 최장수수 혈전 끝에 울산디아채 강경낭(오른쪽) 선수가 세종시체육회 박지영 선수에게 승리를 거뒀다. 바둑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순천만정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 울산은 갈길 바쁜 세종시에게 희대의 고춧가루를 선사했다.

아마바둑 최고의 제전, 2016 내셔널바둑리그 정규시즌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혈투, 마지막 라운드 최종국이 끝날 때까지 포스트시즌 진출팀 향방을 알 수 없었던 역대급 난타전이었다. 살아남은 팀과 '한 끗' 차이로 미끄러진 팀 모두 최선을 넘어 혼신을 다한 승부를 펼쳤다.

드림리그는 선두를 독주하며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은 화성시(14승3패)와 포스트시즌 진출을 진작 확정지었던 경남 한림건설(13승4패) 서울 푸른돌(11승6패를)을 제외한 나머지 팀간 경쟁이 치열했다.

4위와 7위까지 총 4개 팀이 전부 8승9패로 팀 승수가 똑같았고, 개인승수로 승부를 가린 끝에 대전광역시가 가을 잔치 티켓을 획득했다.

매직리그에선 중후반 뒷심을 발휘한 전라남도가 13승5패로 우승을 확정지은 가운데 부산 투어가 끝날 때까지 어느 팀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낙관하기 어려운 벼랑 끝 접전이 계속됐다. 충청남도가 10승 고지를 밟고 리그 2위를 확정지었고, 9승8패를 기록한 대구 덕영, 경북 한국광물, 서울 원봉 루헨스 등 3개 팀이 개인 승수를 따진 끝에 포스트시즌 진출 팀과 탈락 팀으로 나눠졌다. 홈경기를 했던 부산 이붕장학회는 8승9패로 아쉽게 탈락했다.

앞서 언급한 팀 외에 이번 부산 투어 판도를 뒤흔든 '고춧가루 부대'가 있었는데, 울산 디아채가 바로 그 주인공.

골드배를 휩쓸고 돌아온 주니어 투톱 김종해-최우수가 이끄는 울산은 리그 초중반 난조를 보이며 일찌감치 최하위권으로 밀려났다.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이쯤 되면 전의를 상실해 최선을 다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시각이 있겠지만, 울산 선수들은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며 갈길 바쁜 팀들에게 고춧가루를 팍팍 뿌렸다.

부산투어에서 3승1패를 거둔 울산은 마찬가지로 이미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적이었던 강원도에게만 패했을 뿐, 드림리그 4위를 노리던 세종시와 전북을 3-2로 꺾는 '스포츠맨십'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14라운드 세종시 체육회와 울산 디아채 경기 최종국(박지영-강경낭)은 대국 시작 후 2시간 30분을 넘긴 시점에서야 결과가 나왔는데, 381수까지 가는 혈투 끝에 강경낭(울산)이 승리하면서 세종시는 포스트시즌 문턱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내셔널리그 제한시간은 각 30분, 30초 초읽기 3회. 초읽기만으로 약 1시간 30분 동안 대국이 진행된 셈이다.

마지막 17라운드에서도 울산의 '고춧가루'는 계속 됐는데, 이겼으면 리그 4위였던 전북을 3-2로 무너뜨리며 7위까지 밀어버렸다. 덕분에 대전광역시는 어부지리로 4위까지 순위가 치솟아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던 내셔널리그 최종 라운드 부산 투어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준비했다.


▲ 김종해(승)-우원제. 에이스 맞대결에서 골드배 우승자 김종해(왼쪽)가 대한바둑협회 아마랭킹 1위 우원제에게 승리했다.

▲ 송홍석(승)-윤남기. 세종시의 비운은 계속됐는데, 대구 덕영과의 대결 또한 후유증이 큰 패배였다. 팀 스코어 2-2 상황에서 이번에도 가장 마지막에 승부가 끝난 팀은 세종시 체육회였다. 계가가 시작됐을 때까지만 해도 반상에 서로 집이 있었지만… 


▲ 잠시 후 계가가 모두 끝나자 판 위에는 서로 집이 없다. 사석 2개를 남긴 대구 덕영 송홍석(오른쪽)이 8개를 남긴 세종시 윤남기에게 행운의 반집승을 거뒀다. 371수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14라운드에서 381수 혈투 끝 패배, 16라운드(사진)에서 371수 대결 끝 패배로 두 판을 잃어버린 세종시는 아쉽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 치열했던 내셔널리그 최종 성적표. 드림리그(왼쪽)에서 혈전을 펼친 대전 광역시, 충청북도, 세종시 체육회, 전북 알룩스는 8승9패로 팀 승수가 똑같았지만 개인 승수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세종시와 전북 입장에서는 매직리그 최하위 울산에게만 승리했어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기에 패배가 뼈아팠다.


▲ 홍근영-우원제(승). 16라운드 패배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세종시 체육회 또한 입장을 바꿔 '고춧가루 부대' 대열에 합류. 승리할 경우 매직리그 준우승까지 노릴 수 있었던 서울 원봉 루헨스는 세종시 체육회에게 2-3으로 패하면서 개인 승수에서 밀린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 오직 내셔널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 주니어-시니어-여성 등 말그대로 '남녀노소'가 모두 모인 내셔널리그에서는 대국이 끝난 후 팀원들이 함께 복기를 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기량 면에서 우위에 있는 주니어 선수들이 시니어 선수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한편 내셔널리그에서는 '바둑 심판' 제도를 정착시켰다. 오는 8~9일 충남 예산에서 열리는 제97회 전국체전에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치러지는 만큼, 스포츠 바둑 시대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번 부산 투어에는 서건우 오정아 강다정 등 프로기사들이 심판을 자청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강다정은 2013 내셔널리그에서 서울 건화 소속으로 출전해 한 시즌 전승(12연승)을 거두며 다승왕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수석 졸업생 출신.

바둑 심판으로 활약한 오정아는 "재밌는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었다. 바둑 두는 걸 보면서 심판을 한 경험은 처음이라 재미도 있었지만, 바둑판에 놓인 돌이 옷에 쓸려서 이동 되는 경우 등 다양한 현장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해결 방안을 떠올려야 할 때는 어렵기도 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현재 바둑 심판은 대국자가 이의를 제기했을 때 대국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 프로기사들이 심판을 맡게 되면 규정 위반 사례가 발생 됐을 때 즉시 중재할 수 있는 '적극적 개입' 방법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바둑은 다른 스포츠와 다르기 때문에 심판의 적극 개입은 반대"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존 대로 대국자가 이의를 제기하고 심판 판정을 요청할 때만 개입해도 충분하다는 의견.  

내셔널리그 다승왕 출신 강다정 프로는 "규정과 대국 현장 사이에 다소 차이점이 있어서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내셔널리그 대국 규정에서는 바둑을 두다가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제재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내용들은 프로기사들 또한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대국 할 때 혼잣말을 하거나 콧노래를 부르는 프로기사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바둑 팬들 또한 모두 알고 있다. 내셔널리그 규정을 대입하면, 그럴 경우 경고를 받는다. 지속 될 경우는 심판 재량으로 반칙패를 선언할 수도 있다.

프로 공식 대국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이런 내용을 내셔널리그 아마추어 대결에서 칼 같이 적용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포츠 바둑'으로 건너온 만큼 차츰 보완해 나간다는 계획.

심판이나 대회 관계자 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합심해서 의식 변화를 이뤄나가야 하는 향후 과제가 될 전망이다. 


▲ 심판을 맡은 서건우 프로.

▲ 내셔널리그 심판 첫 경험, 오정아 프로.

▲ 강다정 프로.

▲ 심판은 각 라운드 별로 9명이 동원된다. 팀간 경기(5판) 마다 한 명씩 심판이 배치되며, 심판은 한 번에 5판의 대국을 동시에 살핀다.

▲ 오정아 심판(오른쪽)이 승패 기록지 서명을 요청하는 모습.

▲ 대국이 끝난 선수들은 승패 기록지에 서명을 한다.

▲ 황금연휴 주말에 부산까지 내려와 심판으로 수고한 프로기사들 노고 덕분에 내셔널리그 최종 라운드 경기가 더욱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었다.

▲ 381수 혈투의 승자 강경낭(울산 디아채).

▲ 세종시 체육회 박지영.

▲ 소속팀 충남을 리그 2위에 올려 놓은 '부부 투톱' 김정환(왼쪽) 김이슬.

▲ 프로 입단을 앞두고 있는 주니어 강자들을 상대
로 9승8패를 기록한 충남 김정환.

▲ 여류 국수전 우승 전력이 있는 김이슬은 10승7패
로 다승 9위에 랭크됐다.

▲ 포스트시즌 티켓을 거머쥔 대전 광역시 여성 선
수 김규리.

▲ 대전 조은진. 김규리 선수와 번갈아 출전했다.

▲ 중요한 순간에 승점을 보태 소속팀 경북을 포스
트시즌에 올린 김현아.

▲ 충청북도 차기 에이스 김봄. 5승6패로 부진하던
장혜령이 여자 입단에 성공한 이후 대체선수로 합류
한 김봄은 5승1패, 승률 83%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 순천만정원 홍준리.

▲ 순천만정원 오명주.

▲ 서울 원봉 루헨스 송예슬.

▲ 화성시 이선아.

▲ 경남 한림건설 류승희.

▲ 전북 채현지.

▲ 고양시 차은혜.

▲ 내셔널리그 진행은 바둑 행사 전문회사 Club A7이 전담한다.

▲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대회 현황판.
381수 접전이 진행 중인 세종시-울산 마지막
대국만 표시가 안 되어 있는 상황.

▲ 정규시즌을 끝낸 내셔널리그는 오는 11월 포스트시즌으로 다시 돌아온다. 포스트시즌 모든 경기는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로 치러질 예정.
TYGEM /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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