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입담 과시한 서능욱 9단과의 진솔한 대화
인기만점이었던 타이젬TV 보이는 인물사전 첫 방송
2017-02-03 오전 10:28:16 입력 / 2017-02-03 오후 1:04:33 수정

▲ 서능욱 9단(왼쪽)이 타이젬과 프로기사회의 야심작 '보이는 인물사전' 1회 게스트로 출연했다. 김지명 MC와 함께 찰떡 궁합을 선보인 서9단은 시청자들로부터 방송 데뷔 제안을 받기도.
"서능욱 9단을 처음 만난 건 1976년도 무렵이었다. 당시 프로기전 제한시간은 5시간이었는데, 서능욱 9단 바둑은 1시간 만에도 끝나고 2시간 만에도 끝나 기록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김지명 진행자)
40년 동안 바둑계에서 동고동락한 서능욱 9단과 김지명 진행자가 타이젬 TV에서 만났다. 바둑계의 산증인 김지명 진행자는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둑 동네를 생생하게 부연했고, 서능욱 9단은 바둑 실력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입담을 과시했다.
2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타이젬 대국실 내 '타이젬TV'에서 '보이는 인물사전' 첫 방송이 서능욱 9단 편으로 진행됐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 방송의 특장점을 최대한 살려 실시간으로 회원들과 소통하며 즉석 질문을 수시로 받아 타이젬 회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부에서 종이 가득 준비해온 김지명 진행자의 다양한 질문에 진솔한 답변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 서능욱 9단은 2부에서 '인생의 한 판'으로 조훈현 9단을 꺾고 입단 40년 만에 첫 우승 한풀이에 성공했던 대주배 결승전을 자전해설했다.
▲ 흑1의 급습이 서능욱 9단의 첫 우승을 결정지은 회심의 피니쉬블로.
결정타를 허용한 조훈현 9단은 옥쇄를 선택했고, 이후 서능욱 9단은
중앙 백 대마를 포획하며 승리를 결정지었다.
타이젬에서 joonki라는 ID로 무려 20,260판을 대국해 12,634승을 기록 중인 서능욱 9단은 (P) 마크를 붙이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다. (P)는 프로 식별 표식인데, 이 마크를 붙인 ID는 9단에서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8단으로 '강단'을 당하지 않는다.
서능욱 9단의 joonki는 종종 8단으로 강단 당하곤 한다. 이에 대한 짖궂은 질문이 나오자, 김지명 진행자가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joonki가 9단에서 8단으로 내려가는 장면을 옆에서 여러번 지켜본 적이 있다. 보통 9단들은 강단 위기가 되면 상대 ID를 한 번쯤은 보고 바둑을 둔다. 하지만 서능욱 9단은 중국 국기가 달려있기만 하면 무조건 대국을 수락하기 때문에 강단 판에서 중국 상위랭커들과 대국하는 빈도가 높다"(김지명 진행자)
"제가 듣기로,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joonki를 8단으로 강단시키자!' 하고 타이젬에 접속하기도 한답니다(웃음)."(서능욱 9단)
타이젬에서 24시간 활동하고 있는 '딥젠고'는 무려 2만판을 소화한 joonki와 닮은 점이 있다. 아직 joonki와 딥젠고는 대국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서능욱 9단은 오는 손님은 막지 않지만, 직접 가지도 않는다. 대국 신청이 오면 누구와도 대국을 하는데 직접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딥젠고는 대국 신청을 못한다고 들었다. 타이젬에서 매치를 주선하지 않는 한 joonki와 DeepZen(P)의 빅 매치는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김지명 진행자)
얼마 전 화제가 됐단 '알파고와의 치수'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서능욱 9단은 알파고에게 어느 정도 '접히면' 이길 수 있겠냐는 질문에 "호선에도 질 생각이 없다. 붙여만 달라"고 응수해 팬들을 즐겁게 했다.
방송을 보지 못한 바둑 팬들에게 1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보이는 인물사전 1편 서능욱 9단>
- joonki로 2만판 뒀는데 모든 대국에서 화점만 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두터움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 일부러 화점만 뒀다. 1만승 정도 하면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2만승 하면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만약 깨달음을 얻으면 이후에는 외목만 두려고 생각중이다(웃음).
-타이젬에는 24시간 대국하는 딥젠고가 있고, 박정환 커제 등을 상대로 60승을 거둔 알파고의 존재감도 어마어마 하다. 인공지능의 등장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사실 위기이자 기회다. 알파고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바둑이 더욱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바둑의 신비감이 없어졌다. '난공불락' 이미지를 잃었다. 이제는 프로기사들이 노력해서 컴퓨터를 이기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50년간 바둑 두면서 정말 가장 분했던 바둑은?
"아쉬운 판이 너무 많다. 조훈현 9단과 둔 바둑이 떠오른다. 전남일보에서 개최한 기전인데, 제가 순간적으로 '물렀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갔다가 돌을 뗀 것이다. 10분여를 고민했다. 조훈현 9단이 기다려줬는데, 결국 그 자리에 돌을 놓고 졌다. 1987년도쯤의 일이다. 딱 한 번 개최되고 없어진 기전의 도전기였는데, 그때 이겨서 우승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웃음).
-준우승을 가장 많이 한 기사로 알고 있다. 몇 번 정도 했나?
"13번 준우승했다. 조훈현 9단에게 11번 도전해서 모두 졌고, 이창호 9단에게 2번 졌다."
-상대가 밉지 않던가?
"조훈현 9단에게 이길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겠다고 생각했다(웃음). 나중에는 괜찮아지더라."
-바둑을 지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
"속으로 많이 울었다(웃음)"
-노래를 잘한다고 들었다.
"타이젬 음방을 10년 들으니 귀가 트이더라. 예전 음방이 있을 때 15년간 매일 노래를 듣다보니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노래 맛을 알겠더라. "
-타이젬에서 바둑을 한판도 안두고 베팅만 15년 하셨는데 기력이 일취월장 하셨다는 분도 있다.
"같은 원리다(웃음)."
-취미는?
"브릿지라는 카드 게임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번에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했다. 제가 한국대표로 나간다."
-브릿지에 대해 모르는 팬들이 많다. 간략히 설명한다면?
"페어바둑이라고 보시면 된다.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게임이다. 어떤 파트너와 편이 되느냐가 중요하다(웃음). 굉장히 어렵다. 책으로만 해도 300권이 나와있다. 경우의 수가 많다."
-브릿지로 먹고 살 수 있나?
"한국에선 없다. 외국에선 가능하다."
▲ 서능욱 9단(왼쪽)과 김지명 진행자.
-실례지만 몸무게는?
"90kg가 넘은 이후 재본적 없다(웃음)."
-운동 할 의향은? 걱정들을 많이 하신다.
"골프도 해보려고 하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운동 체질이 아니다(웃음)."
-식사량은 많은 편인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많이 먹는다(웃음). 주는대로 먹는 편이다."
-그럼 누군가 식단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겠다.
"아무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 '인격'을 유지하고 있다(웃음)."
-좋아하는 연예인은?
"하지원을 좋아한다."
-어떤 점이 매력인가?
"섹시하다(웃음)."
-주량이 어느 정도인가?
"새벽 4시까지 마실 정도는 된다(웃음). 조훈현 9단에게 이기기 위해 50대까지 금주를 했다. 그 이후 '내 인생에는 타이틀은 없다'고 생각하고 음주가무에 심취했다."
-그 이후에 대주배에서 우승하지 않았나?
"그때는 대주배가 생길 줄 몰랐다(웃음). 술에 간이 덜 상한 싱싱할 때여서 가능했다."
-바둑팬들이 술을 산다면?
"소주에 삼겹살이면 언제든지 간다."
-인터넷 방송 첫 출연인데 소감은?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괜찮다(웃음)."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은퇴를 계획하고 있나?
"3년 정도 후에는 해야 마땅하지 않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프로기사 은퇴에 대한 의견은?
"빨리 은퇴를 해주는 것이 바둑계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은퇴를 한 프로기사는 할 일이 없고, 대접도 예전보다 못 받으며 소위 '말빨'도 안 선다. 용돈 벌이도 안 되지 않나(프로기사회나 한국기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 후진들을 위해서는 은퇴 를 하는 것이 좋다."
-은퇴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잘하는 게 바둑이니 재능기부를 할 수도 있겠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한다. 제자를 안 두는 이유가 있나?
"30년쯤 전에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바둑 도장을 하자는 제의였다. 바둑 도장은 사실 중소기업(중진 프로기사)들이 해야 된다는 게 지론이다. 대기업(일류 프로기사)은 다른 일을 해야 한다(웃음). 내 일이 아니라고 봤다."
-은연 중에 본인이 일류라고 자랑하는 것 같다.
"그때(30년전)는 그렇게 생각했다(웃음)."
-평생에 가장 기뻤던 순간은?
"대주배 결승에서 조훈현 9단을 이긴 순간이었다. 인생의 모든 한이 다 풀린 느낌이었다."
-운전을 안 배운 이유는?
"배우려고 했지만 집사람이 태워주겠다고 해서 안 배웠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웃음)."
-바둑 실력이 빨리 늘 수 있는 비법을 공개한다면?
"바둑을 좋아하는 만큼 바둑이 빨리 는다. 바둑 애정도와 바둑 실력 향상은 비례한다."
-중요한 얘기다. 하루에 수십 판씩 두지만 만년 바둑 5급인 분들도 있는데 어떤 경우인가?
"바둑을 좋아한다기보다 습관적으로 두는 케이스다. 바둑을 정말 좋아한다면 실력이 늘게 돼 있다."
-김지명 진행자를 몇 점 접을 수 있나?
"액수에 따라 다르다(웃음). 방송용으로는 2점이다."
-바둑 팬들에게 한마디
"바둑을 좋아하는 만큼 프로기사들 역시도 많이 아껴주셨으면 좋겠다. 요즘은 프로기사가 '바둑 기능공'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바둑 장인'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TYGEM / 이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