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타
‘98세 현역 전설’ 스기우치 가즈코, 마침내 은퇴
은퇴 시 1단 승단 관례에 따라 일본 바둑계 사상 첫 여성 9단 탄
2025-08-21 오전 9:14:10 입력 / 2025-08-21 오후 8:38:46 수정

▲세계 최고령 현역 프로기사 스기우치 가즈코 9단의 2024년 대국 모습. [사진=日本棋院]
세계 최고령 현역 프로기사 스기우치 가즈코(杉內壽子, 1927년 3월 6일생)가 20일, 98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했다. 그는 “바둑은 예도(藝道), 일생의 수행이라는 신념으로 여기까지 버텼다. 그러나 6시간 쉬지 않고 두는 대국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80여 년 동안 기사의 길을 걷는 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본기원 규정에 따라 은퇴 시 1단을 승단하는 관례가 적용돼, 스기우치는 8월 21일부로 일본 바둑계 사상 첫 여성 9단이 됐다. 그는 1973년 7단, 1983년 8단에 오른 당시에도 세계 최초 여성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스기우치의 마지막 대국은 지난 5월 15일 열린 제52기 일본 천원전(天元戰) 예선에서 야마모토 마사토 8단에게 패한 바둑이었다. 이후 6월과 7월 대국을 기권했고, 8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스기우치는 시즈오카현 출신으로 아버지 혼다 에이조에게 바둑을 배웠다. 그녀의 두 여동생 혼다 사치코, 쿠스노키 미쓰코 역시 프로기사가 되어 ‘혼다 3자매’로 불렸다.
1937년, 열 살의 어린 스기우치(당시 본명 혼다 도시코)는 본인방 슈사이의 지도 아래 공개 대국에서 기타니 미노루(木谷實)를 상대로 흑 5점을 접고 승리하며 천재 소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바둑계의 혜성’으로 주목받으며, 일본 여성 기사들의 스승으로 불린 기타 아야코 문하에서 1942년 입단했다.
1953년 일본 여자선수권에서 초대 우승을 거둔 뒤 4연패를 달성했고, 1954년 동료 기사 스기우치 마사오(杉內雅男)와 결혼했다. 1956년 6단에 오른 이후에는 육아와 가정에 전념하며 10년 가까이 대회 출전을 줄였지만, 복귀 후에는 남성 기사들과의 대국에 주력하며 세계 최초 여성 7단, 8단 기록을 세웠다.
여류 타이틀전에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1983년 자매 맞대결에서 혼다 사치코를 꺾고, 1986년에는 기타니 미노루의 딸이자 고바야시 고이치의 부인인 고바야시 레이코를 꺾어 일본 여류학성전 2회 우승을 기록했다. 1991년에는 일본 제3기 여류명인전을 제패했고, 이후 4연패를 달성했다.
1999년, 72세의 스기우치는 당시 20대 신예 고바야시 이즈미와 여류기성전 결승에서 맞붙어 세대를 초월한 승부를 벌였지만 1-2로 아쉽게 패했다.

▲스기우치 가즈코 9단과 남편 스기우치 마사오(杉內雅男) 9단. [사진=日本棋院]
기사 활동 외에도 일본여류기사회 및 기사회 회장을 맡아 일본기원 운영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1998년 오쿠라 기시치로 상, 1999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4등보관장'을 받았다.
2010년대 이후에는 남편 스기우치 마사오와 함께 ‘최고령 부부 기사’로 활약하며 고령에도 현역 기사로 활동해 주목받았다. 남편이 2017년 97세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의 ‘종신 현역’ 의지를 이어받아, 2019년 92세의 나이로 정상급 남자 9단을 꺾는 기염을 토했다.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19연패를 기록했으나, 2022년에는 자신보다 64세 어린 남자 기사에게 승리했다. 2023년에도 자신보다 76세 어린 여성 기사를 꺾으며 일본 바둑계의 최고령 승리 기록을 세웠다. 2024년에는 기타니 미노루의 증손녀이자 고바야시 레이코의 손녀인 장신즈와 82세 나이 차의 대국을 치르며 세대를 뛰어넘는 인연을 이어갔다.
올해 3월 6일, 98세 생일을 맞은 그는 무궁무진한 기력으로 다케미야 마사키와 대국하며 최고령 현역 기록을 또다시 갱신했다. 그러나 일본기원의 ‘무휴 대국제(각자 3시간, 점심시간 없음)’가 시행되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전설 같은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기우치 가즈코가 남긴 “여성 기사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은 일본 장기(將棋)에서 아직 여성 정식 프로가 나오지 않은 현실과 대비되며 더욱 빛난다. 그는 단순한 ‘최고령 기사’를 넘어, 여성 기사들의 개척자이자 ‘평생 현역’의 상징으로 일본 바둑사에 길이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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