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이창호와 90년대부터 10년 세월을 더불어 한국바둑을
주도해온 조훈현·유창혁이 근래들어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창호를 정점으로 그 뒤를 잇는 '新4천왕'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세돌-최철한-박영훈-송태곤으로 이어지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新4천왕'은 근래 들어 국내 기전 뿐 아니라 각종 세계대회에서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종횡무진의 활약상으로 어느덧
'세계최강 한국바둑'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이들 영건 '新4천왕'은 한결같이 수읽기가 뛰어나고 전투력이
강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어느 누구와 만나도 결코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도 공통점. 이세돌·최철한·송태곤은
공격형, 박영훈은 타개형으로 분류되는데, 이세돌이 요즘들어 유연한 기풍으로 변모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상의 분류일 뿐 네 기사 모두 개성이 뚜렷해 가히 '4인4색'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바둑을 이끌어갈 젊은 기수-, '신4천왕'의 바둑세계를
최근의 실전예를 통해 해부해본다(총 3편으로 나눠 싣습니다).
※ 글 싣는 순서 : 이세돌 편 - 최철한 편
- 박영훈 편 - 송태곤 편
경쾌하고 정교한 나비
박영훈 편
박영훈은 소리없이 강하다.
2003년초부터 이세돌·송태곤·최철한이 차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포스트 이창호'의 대표주자로
부상할 무렵, 박영훈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 뒷 주자로 꼽히는 조한승·원성진·김주호 등에도 밀리는
듯한 양상이었다.
그런데 한국선수들이 전멸한 상태에서 4강에 홀로 남게 된 삼성화재배에서 일약 결승까지 올라 각광받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기어이 세계제패(후지쯔배 우승)를 이뤄냈다.
박영훈은 세계대회에 매번 출전하지 못한 탓에 기회가 적었을 뿐 실제로 그의 국제무대 성적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2002년 농심배 4연승을 필두로 2003년 삼성화재배 준우승, 올해 후지쯔배 우승에 이어 중환배 4강 진출까지….
그는 실제로 근 2년 간 세계대회에서 진 적이 별로 없다.
이처럼 어느덧 확고한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한 박영훈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우선
기풍 탓이 크다. '新4천왕' 가운데 박영훈의 색깔은 다른 세 기사와 사뭇 다르다. 이세돌·최철한·송태곤이 모두 강력한 파워를
앞세우는 공격형이라면 박영훈은 수비형에 가깝다.
'실리에 밝고 빠르다.' '형세판단이 정확하고 종반 마무리가 강하다.'
'타개능력이 뛰어나고 균형감각이 좋다.' '임기응변에 강하고 독창적인 바둑을 둔다.' '실리에
집착한 나머지 공격바둑에 약한 경향이 있다.'
박영훈의 바둑을 평하는 말들인데, 강렬하기보다는 부드럽고 마일드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공격적이고 강렬한 기풍의 기사들에 비해
덜 화려해 보이며 유약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박영훈 만큼 전분야에 걸쳐 두루 균형을 갖춘 기사도 드물다. 전형적인 실리형이면서도
박영훈은 전투를 피하는 아웃복서가 아니다. 오히려 난전을 통해 실리의 우위를 점해나가는 기풍이기에 전투도 강하다. 처음 만난
외국 기사들이 박영훈의 파워를 얕보고 섣불리 전투를 걸었다가 번번이 낭패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박영훈의
강점 ①
실리에 밝고 빠르다
박영훈은 집에 대한 감각이 아주 예민하다. 그리고 행마가 가볍고 빠르다.
사방 곳곳을 스피디하게 뛰어다니며 실리를 벌어들이는 한편, 가볍고 발빠른 행마는 솜씨가 젊은 시절 조훈현의 속력행마를
연상시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