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잘 싸웠다, 힘내라! 이창호
이창호 vs 창하오 다시보기
2007-01-25 오후 4:42:58 입력 / 2007-01-26 오전 10:43: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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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싸웠다, 힘내라! 이창호
새해 벽두부터 이세돌이 도요타덴소배 우승을 차지하면서 경사스런 한 해를 시작한 한국바둑. 그 여세를 몰아서 이번에는 이창호발(發) 축포 제2탄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창호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저버렸다. 창하오에게 2:0으로 완봉패를 당해 삼성화재배에서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이번 결승전은 이창호의 재기여부를 가리는 시합이었다. 작년부터 이어온 부진을 대번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대국의 결과로 07년 한중간의 ‘딥임펙트’의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는 바로 미터였다. 그러나 ‘광저우의 굴욕’ 이후 다시 한번 추락하는 이창호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 최후의 결전 그러나… 창하오는 90년대 중반부터 이창호의 라이벌로 지목되었다. 이창호와 이름이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하니 라이벌로 지목되기엔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 또 생김새도 출중하여 스타로서의 여러 요소를 갖추었으나, 바둑실력만은 중국팬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중국 창호’는 근 10년 동안을 이창호의 아성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 마샤오춘의 대를 이어 '고통 속의 나날'을 보냈다. 1997년~2000년까지 4년 동안 한중천원전에서 두 기사는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한다. 그러나 3번기로 치러지는 그 대회에서 97년 대회만 한판을 건졌을 뿐(2:1 이창호 승), 나머지 1998년~2000년까지 3번의 시리즈에서는 영봉패하고 만다. 그 뿐이 아니다. 2000~2001년 사이에 벌어진 잉씨배 격돌은 두 사람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창하오는 1:3으로 철저하게 무너지고 만다. 첫 대국에서 잉씨배 대국까지 총16번의 대국에서 철권 이창호는 딱 두 번 만 패했다. 그것도 예의상(?) 패한 것밖에 없을 정도로 초막강이었다.
오랜 가위눌림에서 해방된 것은 바로 5년 전 삼성화재배에서였다. 창하오는 4강전에서 2:1로 이창호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다. 당시 이창호가 세계대회 사상 번기에서 패한 유일한 외국기사였다. 이번에는 우승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창하오는 결승에서 조훈현에게 1:2로 역전패하며 또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당시에 중국 언론은 이창호, 조훈현 두 사제를 '공공의 적'이라고 불렀다. 2000년 이후 역대전적은 이창호가 11승4패로 앞서있다. 2000년 이전의 기록은 창하오로서는 기억하기도 싫을 정도로 처참하다. 두 기사의 상대전적이 20승1무6패. 그것이 과거 창하오의 얼굴이다. 이번 결승대결은 2003년 도요타덴소배 이후 4년 만이다. 4년 만에 이런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줄이야… ♤ 위기의 이창호-노쇠화가 원인 이창호는 창하오와 30합을 겨루는 와중에 실질적으로 패한 것이라고는 5년 전 삼성화재배 4강전 이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 2년 사이에는 두 사람의 평가는 요동치듯 달라져 있었다. 창하오가 완만하게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2005년 잉씨배에서 최철한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에도 이유는 있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이창호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작년 삼성화재배에서 뤄시허에게 패할 때에만 하더라도 “계속 우승할 수 있는가. 한번쯤 질 수도 있지…” 하는 위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단체전, 개인전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대국에서 번번이 패하자 팬들도 어느 정도는 이창호의 하락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국은 참패였다. 2:0이라서 참패가 아니라 패배한 내용도 문제가 된다. 1국은 서로에게 찬스는 있었으나, 초반부터 침입한 수가 무리수로 판명되어 힘들게 끌어간 것이 패인이었다. 2국에서는 끝까지 맹추격했으나 결국 초반 형세부진을 만회하지 못했다. 그간 과거 이창호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약함이다. 왠지 모를 불안, 그것은 조급증을 부른다.
어이없는 실수는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국수전 도전1국에서도 있었다. 기보 입력이 잘못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큰 실수로 신예 윤준상에게 첫판을 내주었다. 그 실수는 후반전이었다. 이창호가 능기로 삼는 후반전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가 나온다면 ‘이창호 프리미엄’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창호가 노쇠한 것이다. 바둑에서 수읽기는 생명이다.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난국에서도 일류기사들은 귀신같이 그 처음과 끝을 찾아낸다. 그러나 한 번의 집중력부족으로 말미암아 그 끝을 찾지 못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흔히 신예기사와 대국하는 노장 기사들의 핑계처럼, 중반 이후 ‘깜빡’하는 바로 그 증세이다. 자기바둑을 못 찾는다. 수읽기의 회로가 가다가 끊긴다. 그런 실수를 번갈아 하다보면 자신감 결여로 이어지는 것이 바둑이다. 혹자는 이창호의 나이 33세며 총각인데 '웬 노쇠?'라고 말한다. 허나 그것은 생물학적인 나이와 현실적인 바둑나이의 혼동에서 생기는 오류이다. 입단한 지 2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되 뇌이면 ‘노쇠’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가 반상에서 꺼낼 카드는 이제 별다른 것이 없다. 공격적인 바둑으로 변신도 시도해 봤으나 오히려 더욱 주무기만 약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 권태기 혹은 목표상실?
결혼 후에 맘의 안정이 오고 나면 바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국 수를 바짝 줄이더라도 사색하는 시간을 늘리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 사색에는 현 세계바둑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국의 신기술을 엿보는 것도 포함된다. ♤ 창하오의 재기 교훈 세계타이틀 22개를 두르고 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창호. 오히려 자신의 ‘밥’이었던 창하오가 다시 부활하는 장면을 보고 뭔가 모티브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창호보다 한 살이 아래 기사이고, 또 중국랭킹이 14위인 창하오는 어째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가. 창하오는 세계대회 결승에만 7번 올라가서 잉씨배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준우승제조기라는 불명예스런 시선을 가진 불운의 기사였다. 중국랭킹이 14위까지 내려앉는 통에 ‘그저 그런’ 기사로 머물러있었다. 그 사이 구리, 후야호위, 쿵제, 씨에허 등으로 중국 팬의 시선이 옮아갔다. 과중한 시선이 사라지자 창하오는 힘을 내기 시작했다. 창하오는 다가오는 춘란배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삼성화재배까지 세계대회 결승에 8번을 올라 2개를 우승했다. 지금 현재는 마샤오춘과 타이. 그러나 창하오는 중국 최고기사의 반열에 오르고 싶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장기적인 목표는 잃지 않되 한 판 한 판에 대한 스트레스는 버리는 것이 부활의 비결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요즘 창하오는 긴 준우승의 터널을 뒤로 한 채, 이제는 그런 시선을 즐기는 법을 안다. 꼭 조훈현이 90년대 후반 세계무대를 호령했지만, 국내에서는 변변한 타이틀이 없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그때 조훈현이나 지금의 창하오가 공히 자국의 일인자 자리를 훌훌 털고 난 다음 ‘괴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고 한들… 물론 세계대회 2번 우승에 불과한 창하오와 22번 우승에 빛나는 이창호와 직접비교는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인자의 자리를 오래토록 유지한 만큼 내려오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이창호에게도 ‘좀 더 버텨야 한다. 내려가게 되면 세상이 끝나지 않을까?'하는 과중한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인' 이창호로 돌아가는 것이 다시 강한 승부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 설령, 앞으로 단 하나의 타이틀도 추가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그가 이뤄놓은 업적만으로도 세계 바둑 팬들에게 충분한 선물이 되고 남음이 있다. 이젠 편안하게 즐기시라. 치열한 바둑이 아니라 즐거운 인생을 말이다. |